고통·행복·성장, '천일'이 수애에게 남긴 것(인터뷰)

하유진 기자 / 입력 : 2012.01.14 10:13 / 조회 : 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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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수애ⓒ사진=홍봉진 기자


작품이 끝난 지 20일 여 지났지만 여운은 짙었다.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의 절규와 그를 지켜보는 남자의 순애보. 지난해 12월 20일 종영한 SBS '천일의 약속'이 가져다 준 반향은 컸다. 비현실적이란 지적도 지나치게 현실적이란 호평도 동시에 존재했다.

완벽을 기했던 한 여자가 스스로를 놓게 되는 모습은 알츠하이머가 어떤 병인지 새삼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깜빡거리는 이서연(수애 분)의 모습에 때 아닌 건망증 열풍으로 '수애병'이라는 신조어가 돌기도 했다.

하지만 서연은 점점 난폭하게, 더 비상식적으로 모든 것을 놓아갔다. 자신의 아이에게 가위를 겨누고 사촌언니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자살시도의 흔적을 보였고 기저귀를 차는 극단적 모습까지 보였다. 끝내 '천일' 뒤 세상과 이별하며 결말을 지었다. 모도 수애가 보여준 모습. 언뜻 생각하기에도 역할에서 빠져오기 힘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서울 중구의 한 바에서 서연과 이별 중인 수애를 만났다. 한창 촬영 중이었던 지난해 10월 제작발표회보다 한결 밝아진 모습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여운이 짙었을 것 같다. 이제 빠져나왔나.

▶지금도 과정인 것 같다. 며칠 전에 일본에 아테나 프로모션 있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늘 같은 팀이었다가 혼자가 된 느낌이었는데 갔다 와서 기분 전환이 됐다. 배우라면 누구나 겪는 일인데 저만 엄살 아닌 엄살 부린 것 같아서 송구스럽다.

-너무 몰입해서 더 못 빠져나온 것 아닌가.

▶제가 극복해야 될 몫이다. 끝났을 때 헤어짐이 더 중요한데 헤어짐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왜 이러나 싶다. 2회에서 치매를 알게 되고 투병도 시작했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행복했던 시절이 없었다. 악화됐던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직 끝난 지 한 달이 채 안됐는데 인터뷰 등을 통해서 공유하면 짐이 덜어지는 것 같다.

-치매 연기, 현실적이란 면과 너무 억지스럽다는 극과 극의 평이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그렇게 폭력적으로 변한다더라. 특히 머리를 그렇게 때린다더라. 그러면서 자기안의 분노를 표출한다고 들었다. 현실적으로 보였다면 김수현 선생님의 연구 덕분인 것 같다. 그걸 표현하고 공감을 얻는 게 큰 숙제였다. 제가 가장 중점을 뒀던 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세상과의 단절이었다. 악착같이 발악하며 살았던 서연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과 등지게 되는 공허함 같은 것. 왜 망가지지, 못됐어 하는데 그게 병의 증상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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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수애ⓒ사진=홍봉진 기자


-오히려 극단적인 행동이 빨리 나왔다면 하는 시각도 있었다.

▶저 스스로도 언제쯤 망가지나 하는 의문이 있었다. 선생님이 서연에 애정과 애착이 있어서 의도적으로 미뤘던 것 같다. 서연은 의지, 자존심, 자아가 강하기 때문에 주변 인물이 자기 흐트러지는 걸 보기 싫어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자신을 잃어가는 병을 앓았다. 2부에서 병의 증상이 보이는데도 한 번도 자신 본연의 모습을 잃지는 않는다. 선생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아니었나 싶다.

-뭐가 제일 힘들었나.

▶해 낼 수 있을까 싶었다. 매 순간이 극적인 상황, 저와의 싸움이었다. 지금까지 연기패턴이 외유내강이었다면 이번에는 외강내유였다. 치열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세상과 맞서야 했는데 스스로 의심이 많이 들었다. 5부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실을 박지형(김래원 분)과 사촌오빠(이상우 분)에게 들키는 장면이 있었다. 리딩하다가 펑펑 울었는데 그 전까지 없었던 희열, 자신감, 욕심, 희망 등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그 때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일의 약속'은 지형의 이야기인가, 서연의 이야기인가.

▶그 두 개를 짜 맞춰지면서 만들어가는 사랑이다. 한 여자가 세상과 이별하는 걸 남자가 지켜주는 게 아닌가. 말로가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말은 만족스러웠나.

▶1회부터 알고 있었다. 끝까지 지켜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자 분들이 조금 빨리 극적으로 망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많았는데 그걸 끝까지 지켜주셨다.

-마지막 장면에 기저귀 차는 장면이 시청자들로서는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다렸던 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배우로서 보여주기 힘든 장면이기도 하고.

▶여배우라서 망가질 수 없는 부분도 있는데 극적인 요소는 그것과 별개라고 생각한다. 여배우로서 두려운 건 없었다. 개인적으로 느꼈을 때 서연은 결국 행복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많은 짊을 짊어진데다 병으로 모든 걸 잃어갔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히려 미리 놔줬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모든 걸 잊을 수 있어서 그나마 편하지 않았을까. 불행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천일의 약속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얻은 건 너무 많다. 32살에 맞았던 작품이다. 많이 아플수록 얻는 것도 많은 것 같다. 행복하고 좋았다고 해서 좋은 작품으로 남는 게 아니라, 너덜너덜 다치고 아프고 뜯겼을 때 단단해지는 게 있다. 나이에 비해 일찍 오지 않았나 싶은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데 무사히 끝나고 보니까 제가 몰랐던 부분들이 얼마나 많이 채워졌겠나 싶다.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건가.

▶표현 법이다. 도전해보지 않은, 못할 것 같은 표현법이었다. 직설적이고 솔직하고 치열한 인물이었다. 내 안에서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환경에서 나오는 감정. 저한텐 어려운 거였다. 내가 부딪혀야 되고 지형이 받아줘야 했다. 사건을 확대해석했고 감정 기복도 심했다.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움츠려드는 게 있었는데 다음 연기할 땐 지르고 볼 것 같다.

-잃은 건 없었나. 성격이 변했다거나.

▶단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성격은 왠지 변했을 것 같기도 하다. 체감하진 못하는데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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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수애ⓒ사진=홍봉진 기자


-김래원이 인터뷰에서 수애와 연기스타일이 다르다고 하더라. 수애의 연기스타일은 어떤 편인가.

▶캐릭터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 '님은 먼 곳에'에서는 대본을 아무리 분석해도 답이 없었다. 그걸 대사로 익힌 다음에 현장감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천일의 약속'은 대사를 철저히 분석하고 계산하지 않으면 놓치는 게 많았다. 철저한 계산법이 요했던 대본이었던 것 같다. 생각을 정확하게 하고 나서 현장 가서 버릴 건 버리는 게 베스트라고 생각했는데 완벽히 해내지는 못 했다. 그래도 누가 찌르면 바로 대사가 튀어나올 정도로 암기했고 철저히 계산해서 연습했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 중에선 여성 주인공이 돋보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내 남자의 여자'의 김희애나 '청춘의 덫' 심은하와 비교되기도 했다.

▶영광스러운 일이다. 선생님 작품의 여주인공들은 모두 힘든 우여곡절 끝에 자아를 찾아나가는 인물인 것 같다.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평가해주신다면 영광스러운 말이다. 나는 오히려 그 생각을 좀 안 했던 것 같다. 그 분들이 워낙 대단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감이 없었다.

-다음에 또 김수현 작가 작품 제의가 들어온다면 할 용의가 있나.

▶김수현 선생님께 감사드리는 부분이 많다. 왜냐면 연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한대인데 표현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다. 분량도 그렇고 대사, 감정표현에 있어서 1부터 10까지 다 주어졌다. 모든 걸 할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것 자체가 그게 너무 감사드린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광인 것 같다. 다만 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다음 작품은 밝은 캐릭터를 할 생각인가.

▶그런 질문을 많이 하신다. 이 작품으로 뭔가를 다 풀어내고 나니까 밝은 연기에 도전하고 싶은데 어떤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다. 워낙 또 강한 역할을 많이 했다. 욕심도 생각도 많다. 도전할 수 있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고민 중이다.

-수애에게 '천일의 약속'이란 어떤 의미였나. 필모그래피에 있는 많은 작품 중 하나에 그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매 작품 전환점이 되지만 이번 작품은 많은 것을 준 것 같다. 숙제를 주기도 했지만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막연하고 자만일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느꼈다고 해야 하나. 스스로 만족하고 느끼는 일기라면, 이제 무언가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 인생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지나면 더 알게 될 것 같다. 매 작품 통해 성장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곱씹어지는 게 있다. '천일의 약속'이 저한테 어떻게 남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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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수애ⓒ사진=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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