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사법부, 100년전 코미디 재연중"(인터뷰)②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2.01.12 10:36
  • 글자크기조절
image
이기범 기자


정지영 감독이 돌아왔다,고 해도 20대 관객들은 잘 모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지영 감독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내놓은 게 1998년 '까' 였으니. '부러진 화살'은 정지영 감독이 13년만에 발표한 신작이다. '남부군'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하얀전쟁' 등 80년대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문제적 작품을 만들어내던 그는 언젠가부터 영화 현장에서 멀어졌다.


그랬던 정지영 감독이 돌아왔다. '부러진 화살'은 대학교수가 항소심 부장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살해하려 했다는 혐의로 실형 4년을 선고받은 이른 바 '석궁사건'을 소재로 했다. 사법부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지적해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안성기와 정지영 감독이 '남부군' '하얀전쟁'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 '부러진 화살'이 초청됐을 때만 해도 노장에 대한 예우차원인 듯 했다. 하지만 영화가 뚜껑을 열자 웬걸,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특히 젊은 독립영화 감독들 사이에서 '부러진 화살'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다. 이런저런 술자리에서 '부러진 화살'을 봤냐는 얘기들이 오고갔다. 무엇이 젊은 창작자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정지영 감독을 만났다.


-문성근이 전해준 '부러진 화살' 책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던데.

▶ 책이 워낙 재미있었다. 황당했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건을 전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깐. 그래서 수감돼 있던 사건의 당사자였던 교수를 만나러 갔다. 갔더니 그냥 영화로 만들면 되지 뭐하러 찾아왔냐고 하더라. 그래서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고 했다. 편지를 주고받고 당시 담당했던 변호사를 만났다. 그런데 또 이 변호사가 재미있더라고. 그래서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버디물을 기획했다.

-투자도 제작도 쉽지 않았는데.

▶1년 동안 준비해서 투자자를 만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나를 한물간 사람으로 취급하니깐. 투자자를 접촉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저예산으로 가자고 했다. 독립영화처럼 만들려 했는데 안성기가 캐스팅되면서 지금처럼 가게 됐다. 독립영화 정신을 버리지 않는 상업영화로 하고자 했다.

-보통 한국 법정영화는 미국 법정영화를 따라하면서 실제완 상당히 달리 표현되는데 '부러진 화살'은 다르다. 정공법으로 만들었는데 상당히 리듬감이 좋았는데.

▶한국 법정영화는 그동안 일부러 검사와 변호사를 움직이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법정이란 게 너무 정적이니깐. 그런데 '부러진화살'은 그렇게 하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법정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들, 그 과정이 이 영화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문제점을 정조준했는데. 그런데도 상업영화로서 완성도가 뛰어난데.

▶한 개인이 부당한 재판과 그 분노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지금도 법원 앞에는 부당한 재판 때문에 1인 시위하는 사람이 있다. 내 주위에서도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이야기는 수도 없지만 그 교수가 특별했으니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리얼리즘 계열의 감독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더 대중적으로 풀어내야 할 것 같았다.

-80년대 엄혹했던 시절에는 소위 에로 영화로 버티더니 86년 이후 '남부군'을 비롯해 문제작들을 쏟아냈는데. 영화감독으로 부조리에 대한 사명감이 있는 것인지.

▶사명감보다는 내 캐릭터인 것 같다. 부조리를 보면 파고 들어가야 사는 맛이 난다.

-안성기도 연기가 좋았지만 문성근의 판사 연기는 압권이었는데.

▶사람들이 그러더라. 문성근은 하도 아버지(고 문익환 목사) 따라 법원을 많이 다녀서 판사들의 감정을 정확히 읽는 것 같다고.(웃음)

image
이기범 기자


-'부러진 화살'은 '도가니'와 달리 이야기가 명확하다. 그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데.

▶맞다. 관객이 판단할 지점이 있어야 하는데 워낙 사건이 그러다보니 그렇게 풀 수가 없었다. '도가니'도 그랬지만 관객이 스스로 선택하게 만드는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도가니'가 박수 받는 것을 보고 세상이 이런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그런 영화가 요즘 없는 게 안타깝다.

-영화에서 변호사가 드레퓌스 사건을 언급하는데.

▶재판 과정에선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그 이야기를 넣은 것은 100년 전 프랑스에서 벌어진 코미디 같은 사건이 지금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다가 물어본 게 있었다. 한미FTA 문제점을 아냐고. 아무도 모른다길래 화가 나서 한마디 했다. 그런 문제의식도 없는 놈들이 무슨 영화를 만드냐고. 교수들의 직무유기이기도 하지만 어른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내 '일'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내일'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나.

-현역으로 활동하는 유일한 60대 감독인데.

▶이 영화가 관객에 사랑을 받는다면 검증된 감독들에게도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영화계는 검증되지 않은 젊은 감독들에 집중한다. 신인감독 발굴도 좋지만 그들이 기회를 덥석 잡았다가 한 영화 안되면 두 번 다시 영화를 못하는 구조다. 이 영화가 또래 감독들에게도 자극을 주고, 대기업에게도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