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정려원, 밉상인데 왜 안 미울까

하유진 기자 / 입력 : 2012.01.1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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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화면 캡쳐


"감독님이 한국판 패리스 힐튼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공감대보다 반감을 살까봐 걱정했는데 여치를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해됐어요."

배우 정려원이 지난해 12월 SBS '샐러리맨 초한지'(극본 장영철·정경순 연출 유인식) 제작발표회에서 한 말이다.


지난 2일 '샐러리맨 초한지'가 첫 방송된 후 현재까지 정려원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고 있다. 여치(정려원 분)는 안하무인에 천방지축, 사사건건 아랫사람을 괴롭히기 일삼는 전형적인 밉상 캐릭터지만 시청자의 미움을 사고 있진 않다. 오히려 신선한 캐릭터의 등장과 제 몸에 맞게 소화해내는 정려원에게 시청자들의 눈이 집중되고 있다.

극중 여치는 천하그룹 회장인 할아버지 진시황(이덕화 분)이 신약실험을 위해 기르는 20억짜리 닭을 백숙으로 만들어먹고, 자신을 입사시키려는 진시황 때문에 면접장에 끌려가서도 되레 면접관의 충성도를 테스트한다. 회사로 걸려오는 외국 바이어의 전화에 영어로 유창한 욕설을 내뱉고, 정성들여 작성한 상반기 예산계획서를 그대로 갈아버린다. 모든 행동과 언변에 거침이 없다. 두려운 게 없는 인물이다.

샐러리맨의 심기를 긁을 법한 언사는 또 어떤가. 돈이 없다는 유방(이범수 분)에게 "다이아를 팔면 되지 않냐"라고 무심하게 내뱉는 그 입. 드라마가 아니라 옆에 있었다면 오리 주둥이처럼 확 잡아당기고 싶었을 거다. 특히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샐러리맨 곁이었다면 돌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던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말 한마디로 백성들의 공분을 샀는데, 정려원은 되레 인기를 얻고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형 캐릭터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한국판 '패리스 힐튼'이 먹혀든 것이다.

'한국판'이라는 말에 그 공감의 기저가 있다. 정려원이 "이해됐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여치의 역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 여치의 안하무인 행동에는 자신의 부모를 죽음으로 몬 냉정한 진시황이 있었던 것. 경쟁사회에 도태된 자신의 아버지를 "무능하고 나약하다"라고 치부해 자살로 내몰았다.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 한 불행한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며 여치는 경쟁을 거부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여치의 가족사는 경쟁을 강요하는 시대에서 낙오된 자들에게 묘한 울림을 가져다준다. 경쟁에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해서 무의미한 인생은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 같은 것.

확대해석을 자제한다하더라도 여치의 캐릭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심지어 내주 방송될 5회에서는 거지꼴로 변신한 여치가 예고되기도 했으니, 혹시 그간 여치의 행동에 분노했던 이라면 통쾌한 웃음을 얻을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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