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꾼' 최효종의 바른말, 박수칠때 아껴라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2.01.09 18:12 / 조회 : 5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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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다른 것 다 필요없이 북극점퍼만 있으면 돼요."


"점퍼가 두껍고 크면 클수록 학교내 영향력도 커지기 마련이에요."

"두껍고 큰 점퍼는 너무 비싸다고요? 학교에서 가장 조용하고 친구가 없는 친구에게 '벗어라' 하면 돼요."

8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사마귀 유치원'. '일수꾼' 최효종은 이날 '학교에서 리더십 있고 잘나가는 일진되기 방법'에 대해 특유의 입담을 풀어놓았다. 중고생들의 '교복'이라 불릴 정도로 애용되며 색깔별로 입는 층(?)이 다르다는 모 패딩점퍼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현실과 학원폭력 실상을 재미있게 풍자한 것.

그러면서 예의 '비판'을 빼놓지 않았다. "친구들이 모두 졸업 후에 대학교 갈 때, 우리들은 큰 집에 가요." "친구들이 12학번으로 불릴 때 우리는 3916번으로 불리게 돼있어요." 먼저 나온 '풍자' 부문만 들었더라면 내심 "최효종, 뭐 하자는 거야?"라고 불쾌해 했을 대다수 방청객과 시청자들은 이 따끔한 비판을 들으며 "그러면 그렇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자가 내심 놀라고 걱정한 것은 이렇게 분위기를 잘 이끌어간 '일수꾼' 최효종의 갑작스러운 클로징 멘트다.

"청소년 여러분. 소위 잘나가고 멋진 친구는 손을 들었을 때 (맞을까봐) 피하는 친구가 아니라,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친구에요."

한마디로 매끈하게 잘 차려놓은 풍자개그 판을 '바른생활' 사나이의 경직된 내레이션으로 급히 마무리하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예전 1980년대 학생운동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주제로 한 민중극 막판에 전 출연진이 나와 "양키 고 홈!"을 외치는 그런 정형화한 느낌?

어쨌든 최효종의 최효종답지 않은 이날 마무리 멘트는 최근 강용석 의원과 공방을 펼친 끝에 획득한 '풍자개그'에 대한 사명감, 혹은 신랄한 '풍자개그'가 퍼뜨린 열렬한 반응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최효종은 지난해 11월 한 달을 아주 뜨겁게 보냈다. "국회의원 되는 것 어렵지 않아요"라며 선거철 정치인들의 한심한 작태를 풍자한 데 대해 강용석 의원이 집단모욕죄로 고소를 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며 '진학상담 선생님 일수꾼'의 인기 혹은 주목도가 배 이상으로 높아졌던 것. 최효종은 이후 '개콘' 선후배들과 힘을 모아 방송에서 강 의원 '디스'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이런 말까지 했다.

"전 국민이 고소를 했다면 그만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개인이 고소했다면 계속 할 겁니다."

실제로 최효종은 강 의원이 고소를 취하한 다음에도 풍자개그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지난 2일 방송분에서 "아무리 불을 잘 꺼도 도지사의 목소리를 기억못하면 좌천될 수 있답니다"라며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119 전화 논란'을 대놓고 빗댄 것. 이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까지 강 의원이 고소한 방송내용에 대해 '최효종 발언에 문제없음' 결정을 내려 자신의 풍자개그에 날개를 달아준 터였다.

물론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친구~" 이런 바른 말을 했다고 '경찰차 출동 안하고 쇠고랑 안차'는 것은 물론이고 '개콘' 시청률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최효종의 이런 멘트 직후 방청객에서는 이날 방송분에서 가장 큰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달리 생각하면 개그맨이 개그 코너에서 이런 바른 말, 곧은 말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풍자개그는 개그와 풍자가 화학적으로 어울려야 제 본분이다. 어차피 풍자와 해학이 개그 혹은 코미디의 본령이라고 머리에 철 든 때부터 우리는 수없이 배우지 않았나? 그러나 코미디언이 풍자와 해학을 구호로만 외칠 때, 선한 이미지와 바른 생활 태도를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처럼으로 읊을 때, 그 코미디는 빛을 잃기 마련이다. 아니, 무엇보다 그런 개그는 재미가 없다.

코미디 도중 무대 앞쪽으로 나와 "전 국민이 고소를 했다면 그만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개인이 고소했다면 계속 할 겁니다"라고 말한 것은 한 번으로 족했다. 또한 "자신을 돌볼 틈도 없는 소방관을 위해서 올 겨울에는 자나 깨나 꼭 불조심 해봐요~"(2일 방송분)라고 '명랑하게' 말한 것도 한 번으로 족했다.

'일수꾼' 최효종의 속이 다 시원해지는 풍자개그를 더 보기 위해서라도, 지금 최효종은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재기발랄한 풍자와 해학이 정형화한 클로징 멘트에 짓눌려서는 절대로 안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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