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맛쇼' 김재환 감독 "캐비어 삼겹살이라도.."(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1.06.09 16:07 / 조회 : 14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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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감독 ⓒ이동훈 기자


통렬한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 후폭풍이 거세다. 뒷돈이 오간다던 지상파 맛집 프로그램 문제가 세간에 오르내린 것은 오랜 일이지만 직접 뛰어들어 그 전모를 카메라에 담은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MBC 시사교양국 PD 출신 김재환 감독은 직접 음식점을 차리고 1000만원을 건네 SBS '생방송 투데이'에 출연하기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다른 제작진들은 KBS 'VJ특공대' 등 다른 맛집 코너의 가짜 손님으로 등장, 고발에 함께한다.

여의도에 위치한 제작사 B2E에서 김재환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각종 서류와 기자재가 가득 싸인 사무실. 창 정면으로 MBC 본사가 보였다. 김 감독은 옆 건물 너머엔 KBS 본관이, 건물 뒤편으로 쭉 가면 SBS가 있다면서 웃음 지었다. 방송3사의 맛집 프로그램을 예외없이 꼬집은 다큐를 만들기에 참으로 절묘한 장소다.

'트루맛쇼'는 지난달 제 12회 장편경쟁부문에 초청돼 첫 선을 보인지 약 한달만에 화제와 입소문을 타고 극장에 정식 개봉했다. MBC가 제기한 상영금지가처분소송이 전면 기각되면서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김재환 감독은 논란은 예상했다면서도 "태국에서 쓰나미를 만났는데 눈 떠 보니 부산앞바다에 와 있는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MBC가 소송을 했을 때 '올커니' 하지 않았나.

▶거기까진 아니고, 사실 소송이 안 들어올 줄 알았다. 합리적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 만약 소송을 한다면 MBC를 사칭해서 영업을 한 홍보대행사를 걸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모든 게 알려지게 되니까 홍보대행사 직원 하나의 비리로 몰고 가서 자술서를 쓰게 하고, 그걸 바탕으로 소송이 들어온 거다. 영화에 나온 내용 외에 진행 과정 상의 녹취를 남겨놓지 않았다면 우리가 뒤집어 쓸 수도 있었을 거다. 전면 기각이 됐으니 MBC로선 망신을 당한 셈이 됐다. 김재철 사장이 사람을 많이 모아준 것은 감사하다. 아무도 안 보고 극소수로 개봉해서 사라질 수도 있었는데 덕분에 기자분도 모이고. 시간이 나면 캐비어 삼겹살을 사드리고 싶다.

-방송사 PD 출신이라 그런가. 방송 3사를 더 아프게 꼬집었다. MBC는 김재철 사장 신년사를 포함시켰고, KBS는 수신료 문제를 거론했고, SBS 또한 모토를 비꼬았더라.

▶이거, 아는 놈이 더 한다는 얘기인 건가.(웃음) 사실 SBS와 KBS 사장의 멘트를 따기 위애서도 상당 기간 사람들을 움직였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국회에서 말한 부분을 국회방송에서는 팔 수가 없다더라. 시무식 장면을 찍었다고 영화에 내면 '주거침입'으로 (소송) 걸릴 수 있다. MBC는 괜찮았다. 그 장소가 남산국악당이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

▶불과 1주일 전에 영화홍보사가 생겼다. 그 전에는 보도자료 하나 뿌린 적이 없다. 4월29일 전주에서 첫 상영을 하고 관련한 기사가 나가고 인터뷰가 나가고 했는데 그 뒤로는 막 흘러갔다. 마치 무슨 쓰나미에 휩쓸린 느낌이다. 태국에서 쓰나미를 만났는데 정신 차려보니 부산앞바다에 와 있는 거지. 모 영화기자가 그러시는데 영화제 장편경쟁에 소개된 영화가 이렇게 빨리 개봉한 것은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영화를 보신 분이 많지 않았는데 왜 그럴까 했는데, 수없이 속아오신 분들이 지닌 TV 맛집의 아픈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서가 아닐까 한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누군가 온몸으로 보여줬구나' 하는 거지. 그간 복용해 온 조미료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뇌로 향하면서 분노의 댓글을 막 달아주시고.(웃음)

-영화를 제작하는 데 쓰인 돈은 얼마인가. 개봉을 했으니 손익분기점도 따져볼 때가 됐겠다.

▶순제작비 5억이 들었다. 2년 계약으로 가게를 빌리는 데 보증금 8000만원에 권리금 5000만원, 다달이 370만원과 세금이 들었다. 거기에 관리비가 매달 150만∼170만원이 들어갔으니 월 600만원 정도가 기본적으로 나갔다. 떨어진 권리금과 보증금을 돌려받는다 해도 인건비 등이 빠진 것을 감안하면 역시 5억 정도가 아닐까. 관람료를 평균 7000원으로 잡으면 16만명이 넘어야 된다. 아 이게 가능할까 모르겠다.

가게는 궁금한 분들 와 보시라고 '북카페 트루맛쇼'로 바꿨다. 인테리어 그대로 두고 핸드드립 커피를 파는데 바리스타 두 명이 하루에 커피 두 잔 판다. 7월이면 계약이 끝나는데, 그냥 가게를 두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개봉관은 얼마 안 되는데 점유율이 높더더라.

▶사실 외롭다. CGV는 대학로 1개관에서 하루 한 번 틀었다. 들어보니 영화 홍보할 때 영화 프로그램에서 프리뷰 나오는 게 정말 중요하다더라. 극장이 다 배급사를 끼고 있는데 방송3사 눈치를 보는 건 당연한 것 같다. '트루맛쇼'는 아무리 능력있는 홍보사가 붙어도 지상파 영화소개 프로그램에 못 틀 거다.

영화 나가고 MBC에서 퇴출됐다는 홍보대행사 측이 사무실에 직접 와서 따진 적도 있다. 경찰 불렀다. MBC에서 억울하면 여기 와서 따지라고 했다더라. 방송은 저를 소송하려고 할 게 아니라 집단소송을 걱정해야 된다. TV보고 잘 되는가보다 해서 프랜차이즈 뛰어들었다가 망했던 사람들이 집단 소송을 걸면 어쩌려고 하나.

-이번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냉소가 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들. '캐비어 삼겹살'이 방송에 34번 나올 동안 그게 이상하다는 걸 사람들이 과연 몰랐겠나. ('트루맛쇼'에 등장하는 프랑스인 셰프에 따르면 고급 캐비어는 30g에 30만원 정도다.) 그 가격이 어떻게 가능하나. 시청자가 지적을 안 했다면 방송사라도 모니터링을 해 보고 합리적인 의심을 가져야 했다. 1000원 추가하면 삼겹살에 캐비어를 먹을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냐.

모두가 가면을 쓴 가운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모두가 중독시키고 또 중독이 돼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상황이 무척 많다. 그런데 따지기 전엔 그걸 모른다. 미국 의료체계 문제점을 수없이 지적했지만 마이클 무어가 '식코'를 만든 후에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총기산업을 꼬집은 '볼링 포 콜럼바인'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나 감독이 패스트푸드를 1달간 직접 먹은 '슈퍼사이즈 미'의 영향도 느껴진다.

▶이런 방식이 아니고선 보여줄 수가 없다. 제가 증언으로서 관계자들을 인터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수사권이 없지 않나. 왜 지금껏 누구도 1000만원을 내고 TV에 출연하는 관행을 못 보여줬나. 바로 식당을 안 차렸기 때문이다. 돈 쓰고 시작 쓰고, 안 해봤던 식당 일을 해야 한다.

이 방식을 쓰면서 연예인 얼굴을 다 드러냈다. 미국과 유럽 다큐멘터리에서는 다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금기로 설정해놨을까. 이상하지 않나? 고발하는 대상은 가리고 음성은 변조해야 한다고 막연하게 설정해 놓은 금기가 있었다. 제작자 스스로 설정한 금기 때문에 아이템을 좁혀가는 경우가 많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 못 만드는 다큐가 있다. 사회에서 합의를 하면 된다. 그러면 유명인이나 연예인이 아무데서나 함부로 말을 못한다.

식당을 차린다는 방식 또한 시도가 안 된 느낌이었다. '슈퍼 사이즈 미'도 한 달 동안 맥도날드 햄버거를 한 달 동안 먹는다는 한 줄짜리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왜 참여하면 안되나. 처음부터 몸을 던져 뭔가를 뛰어넘겠다는 생각이 중요했다. 용기가 필요했다.

대법원까지 가겠다는 결단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소송이 있다면 대법원까지 가서 판례를 만들고 싶다. '트루맛쇼' 자체의 반응도 그렇지만 미디어계의 여러 이슈가 될 만한 요소가 여기엔 담겼다. 소송도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보여드릴 수도 있을 거다.

-벌써 그 영향이 느껴지나

▶모니터를 할 시간이 없어서 다른 분들이 보내준 문자를 봤다. 저는 '맛 프로그램'이 아니라 '맛집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맛이 아니라 맛집이 포커스니까. 몇몇 방송에서는 맛집 소개하는 코너를 없앴다고 하더라.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달라진 점이있다고. 사실 1년에 1만개의 맛집을 소개하는 정도면 미슐랭가이드가 1년 동안 전질이 나와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 '트루맛쇼'가 맛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중요한 건 '트루맛쇼'만 진짜고 여기 담긴 모든 게 가짜라고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가짜에 대해서 합리적인 의심을 갖지 않았던 점에 대해 지적한 거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100% 리얼한 세계가 아닐 수 있다. 미디어가 던져주는 먹거리와 볼거리를 그대로 받아먹지 말고 합리적인 의심을 하면서 살아보자는 거다.

이건 맛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고 돈과 권력에 대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방송은 권력이다. 거기에 돈 내고 출연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교차점이 바로 맛집 프로그램이다. 제작비 조금 주고 아웃소싱하면 홍보기획사가 기웃거리게 된다. 그리고 가짜를 양산하고 타락해간다. 이게 맛 산업만의 얘기가 아니다.

-맛집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에 대해서도 꽤 많은 비판이 이뤄진다.

▶조미료 많이 쓰는 식당 주인의 공통된 이야기는 손님이 중요한다는 거다. 시청자가 이런 맛집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나도 만든다는 것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손님이 왕이고 시청자가 왕인가. 거기서 좀 벗어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이를 받아들이는 건 수용자들에 따라서도 다른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의심이다. 제작진은 불쾌하겠지만 되짚어봐야 한다.

-벌써부터 한국의 마이클 무어에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일단 외모는 닮고싶지 않다.(웃음) 하지만 주의를 환기시키고 아젠다로 대중을 빨아들이는 힘, 표현력이라면 어떤 감독이라도 닮고 싶어할 거다.

아 그런데 논란은 없으셨으면 좋겠다. 이제 플로어 끝났다. 할 일들 산적해 있다. 방송 3사랑 과정이 있을 것이고 법적인 정산이든 뭐든 이어질 것이다. 내년까지 갈 것 같다.

-다음 프로젝트는 뭔가?

▶역지사지 퍼포먼스를 다룬 극영화다. 생각해둔 배우가 있다. '트루먼쇼'보다 큰 퍼포먼스가 보여질 것이다. 재밌을 것이고 황당할 것이다. 논란도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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