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 "사랑, 한 번도 쉬워본 적 없다"(인터뷰)

이수현 기자 / 입력 : 2010.04.25 18:10 / 조회 : 1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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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사진=안테나뮤직


지난 23일 서울 강남의 한 피아노 매장에서 진행된 이색 콘서트 '대실망쇼' 현장. 이 곳에서 정재형을 만났다. '대실망쇼'는 정재형의 새 음반 발매 후 첫 공연이기도 했다.

그간 베이시스에서 솔로 정재형으로, 또 영화음악 감독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이번 음반에서는 온전히 연주자로 다시 변신했다.

이런 다양한 모습 안에서 그의 중심을 잡아줬던 건 언제나 음악이었다. 30세의 나이에 훌쩍 파리로 떠나버렸을 때나, 돌아와서 달라진 그의 또 다른 음악세계를 선보였을 때나 그의 음악은 늘 새로움으로 대중의 귀를 매혹시켰다.

이번에 그가 발매한 음반은 '작은 피아노'라는 의미의 '르 쁘띠 피아노'. 목소리 없이 연주곡 8곡으로만 채운 이 음반에서 정재형은 작곡가로서, 연주자로서 또 다시 대중에게 말을 건다.

'오솔길', '사랑하는 이들에게', '여름의 조각들' 등 서정적인 제목의 노래들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가사 없는 이 음악들을 통해 정재형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나 고민하게 된다. 더군다나 정재형 특유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정재형에게 왜 이런 수수께끼 같은 음반을 내게 됐는지 물어봤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 음반은 지금 그가 대중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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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사진=안테나뮤직


-왜 피아노 연주 음반을 내게 됐나.

▶꼭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었다. 이 시점에서 이 정도의 커리어를 쌓아온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더 나이를 먹어서 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의미가 없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음반은 정재형에게 어떤 의미인가.

▶연주자로서의 정재형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빼고 직접 만든 노래를 연주 한다는 것, 이건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다음 음반에서는 다시 정재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나.

▶그렇다. 원래 이 음반에도 보컬 곡을 넣을까 고민했다. 피아노곡만 쓰기는 너무 힘들어 도망가고 싶었다. 너무 슬럼프여서 환경을 바꿔보려고 파리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도 해봤다.

-음반 작업은 얼마나 걸렸나.

▶몇 개월 작업하면 나올 줄 알았는데 꼬박 1년 이것만 준비했다.

-가사가 없는 이 음반에서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나.

▶제가 가진 큰 콘셉트는 '자연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청자에게 많은 역할을 주고 싶었다. 여백을 많이 넣어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려고 했다. 30%는 청자가 채우는 것이다.

-이번 음반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했지만 모자란다. 피아노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대신 다른 것들을 많이 신경 썼어야 했다. 그래서 엔지니어의 역할도 중요했고. 하지만 한국에서만 작업한 것을 감안하면 꽤 만족도가 높다.

-전작들에서는 애절한 사랑 노래를 많이 해왔다. 하지만 이번 음반에서는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어떠한 심경 변화라도 있었나.

▶40대에 들어서서 너무 슬픈 음악은 청승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제가 하고 싶은 음악들을 해 온 만큼 이번엔 제가 위로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철저하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려고 했다. 그래서 웅장하고 현대적인 느낌의 곡들은 다 뺐다.

-이런 음반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노래가 좀 다르게 느낌으로 들릴 것 같다.

▶라디오에 두 번 정도 출연해 음반에 대해 설명했었다. 이야기를 해주고 나니 더 쉽게 이해하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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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사진=안테나뮤직


-왜 가사를 뺐나. 가사는 대중에게 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지 않나.

▶듣는 사람이 남이 아닌 자기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요즘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틀을 정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지 못한다. 외국에서는 정년을 맞은 이들이 자신을 잃지 않고 행복한 노후를 보낸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속을 잃어버리고 많이 방황하는 모습을 봤다. 이런 음반을 통해 사람들이 주위를 벗어나 '나'만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음악을 제외하고 정재형을 설명한다면.

▶주위에서 '넌 음악 안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걱정한다.(웃음) 사회생활에 익숙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친구인 엄정화가 '그렇게 닫혀있지 말라'는 충고를 해준 적이 있다. '내가 너였다면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서 사람들을 네가 포용할 것 같은데 왜 그러느냐'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감동했다. 이후에는 많이 유연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희열, 이적, 김동률 등 쟁쟁한 가수들이 이번 음반을 높게 평가했는데.

▶서로 음악 이야기할 땐 되게 잔인한 사이다. 하지만 좋은 지인들이다. 옆에 그렇게 칼날 같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 같다. 제 고집도 있지만 어떻게 가야하나 고민할 때 중심을 지키게 해 준다. 기본적으로 다 시니컬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흰소리 할 사람들은 아니라 믿음직스럽다.

-결국 수많은 음악의 주제는 '사랑'이다. 본인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

▶내 인생 최고의 과제다. 사랑을 주제로 노래한다고 하면 쉽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은 굉장히 포괄적인 주제다. 또한 현대인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제게 사랑은 한 번도 쉬워본 적이 없다.

-가수로서 마지막에 되고 싶은 이상형이 있나.

▶없다. 무엇을 하든 제가 계획한 게 있다면 그걸 최고로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혹시 눈여겨보는 후배가 있나.

▶루시드폴, 정순용, 이상순, 카입(Kayip). 보드카레인도 있고.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어떻게 되나.

▶내년께 피아노 연작이 나올 거다. 이번 음반에 들어가지 못한 피아노곡들과 보컬 위주의 곡들을 모을 예정이다. 공연도 계속 하고 영화 음악도 할 거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항상 이번 음반이 마지막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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