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서울대-KAIST부부, 제주정착기(인터뷰)

남형석 기자 / 입력 : 2009.08.27 07:41 / 조회 : 154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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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준 장길연 부부.


제주도에 터를 마련한 건 3년 전 겨울이었다. 책이 있는 휴식 공간, 작업 공간, 놀러 오는 사람들이 머무를 공간을 마련했다. 글을 써서 바깥사람들과 소통하고, 전통바느질을 가르치며 지역사회와 어울리기 시작했다. 박범준(36)·장길연(34) 부부(이하 박장 부부). 그들은 지금 제주도에서 ‘바람 같은’ 삶을 만끽하고 있다.

2005년 1월 이들의 삶을 담은 KBS '인간극장-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편은 박장 부부의 삶을 뒤흔들었다. 도시생활을 스스로 벗어던지고 무주에서 소일거리를 꾸리며 살던 그들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서울대와 카이스트(KAIST)를 각각 졸업한 뒤 좋은 직장과 연구소를 다니던 커플의 소박한 전원생활. 그들의 삶은 ‘엘리트 부부의 귀농’으로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실 귀농은 아니었어요. 작은 텃밭을 가꾸는 모습이 TV에 나오면서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들은 단지 중심지로부터 떨어져 느리고 여유로운 삶을 살뿐이었다. “시골마을로 들어간다고 다 농사를 짓는 건 아니니까요. 굳이 저희의 삶을 정의한다면 ‘탈중심화’, ‘탈집중화’의 삶 정도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어쨌든 그들은 무주를 떠났다. TV방영 뒤 1년여가 지났을 때의 일이다. 집 계약이 만료가 됐기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일반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던 탓도 있다.

그 뒤로는 광양에 잠시 머물며 새로 살 터전을 찾아다녔다. 박범준씨는 무조건 ‘따뜻한 남쪽나라’만을 고려했다. 이유는 하나다. 부인 장길연씨가 추위를 잘 타기 때문이다. 경주의 한옥집, 경남 하동, 전남 순천까지 돌아다녔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번번이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우리가 살 곳이 없나’라고 생각하던 중 제주도가 떠올랐다. 2006년 12월, 무작정 찾아간 제주도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박씨는 “마치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무엇보다도 넓은 공간이 있었어요. 도서관과 작업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는데 그럴만한 공간을 찾기 힘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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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서관 표지판.


처음 제주도에 정착했을 때는 의외로 어려운 일이 많았다. 우선 생각보다 춥고 습한 제주도의 겨울날씨가 문제였다. 새로운 터전을 가꾸는 데 생각보다 돈도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갔다. 힘든 일이 많다보니 부부 사이 갈등도 생겼다.

그러나 바람 같은 삶을 사는 그들은 점차 그 아름다운 섬에 적응해나갔다. 지금은 큰 어려움 없이 제주도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박씨는 “계획을 세우며 사는 편은 아니지만 여기 오래도록 머물게 될 것 같은 느낌은 있다”며 웃었다.

박장 부부는 현재 제주도에서 작은 도서관과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이름은 ‘바람도서관’과 ‘바람스테이’. 바람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 쉼터에 가깝다. “책만 보려면 도내 좋은 도서관들이 많잖아요. 그냥 조용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에 책이 놓여 있는 거죠.” 제주를 찾는 사람이 많은 휴가철에는 하루에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바람도서관을 찾는다. 그들은 방명록에 “책 잘 보고 간다”는 말보다 “잘 쉬고 간다”는 말을 주로 남겨 놓는다.

바람스테이는 15평 남짓한 방 한 칸을 사람들이 머물 수 있게 꾸민 곳이다. “특별한 건 없고 그냥 한적하고 조용해요. 진짜 ‘푹 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펜션자랑을 이렇게 소박하게 하는 펜션주인은 또 처음이다. 박씨는 그만큼 솔직하고 꾸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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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서관 실내 전경.


박장부부는 제주도에서의 삶에 ‘대만족’이다. 아등바등 살지 않고 여유가 넘치는 제주도 사람들 삶의 방식이 그들과 꼭 맞단다. 외롭지 않냐는 질문에도 박씨는 고개를 저었다. “어디가든 공동체는 있고, 우리와 맘이 맞는 사람은 있어요. 특히 제주도에는 타지에서 우리처럼 자유로운 삶을 고민하다 내려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박씨는 “옛 친구들도 심심찮게 찾아온다”고 덧붙여 말했다.

궁금한 게 생겼다. 돈은 그럼 어떻게 벌까. 방 한 칸 펜션을 꾸몄다고 생활비를 충당할 리 없다. “처음 탈중심화의 삶을 꿈꿀 때부터 ‘둘 다 젊은데 뭐든 못할까’라는 생각이었어요. 과수원 과일 따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번역도 하며 돈을 벌었죠.”

현재 박씨는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에세이집도 한 권 냈고, 제주도에 있는 세계자연유산을 소개하는 책도 쓰게 됐다. 장씨는 제주도에 온 여성결혼이민자에게 전통바느질을 가르치고 있다. “어디가든 일은 많아요. 남들보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이지만요.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의미 있는 일은 분명히 있어요.” 궁금증,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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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는 박장 부부.


박장 부부는 당분간 제주도에 머물며 ‘내가 사는 곳을 누구나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탤 생각이다. 현재 지역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작당' 중이다. 지역잡지를 발간할 계획이고, 문화학교를 세울 방안도 함께 구상하고 있다. “평생 제주도에 있지는 않겠지만 이곳을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드는 일엔 욕심이 생겨요.” 그것이 박장 부부가 꿈꾸는 ‘탈중심화’, ‘탈집중화’의 삶을 조용히 전파하는 방식이다.

도시를 버린 뒤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냐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내나 저나 원래 후회란 걸 안 해요. 물건 하나를 잘못 사도 다 쓰일 데가 있다고 웃어넘기죠. 매우 만족하며 삽니다.”

후회할 리가 없었다. 그저 바보 같은 마지막질문을 해 후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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