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도 퓨전이라야 뜬다?

윤여수 기자 / 입력 : 2008.02.0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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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 기방난동사건'


지난 1월30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남양주종합촬영소 전통한옥세트 운당의 너른 마당.

1724년 조선 영조가 즉위하기 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1724 기방난동사건'이 한창 촬영 중이다. '1724 기방난동사건'은 조선시대 뒷골목 건달들이 기방 명월향을 배경으로 벌이는 한판 대결을 그리는 영화다.


조선시대 기방 명월향을 세트로 꾸며놓은 이 곳에 당대 뒷골목을 주름잡는 건달과 주먹패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이들의 머리에는 여느 사극에서 보는 상투도 없고 이들은 도포자락도 휘날리지 않는다. 주연배우 이정재와 김석훈 등의 헤어스타일은 몇 백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젊은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의상 또한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그리는 사극 속의 것이 아니다. 대다수 등장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또 주연배우 김석훈과 김옥빈의 의상은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의상에서 보아온 특유의 문양이 아로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의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상당히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뿐만 아니다. 영화 속 한 공간인 마포 저자거리에는 '짝퉁 가게'가 있고 찜질방까지 등장한다.

이제껏 보아온 정통 사극에서 부러 비껴난 '퓨전'의 분위기가 한껏 풍겨난다.

'1724 기방난동사건'의 연출자인 여균동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아예 "코믹하고 퓨전적인 사극"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말은 이미 영화적 소재 혹은 그 이야기 자체가 현대적 분위기를 안고 있음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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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 홍길동'


여균동 감독은 "왕이나 잘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뒷골목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소위 요즘 '압구정 사람들'이라 할 만하다"면서 요즘 조폭 이야기를 200~300년 뒤로 가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최근의 사극 열풍 속에서 뭔가 생활사적 접근을 하는 건 어떨까,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상상으로부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요즘 사극은 말 그대로 정통 사극과는 다소 다른 느낌으로 관객과 시청자에게 다가간다.

이미 MBC '태왕사신기' 등에서 나타난 현대적 감각의 대사는 "사옵니다"풍이 사극에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증명했다. 시청자는 또 그에 반응했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MBC '이산'은 물론 KBS 1TV '대왕세종', KBS 2TV '쾌도 홍길동' 등 사극에서는 현대적인 억양과 표현의 대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724 기방난동사건'과 KBS 2TV '쾌도 홍길동'의 경우처럼 시대적 고증을 그리 중시하지 않는 사극도 등장하고 있다.

'쾌도 홍길동'의 연출자 이정섭 PD는 "논리적으로 따져들지 말라"면서 그저 상상력의 산물로서 드라마를 봐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여균동 감독의 말에 이르면 이 같은 '퓨전'의 이미지와 느낌의 사극이 갖는 일정한 정체성 혹은 그 의도가 읽힌다.

"우리 세대에게 역사교육은 거의 왕조사 공부가 아니었을까 싶다. 국사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그 탓이었다"는 것, 그래서 "나 혹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왕조들이 아닌 내가 만날 수 있는 친구 같은 사람들을 사극 속에서 만나고 싶었다"는 것, 그 같은 상상력이 지금 우리 시대 사극의 또 다른 한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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