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 "투병 누나 생각하면 웃는연기 가슴아파"

영화 '다세포소녀' 박진우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06.07.15 07:58 / 조회 : 10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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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배우 박진우를 만나보면 그에게 부잣집 외동아들 역할만을 연달아 맡긴 영화 감독과 드라마 프로듀서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또렷한 이목구비, 깨끗한 피부, 흐트러짐 없는 말솜씨와 깍듯한 예의까지. 꽃미남의 외모와 모범생의 태도를 적절히 섞어놓은 듯한 박진우는 순정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소녀들의 이상형 같다.

엽기고교청춘물 만화 '다세포소녀'를 스크린에 옮긴 이재용 감독도 분명 그러했을 터다. 이재용 감독은 단 한번 만남에 영화 속 개성만점 고교생 가운데서도 가장 잘생기고 가장 럭셔리한 귀공자 '안소니'를 박진우에게 맡겼다.

물론 '들장미 소녀 캔디'의 완벽남 안소니와는 궤가 다르다. 박진우의 안소니는 178명의 여자친구와 8900통의 문자메시지, 5000만원짜리 호화시계가 특별할 것 없는, 세상물정 모르는 도련님이다. 박진우의 설명에 따르자면 그는 "그런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남을 무시할 줄도 모르는 바보"다.

"다들 제가 그렇게 곱고 평탄하게 자란 것처럼 보이시나봐요. 사실 가슴 속에는 어둠이랄까, 안좋은 추억들이 좋았던 추억보다 많은데 말이에요."

박진우의 어린 시절은 실제로 부잣집 도련님에 가까웠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 닥친 IMF의 한파는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족 전체가 곤경에 처했고, 설상가상으로 하나밖에 없는 누나는 암세포가 몸 곳곳으로 전이돼 대수술을 받았다. 부모님의 건강마저 악화됐다. 아무 친구들과 어울려 정신없이 놀다가 시험 전날에나 벼락공부를 하던 막내는 갑자기 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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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누나 때문에 의사가 돼야지, 안정적인 공무원이 돼서 돈을 벌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등학교때부터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하지만 부족하더라구요."

동국대학교 공대에 들어간 박진우는 곡절 끝에 배우로 데뷔했고 지금은 연극영화과로 전과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에게는 세상 어둠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소년의 역할이 계속 주어졌다.

"제가 이렇게 밝고 건강한 건 세 가족들 덕이라고 항상 생각하면서 연기해요. 그러다 보니 더 가슴이 아플 때가 있어요. 가족들은 힘들어하는데 저는 나와서 항상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드린다는 게 미안하고 힘들고 그래요."

그래서일까. 박진우는 지금껏 연기해온 여러 왕자님 중에서도 가장 비현실적이고 가장 철없는 '다세포소녀'의 안소니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털어놨다. 박진우는 '이건 그냥 만화같은 얘기니까'라고 생각하면서 현실과의 괴리따윈 그냥 잊고 안소니에게 푹 빠졌다.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였는데도 가장 재미있었고 가장 편안했다"는 그의 말이 왠지 마음에 남았다.

"어두운 캐릭터를 시켜주시면 정말 잘 할 자신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이런 캐릭터를 해야지 하고 기다린다고 해서 저절로 역할이 오는 게 아니잖아요. 노력해야죠. 이렇게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일곱 작품을 했고 부잣집 아들 역을 많이 했지만 그 삶이 제작기 달랐고 저는 그만큼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고. 그래서 저는 다른 스물네살보다 더 성숙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말은 몰라도 "어머니 아버지 누나 사랑합니다. 박진우 가족 파이팅!"이라는 응원은 꼭 써달라며 능청스럽게 부탁하는 박진우는 세상 어려움을 일찌감치 알아버린 속깊은 스물넷인 동시에 자신감 넘치는 열혈 스물넷이기도 했다. 그는 연이은 꽃미남 역에도 조급해하지 않는다며 10분 더 20분 더 노력하겠다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고운 외모 속에 담긴 단단한 심성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성숙한 스물넷 박진우는 그렇게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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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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