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 추창민 감독 밝힌 '7년의 밤' 원작과 차이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3.22 17:14 / 조회 : 3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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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창민 감독/사진제공=CJ E&M


'마파도'를 했고, '사랑을 놓치다'를 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했고, '광해'를 했다. 추창민 감독의 영화들은 따뜻했다. 그와 닮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랬던 추창민 감독이 절치부심하며 내놓은 '7년의 밤'은 전작들과 전혀 다르다. '7년의 밤'은 한순간의 실수로 사람을 죽인 현수와 그에게 딸을 잃은 영제가 똑같은 복수를 하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따스함이란 찾을 수 없다. 정유정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난다긴다하는 감독들이 영화화하려다 포기했다. 각색의 방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창민 감독도 처음에는 피했다. 딸을 폭행하는 아빠, 사람을 치고 유기하는 남자, 이 감정들에 동의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러다가 붙든 '7년의 밤'에 그는 죽도록 매달렸다. 우여곡절 끝에 8개월이 걸린 촬영. 크랭크업한 지 2년이 되도록 잡히지 않는 개봉. 추창민 감독은 집요하게 영화를 붙들었다. 마침내 28일 결과물을 세상에 공개한다. 그의 심정을 들었다. 이 인터뷰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기자 시사회 이후 반응은 봤나.

▶일부러 안보려고 한다. 보면 상처를 많이 받아서. 인터넷도 거의 안하고, SNS도 안한다.


-'7년의 밤'은 여러 유명 감독들이 각색을 시도했다가 포기했다. 그 만큼 영화화하기가 쉽지 않은 원작이다. '광해'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뒤에 왜 차기작으로 '7년의 밤'을 선택했나.

▶나도 처음에 책을 받고 1년을 못하겠다고 도망 다녔다. 나 역시 딸이 둘이다.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원작이 재미는 있지만 설득이 안됐다. 딸을 학대하고, 뺑소니에 시체 유기까지.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 납득이 안됐다. 그러다가 사람마다 어떤 상황에 처하면 해결 방식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막상 상황이 들이닥치면 어떻게 할지 모른다.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아이가 있으면, 왕따를 한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두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며 정말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 하나하나 따로 그 부모들을 보면 다 상식적인데 그 경우는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 처벌이나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두려움 때문에 비상식적이 된다는 걸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각색에 2년 정도 걸렸는데.

▶내가 생각한 결들이 너무 어렵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를 보여주면 굳이 이런 어두운 이야기를 보여줘야 하나란 반응들이 많았다. 내게 원했던 시나리오와 내가 보고 싶던 시나리오가 달랐다. 그걸 절충하는 작업이 오래 걸렸다.

-등장인물 각각의 이야기가 있던 원작과 달리 영화는 현수(류승룡)와 영제(장동건)에 집중했는데. 영화 전반을 죄의식으로 덮었는데.

▶두 남자의 스릴러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고, 부정에 관한 이야기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른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물려받고 싶지 않은 피를 받은 남자가 자기 자식에겐 그 피를 물려주기 싫어서 발버둥 치는 이야기.

-차에 친 소녀를 유기하는 현수나 딸을 학대하다가 막상 죽자 똑같이 갚아주겠다는 영제나, 주인공 두 명 모두 감정이입이 쉽지 않은 인물이다. 상업영화에는 치명적인데. 그러다보니 음악이나 연출로 관객을 인물 대신 상황과 공간으로 끌고 들어가려 한 것 같던데.

▶영화에서 중요한 게 감정이입인데 '7년의 밤'은 그게 불가능하다. 원작을 본 나조차도 그랬으니깐. 그 원작을 가져가는 한 그걸 피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감정이입보다 상징, 이미지, 소리로 관객을 끌고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인지 초반부터 음악이 굉장히 과한데.

▶음악감독님에게 충분한 여유를 못 드린 내 탓이다. 음악을 개봉 두 달 전에야 맡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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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세령호 스틸


-'7년의 밤'은 세령마을이 또 다른 주인공인데. 어떤 식으로 그려지길 바랐나.

▶상상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공간이길 바랐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어딘지 모를. 그런 공간을 찾아내는 게 중요했다. 영제의 집은 처음에는 잔디가 깔린 대저택을 찾아왔는데, 그런 곳보다 인공적인 느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인공적인 느낌이 전혀 없는 공간이길 바랐다.

세령호는 충북 음성에 있는 저수지다. 실제 수몰 지역이다. 그곳은 취수탑을 보고 결정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그 취수탑이 영화에 꼭 쓰이길 바랐다. 나중에 들었지만 조명감독님이 헌팅을 하면서 이곳에서 찍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다고 하더라. 발전차가 두 대 들어와야 하는데 길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번이나 제작부랑 답사를 가서 길을 새로 만들고, 우회도로를 찾았다더라.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야 관객이 따라가기 쉬울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촬영도 마찬가지로 순서대로 찍지 않았다던데. 류승룡은 잠에서 깨는 장면부터 찍었다고 하고.

▶일단 공간 때문이었다. 전국 8도를 돌아다니며 찍어야 했기에 공간이 정해지는 순서대로 찍을 수 밖에 없었다. 편집은 지금이 가장 대중적이고 드라마가 있는 버전이다.

-병원 장면이라든가, 고경표가 운동장에 있는 장면이라든가, 감정 장면을 다 뺀 버전도 있었다던데.

▶이 영화는 감정으로 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정이 붙는 장면들을 다 빼버린 적이 있다. 더 직선적으로 달려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연을 다 설명하면 다른 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같이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렇게 하면 감독의 의도를 관객이 더 모를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런 고민 끝에 중간을 선택하게 됐다.

-쉴 틈이 없다. 숨조차 못 쉬게 하면서 죄의식의 바닥까지 관객을 끌고 가려 했던 것 같은데.

▶너무 우울하고 조금이라도 쉴 틈이 있어야 하지 않나는 지적들이 많았다. 사실 오만한 마음에 어차피 '7년의 밤'은 '광해' 마일리지를 쓰는 건데 언제 내 마음대로 영화를 해보겠어란 마음이 있었다. 그전까지 했던 영화들이 남이 듣고 싶은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하면 안되는 금기 같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찍으면서 점점 그 마음이 퇴색되긴 했다. 나 혼자 작품이 아니니깐.

-류승룡과 장동건, 다 절실하게 이 영화에 참여했는데. 어떤 걸 주문했나.

▶주문이라기보다는 되게 처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처음에는 마일리지 쓴다고 시작했지만 이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끝까지 내려가야 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얼마나 괴로워하고 밑바닥까지 보여줘야 할지, 그 고민들을 나부터 하고, 그 고민들을 같이 해줬으면 했다.

장동건은 테이크를 정말 많이 갔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장동건이 내가 어떤 식으로 힘들더라도 감독에게는 전하지 말라고 했다더라. 다들 그렇게 밑바닥까지 같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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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장동건 스틸


-원래 테이크를 많이 가는 편인데, 왜 장동건은 특히 많이 갔나.

▶두 주인공이 갖고 있어야 하는 감정은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알고 있다고 하면 못했을 것이다. 찾을 때까지 같이 갔다. 끝까지 가보고 못 찾으면 그 중에서 쓰자고 했다.

-장동건에게 M자 탈모를 주문한 건 잘생겼기 때문인가.

▶그렇다. 못 생겨 보였으면 했다. 잘생긴 이미지가 이 영화에는 큰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장동건은 원래도 잘생겼지만, 40대가 넘은 남자들에게 보이기 마련인 기름기가 없다. 난 영제에게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동건이 딸 세령이 죽기 전 "아빠 잘못했어요"라고 했다는 소리를 듣고 보이는 리액션이 있다. 깊은 속을 드러내는 몇 안되는 장면인데 짧게 처리한 이유는.

▶눈물이 마음에 안들었다. 눈물을 안 흘리는 장면도 찍긴 했다. 난 영제라는 캐릭터는 결핍이 그 사람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다 갖고 있지만 아무리 갖고 싶어도 못 가진 게 아내다. 딸 세령은 결핍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령 때문에 우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만 아는 부분이다. 그 부분은 결국 타협한 것이다.

-류승룡은 어땠나. 감독이 말하는 운명을 표현해야 하는 역이었는데.

▶자신의 아이를 잃을 수 있는 아빠의 감정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스스로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등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나 역시 모르는 감정이고, 배우도 모르는 감정이니, 어떤 심정이 되고,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감옥에 있는 장면 같은 경우 표정이 정말 좋았다. 사실 류승룡은 7년이 지난 뒤니깐 살을 빼면서 외형 변화를 주고 싶어 했다. 촬영 여건이 안돼 바로 찍어야 했다. 그런데 그 세월을 그냥 표정으로 보여주더라.

-영화는 원작과 달리 문정희가 맡은 현수의 아내 은주 이야기가 적은데. 원작은 은주의 죄의식도 중요한 대목이긴 한데.

▶선택을 했어야 했다. 원작은 각자가 다 주인공이다. 사실 각색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게 은주의 이야기였다. 영화로 만들면서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 대목이었다. 원작에선 현수가 야구선수였던 게 중요했지만 영화에선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버렸다.

-또 버린 대목은. 고경표가 맡은 현수 아들 서원의 고독과 고통도 원작과 달리 줄어들었는데.

▶서원이 반바지를 입고 공중전화를 한다든지,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다든지, 어떤 장면들은 찍기도 했다. 그런데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하면 이 영화와 달라지더라.

-송새벽이 맡은 승환은 왜 호수에 잠수하나. 안내자 역할인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란 대사가 나온다. 숨바꼭질도 하고. 난 '7년의 밤'이 수몰된 지역으로 우리의 본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은폐됐지만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본성.

'7년의 밤'에 현수는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 트라우마를 잊으려 했고, 잊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고를 내면서 그만 트라우마가 깨어났다. 만일 아버지 트라우마가 없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제는 아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승환은 외면했던 트라우마가 있고. 그런 트라우마들이 수문이 열리고 수몰 지역이 드러나는 것처럼 드러나게 하고 싶었다. 승환은 그 본성으로 안내하는 안내꾼 같은 역할이다.

-미친 여인으로 등장하는 이상희는 이 영화에는 사실 없어도 무방한데.

▶저한테는 그녀가 천사였다. 사실 필요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처음 편집할 때는 그 분량을 다 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여인이 서원이라는 아이를 지켜주려 하는 또 다른 존재가 되길 바랐다. 뭘 할 수 없지만 안타깝게 바라보는, 아이를 지켜주는 천사. 승환이 부정의 또 다른 측면이라면, 그 여인은 엄마의 또 다른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처럼. 나쁜 피에서 벗어나려는 아이를 위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지막 서원의 표정을 그렇게 잡았나.

▶다양하게 많은 표정을 잡았다. 그런데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표정이 되길 바랐다. 서원에겐 하나의 산을 넘었을 뿐이니깐, 그런 표정이었으면 했다.

-촬영이 끝난 지 개봉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동안 끊임없이 마음 속에서 긍정과 부정이 교차했을 텐데.

▶끊임없이 긍정과 부정이 오갔는데 부정이 90, 긍정이 10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끝을 정하지 않았다. 개봉이 정해지면 마무리하지만 그 때까지는 끝없이 계속 편집하고 영화를 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편집본을 보여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힘들었다. 내가 소통을 힘들게 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끼를 갈아서 바늘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하자고 마음 먹었다.

-표현이 직접적이진 않지만 폭력적이다. 특히 딸(이레) 학대 장면은 직접적이지 않은데도 무척 폭력적인데.

▶그것 때문에 고사했었다. 그런데 선택을 했으면 피하지 않아야 했다.

-물의 이미지가 짙다. 각각 물의 콘셉트가 달랐을 것 같은데.

▶비밀이라고 생각했다. 자기도 잘 모르고 살아가는 어떤 비밀들.

-장동건의 마지막 장면은 감정 연기인데 왜 길게 안가고 짧게 갔나.

▶솔직히 말하면 사실 그 장면은 한 테이크로 길게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가고 싶으면 CG를 어떻게 입힐지, 정교하게 준비를 했어야 했다. 상황이 급해지니 정교하게 준비를 못했고, 그러다보니 CG가 잘 안됐다. 그래서 원테이크로 길게 가는 게 도움이 안 될 것이라 생각해서 짧게 갔다. 이렇게 CG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가 처음이다. 650컷 정도 CG가 들어갔다. 내가 부족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은.

▶취수탑에서 영제(장동건)가 현수(류승룡)에게 플래시를 비추는 장면. 시나리오에서 되게 반응이 안 좋았다. 때리든지, 어떤 물리적인 접촉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았다. 하지만 난 그게 오영제라고 생각했다. 반응을 보고 계산하는. 그 장면은 하룻밤에 찍어야 했다. 그런데 밤에 그런 장면을 찍으려면 각도를 맞추기 위해 조명 발전차 두 대를 다른 방향에서 다시 설치해야 했다. 다시 방향을 바꾸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전쟁처럼 찍었기에 만족이 컸던 것도 있다. 스틸기사님이 그 장면을 포스터로 써도 될 것 같아요라고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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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류승룡 스틸


-류승룡, 장동건의 연기에 애착이 가는 장면은.

▶류승룡은 아버지(최광일)를 만났을 때. "현수야"라고 최광일이 부를 때의 표정과 그 때의 류승룡의 표정, 둘 다 너무 좋았다.

장동건은 아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서에 나오면서 "미친년"이라고 할 때. 시나리오를 쓰면서 배우가 어떻게 해줄까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좋더라.

-나이키 운동화. 워커. 맨발, 등등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는데.

▶원작에서 정유정 작가의 의도한 바를 그대로 가져왔다. 나이키 운동화는 원작에선 훨씬 대과거에 있는 것이지만 일부러 땡겨썼다.

-'7년의 밤'이란 제목이 감독에게 주는 의미는. 정유정 작가와는 다른 의미일텐데.

▶우선 제목 자체가 흡입력이 뛰어났다. 처음 듣는 순간 띵 하고 뒤통수를 치는 느낌이었다. 밤이란 게 여러 의미가 있고, 그 의미가 다 다르게 전달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차기작은.

▶아직 다음 일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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