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니콜슨

스크린 뒤에는 뭐가 있을까(19)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입력 : 2018.01.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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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니콜슨 /AFPBBNews=뉴스1


"남자한테서 책임감을 빼면 그게 여자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에서 강박증이 있는 데다가 뒤틀리고 냉소적인 유달 역을 탁월하게 해낸 잭 니콜슨이 비열한 독설로 여성을 비꼬는 대사다. 영화를 보면서 니콜슨을 한 대 때리고 싶은 관객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달과 여주인공 캐롤(헬렌 헌트 분)은 나중에 '잘된다.'


영화 중간에 니콜슨이 헌트에게 "당신은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합니다"라는 명대사를 하기도 한다. 남자가 여자에게(반대일 수도 있겠다)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으로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 1996)의 톰 크루즈 대사 "당신은 나를 완성시킵니다"에 견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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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의 잭 니콜슨 /AFPBBNews=뉴스1


니콜슨은 기구한 가족사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누나가 있었는데 니콜슨이 스물여섯일 때 암으로 사망했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났을 때 시사주간지 타임의 한 기자가 니콜슨을 취재하다가 그 누나가 사실은 니콜슨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열일곱에 니콜슨을 낳았고 아버지가 누구인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조부모가 부모 역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니콜슨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부모로 알고 성장했다. 가족들, 특히 어머니의 심정이 오랜 세월동안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니콜슨은 이 일이 매우 극적이기는 했지만 이미 나이가 꽤 든 서른일곱에 일어난 일이라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 늦게 자기가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지만 친자확인 검사는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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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의 잭 니콜슨 /AFPBBNews=뉴스1


잭 니콜슨(Jack Nicholson)은 60년이 넘는 연기 경력에서 언제나 기성의 사회구조에 저항하는 아웃사이더 역을 한 배우다. 상복도 많아서 세 번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남우주연 두 번, 조연 한번. 그리고 마이클 케인과 함께 196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쳐 매 10년마다 빠지지 않고 아카데미상 후보에 선정된 두 배우 중 한 사람이고 남자 배우 중에서 가장 많이 후보에 올랐다(12회). 1995년에 AFI 평생공로상을 받았는데 최연소였다.

이제는 IMDb가 역사 상 가장 위대한 배우로 꼽는 전설적인 니콜슨이지만(2위는 말론 브란도) 초반에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생을 했다. 할리우드에 처음 왔을 때 한 일은 '톰과 제리' 팀의 조수였다.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가 1969년 작인 '이지 라이더'(Easy Rider)가 반전의 기회를 주었다. 여기서 니콜슨은 험프리 보가트 계열의 반영웅주의적 캐릭터를 연기해서 큰 주목을 받는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가 되었고 하루 밤 사이에 반문화 운동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니콜슨은 1970년대에는 말론 브란도나 제임스 딘 반열의 배우로 각광을 받았고 '잃어버린 전주곡'(Five Easy Pieces, 1970), '마지막 지령'(The Last Detail, 1973),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1974년 작 네오 느와르 '차이나타운'(Chinatown)으로 세 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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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제 7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녀주연상을 수상한 잭 니콜슨(사진 오른쪽)과 헬렌 헌트 /AFPBBNews=뉴스1


그리고 마침내 니콜슨은 마이클 더글러스가 공동제작자인 1975년 작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로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게 된다. 정신질환자 연기에 주어진 첫 아카데미상이다. 이 영화는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도 수상했다. 니콜슨의 두 번째 남우주연상 수상작은 20년이 더 지난 후의 작품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다. 상대역인 헬렌 헌트도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어 퓨 굿맨'(A Few Good Men, 1992)에서는 애국심과 과도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제섭 대령의 역할을 인상적으로 해낸다. 마치 주술에 걸린 듯한 연기다("You can’t handle the truth!"). 아마 관객 중에는 제섭 대령을 지지하고 톰 크루즈를 미워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바웃 슈미트'(About Schmidt, 2002)에서는 죽은 아내의 외도를 뒤늦게 알고 방황하는 은퇴자의 모습을 잘 그려내 다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선정되었다.

'애정과 욕망'(Carnal Knowledge, 1971)에서 니콜슨과 같이 작업했던 마이크 니컬스 감독은 "잭 니콜슨은 연기를 하지 않는다. 잭 니콜슨은 연기 그 자체다"라는 말을 남겼다. 니컬스는 '졸업'(The Graduate, 1967)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던 명감독이다.

잭 니콜슨은 자기가 맡은 캐릭터를 탁월하게 소화하는 역량을 가진 배우임과 동시에 그 캐릭터들의 다양성으로도 극찬을 받는다. 그래서 관객들은 니콜슨의 많은 영화를 보면서 저 캐릭터들 중에 니콜슨 본인과 가장 근접한 것이 어떤 것일지를 궁금해 하게 된다. 니콜슨은 "전부이기도 하고 아무도 아니기도 하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모든 캐릭터에는 조금씩이라도 자신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고 덧붙인다.

잭 니콜슨은 말론 브란도와의 우정으로도 유명하다. 비벌리 힐즈 지역에서 몇 년 동안 바로 이웃에 살았다. 워렌 비티도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세 사람이 사는 동네의 길은 'Bad Boy Drive'라는 별명을 얻었다. 브란도가 2004년에 사망하자 니콜슨은 브란도의 방갈로를 610만 달러를 주고 사들여 철거했다. 브란도의 업적을 기리고 전설을 보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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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I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는 잭 니콜슨 /AFPBBNews=뉴스1


니콜슨은 '배트맨'(Batman, 1989)에서 조커 역을 했는데 영화가 흥행대박을 내면서 큰돈을 벌었다. 니콜슨은 코믹에서 처음으로 스크린으로 나온 조커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네이피어가 조커로 변신하는 과정은 영화사 상 가장 탁월한 영상들 중 하나다. 아무 배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 배트맨(마이클 키튼 분)의 존재감조차 흐려졌다. 니콜슨 본인도 조커 캐릭터를 각별히 좋아해서 영화에 사용된 의상을 7만 달러에 구입했고 AFI 평생공로상 시상식에서는 조커 얼굴이 무대 배경으로 쓰였다. 니콜슨의 지금 자산은 4억 달러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부분이 피카소, 마티스 등 미술품과 부동산이다.

니콜슨은 여자와 여배우들을 좋아한다. 그것도 과하게 좋아한다. AFI 평생공로상 시상식 때는 페이 다너웨이, 캔디스 버겐, 셜리 맥클레인을 포함한 할리우드의 많은 여배우들이 니콜슨의 동료와 친구 자격으로 핑크색 테이블보가 씌워진 주빈석에 나란히 앉는 장관을 연출했다.

AFI 시상식에서 니콜슨은 자신이 배우로서의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감동적으로 표시하면서, 온 세계를 돌면서 일해야 하는 힘든 배우로서의 생활이 자신을 해방시키고 완성시켰다고 정리했다. 중간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니콜슨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담아서 시상식에 온 모든 사람들에게 말한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거의 전무후무한 천재적 대배우임과 동시에 젊은 시절 술, 마약 문제로 항상 구설에 올랐던 문제적 인물이 잭 니콜슨이다. 그래서 직업적인 능력과 사생활을 따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니콜슨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시에, 가까운 친구들은 몹시 챙기고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 때문에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정이 많은 사람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로 상을 받았을 때도 수상소감에서 "이 자리에 온 여러분들 모두 멋지게 생기신데 대해 감사합니다"라고 한 다음 먼저 간 친구들 이름을 일일이 다 챙겼다. "그 친구들 이제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지만 여기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사람은 가끔씩이라도 보지 않으면 마음에서 떠나게 되는데 정말 각별했던 모양이다. 이런 잭 니콜슨에 대한 평가는 관객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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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니콜슨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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