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아기와 나' 손태겸 감독이 말하는 청춘의 불안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12.0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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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나' 손태겸 감독 / 사진제공=KAFA, CGV아트하우스


'아기와 나'는 손태겸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단편 '야간비행'으로 칸 시네파운데이션 3등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던 그는 장편 '아기와 나'로 본격적으로 한국의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영화는 청춘의 불안감이 가득하다.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가 아기만 남겨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아기가 자신의 아들이 아닌 것을 알게 된 말년 병장은 막막한 심정으로 없어진 그녀를 찾는다. 사회로 첫 발을 내디디려 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 없는 이의 더딘 성장담이 공감을 자아낸다. 주인공 도일 역 이이경과 여자친구 순영 역 정연주의 열연은 '여름방학'으로 배우 이수경을, '미생 프리퀄'로 임시완을 발견했던 손태겸 감독의 남다른 눈썰미를 실감케 한다. 지인에게서 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썼다는 손태겸 감독은 순정만화를 연상시키는 제목은 '전복시킨다는 느낌으로 고집했다'며 "누구나 학교를 가고 졸업을 해 가정을 꾸리고 하는 게 당연하다고, 그게 보통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보통이 쉽지 않은 시대"라고 말했다.

-'아기와 나'가 2년 만에 개봉했다.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거대한 목표가 장편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든 영화가 극장에서 걸릴 수 있을까. 그 목표가 이뤄진 것 같아서 좋으면서 부담도 된다. 싱숭생숭하다. 사실 극장 어플에 개봉 예정작 포스터가 뜨는 순간 쌓였던 게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부족하나마 우리가 뭔가 하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축도 하고 감사했다.

-순정만화 같은 제목과 달리 답답한 현실을 그린다.

▶'아기와 나'라는 타이틀이 대명사 같은 이미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기존의 영화와 만화가 있고, 접하는 분들이 어딘지 모르게 포근한 이미지가 있다고 하더라. 아기와 주인공이 등장한다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것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수만가지 일이 벌어진다. 제목과는 정말 다른 방향의 일들이 나타날 수 있다. 역으로 전복시킨다는 느낌으로 제목을 고집했다. 지인을 통해 실제 일어났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다보니 현실 사이에 더 드라마 같은 일들이 있을 수 있다고, 겉으로만 봤을 때는 알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고, 그걸 고스란히 현실적으로 재현하는 느낌으로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여러가지를 조금 더 한번 더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아기를 두고 사라진 여자, 그리고 그 아기가 자신의 아기가 아니란 걸 알게 된 남자가 여자를 찾아다니는 줄거리는 통속극 느낌마저 든다. 전해 들은 이야기의 어떤 부분에 끌렸나.

▶주변에서 '무슨 영화야'라고 물어보면 '막장드라마 같은 거야'라고 농담식으로 이야기한다. 2011년쯤 이 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 떠오른 궁금증은 '아기는 어떻게 됐지?'라는 거였다. 실제 사연의 주인공은 지금 아이를 키우고 계신다더라. 훌륭하시지만 냉정하게는 육아도 결혼도 몰랐던 상황에서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수도 있는데 왜 아기를 끌어안게 됐을까 궁금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데는 놓을 수 없는 끈 같은, 강력한 힘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궁금증을 파고들다가 생각하게 됐다.

-출발부터 결말이 정해져 있었던 셈인가?

▶실제 이야기에서 60~70% 뼈대를 가져오지 않았나 했는데, 한가지 달랐던 점은 실제 사연에서는 여자분을 끝내 못 찾았다. 그래도 품 안에서 아이를 키웠다고 들었다. 현실이 고난이고 피폐하고 어렵다는 걸 이야기하는 더 훌륭한 작품도 물론 있다. 그것도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상태로 머무는 느낌이보다는 지금처럼 아기도 돌아오고 떠났던 것들이 모이는 그림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여러 각색과 수정을 거쳐 뒷부분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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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나' 손태겸 감독 / 사진제공=KAFA, CGV아트하우스


-롱케이크로 완성된 마지막 신이 인상적이다. 아기는 화면 밖으로 나가 소리만 들린다.

▶실제로도 후반부에 라스트신을 찍었다. 아기가 그렇게 단시간에 빨리 자라는 지 몰랐다. 일어설까 말까 했던 친구가 한달 반 사이에 뛰어다니고, 거부의 의사도 적극적으로 배운 느낌이 들었다. 화면 안에 아기가 존재하는 느낌으로 출발했는데 억지로 통제할 수 없는 성장이 있더라. 처음 생각처럼 화면 안에 아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함께 한다는 느낌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내 좌충우돌하며 배우며 찍었다.

-아기와의 첫 촬영 마치고 펑펑 울었다고.

▶사전조사를 했지만 육아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다. 영화라는 게 모든 포지션과 약속으로 진행되는데 아기 배우는 디렉션을 주거나 약속할 수가 없으니 어떤 행동을 하든지 적응하고 보여줄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1개월 아기가 영화 촬영을 하는 동안 돌잔치를 하고 이후 보충 촬영도 했는데 폭풍 성장을 하는 시기더라. 첫 촬영을 하고 나서는 펑펑 울었다. 말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어디까지 강제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지가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숙제처럼 다가왔다.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누구에게도 누가 되지 않은 아름다운 과정을 만들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안 되니까 정말 속상했다. 아기와의 촬영이 끈기와 기다림, 배려의 싸움이라는 걸 알았다. 첫날 첫 테이크를 몇 시간에 걸려 한 컷을 찍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그날 촬영이 끝나고 예준이 아버님이 돌아가신다고 인사를 하시는데 눈물이 왈칵 터지더라. 폭포수처럼 눈물이 나서 저도 깜짝 놀랐다. 다행히 예준이 부모님이 무척 호의적이셨고, 영화에 누가 되지 않게 아이를 케어하겠다는 의지가 있으셨다. 많은 짐을 덜어주셨다.

-'아기와 나'는 끈기있게 도일의 시점을 따라간다. 미덕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 속의 순영을 끝까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쓰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저 여자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거였다. 전지적인 시점으로 구성해 남자의 이야기와 여성의 상황이 도중 작은 신이라도 융합돼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리얼한 현실이란 상대가 뭘 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한 가운데 흔적을 쫓아가는 연속일 것 같았다. 정말 옆에서 지켜보는 시점에 발을 딛고 시점을 나누지 말자고 생각하고 고집을 부렸다. 다 끝나고 편집을 하는데 그때야 이 인물(순영)이 돌아오는 구성을 넣고 따뜻함을 반스푼이라도 넣고자 음악을 넣었다면 좀 더 납득 되는 소통을 위해 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자체가 내 의도라는 걸 알릴 방법이 있었을 텐데, 배우고 반성했다. 내공이 있었다면 현명하게 표현했으리, 하는 부분이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순영을 두고 '걸레' 운운하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사실 그 남자들이 '걸레'라는 걸 보여주는 신이지만 그 자체가 불편하기도 하더라. 영화를 찍고 개봉하기까지 2년 동안 여성에 대한 묘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실히 예민해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 욕할 처지가 아니다 하는 느낌으로 쓰기는 했다. 함부로 이야기하고 거친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보라, 문제제기를 해 비판의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 현실은 더 할 수 있다 생각했고, 이 정도 불편함이 있어야 한다고 당시 선택한 게 맞다.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후반작업 하면서 겁이 나더라. 그런 묘사를 유심히 바라보시고 예민하게 평가하는 시대다. '불편한 부분이 있네요'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시대가 요구하는 책임감을 느꼈다. 찍을 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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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나' 손태겸 감독 / 사진제공=KAFA, CGV아트하우스


-반면 도일의 상황, 심리에 공감하는 남성 관객들도 상당했다.

▶나와 내 주변의 시선을 보는 것 같다는 남성 관객들이 계시더라. 군대에서 울타리를 바라보며 이 속이 더 편안하다 느껴진다 하는 대목은 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주변의 재능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지치고 재능도 없다는 생각이 들고 자퇴 목전에까지 간 시기가 있었다. 군대에 들어갔는데 구속돼 있지만 계급이 올라가다 보면 편해지니까 적응이 된다. 제대를 2주 앞두고는 '한 달만 더 있으면 안되나' 하면서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드나' 생각도 했다. 비슷한 경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이 세상에 부딪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구나 했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남연우가 연기한 '포르셰 타는 남자'는 바람 안 피우는 남자가 어딨냐고 툭 대사를 던진다. 아무리 그래도 말을 저렇게 하다니, 하는 느낌이 들지만 쉽게 술먹고 행동하는 데 대해 껍데기를 벗기는 느낌으로 심어놓은 지점도 있다.

-그런 청년의 불안감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느낌이다.

▶누구나 학교를 가고 졸업을 해 가정을 꾸리고 하는 게 당연하다고, 그게 보통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것이 보통이 맞나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고 뭔가 해보려 하는데 작은 것 하나 잘 안되는 영화 속 캐릭터 같은 상황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멀고 힘들겠나. 당연히 돈을 벌고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야속할까. 지금은 그것이 쉽지 않은 시대다. 우리가 가진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각자 따져보면 그런 고충은 자기만의 것이 된다. 그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이경의 연기가 돋보인다.

▶이송희일 감독의 '백야'에 단편을 저와 함께 한 전신환 배우가 나와 보러 갔다가 이이경 배우가 너무 눈에 들어왔다. 섬세할 것 같으면서도 날카롭고, 투박할 것 같은데 슬픔을 표현할 것 같더라. 아우라가 너무 좋은데 연기력도 기본적으로 있었다. 꽂힌다고 하지 않나. 그때 제가 그랬다. 시나리오를 쓸 때도 상상하면 이입이 잘 되어서 이이경 배우를 떠올렸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접촉해야겠다 했는데 운 좋게 함께 하게 됐다. 실제 만나보니 자신의 경험에 비춰 이입하는 부분이 있었고, 캐릭터 이해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배우의 능력이나 느낌이 이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이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믿음이 생겼다. 작은 프로젝트다 보니 본인이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열정적으로 임해주셔서 고맙다. 당시 좀 더 밝고 발랄한 캐릭터를 하셨는데 저는 좀 더 복합적인, 넓은 스펙트럼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고 봤다. 배우 스스로 원했던 바가 저와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정연주도 마찬가지다. 신은 적은데 사연은 많으니 쉽지 않았을 듯하다.

▶표정이나 말 하나로 그 간의 모든 것들을 표현하고 그렇게 견디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걸 표현해야 했다. 정연주 배우밖에 안 떠올랐다. 윤가은 감독의 '손님' 마지막 장면이 계속 생각났다. 해지는 데 가만히 서 있는 얼굴만으로도 드라마가 보여진다. 이런 깊은 표현력이면 충분하다 했다. 마지막 장면 보충촬영을 3번 했는데 본인은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가 하고 자책을 많이 했다더라. 사실은 그게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가 많았다.

-'여름방학'의 이수경, '미생 프리퀄'의 임시완 등 배우들의 힘을 끌어내는 데 남다르다는 평을 다시 확인했다.

▶이번 영화를 본 제 지인이 농반진반으로 '니가 이 작품으로 다 욕먹어도 배우 연기는 안 먹을거야'라고 하는데 들으며 기분이 좋긴 했다. 캐스팅에 있어서 직관에 의존한다. 사람 관찰하는 걸 좋아하고 취미기도 하다. 아르바이트로 매장에서 세일즈를 하기도 하고. 내가 생각했던 비전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것이 맞는 사람을 캐스팅하는 게 전략이다. 이 배우가 제일 좋다는 생각이 들면 파고들어 끈질기게 들어가는 게 있는 것 같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첫 장편이 나왔다. 앞으로는 어떻게.

▶이상만 생각하면 내가 흥미있고 구미가 당기는 주제라면 메인스트림이든 인디 영역이든 가리지 않고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다수가 아닌 테두리 밖의 사람들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호기심 갖는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싶다. 다만 제가 대단히 많은 사람들 마음 움직일 만큼 오락석 장르적 재미 짜는 데 능숙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만든 작품도, 제가 보고 흥분했던 작품들도 그랬다. 그러면서 여기까지 와서 여기까지 와서 많은 관객들 만난다는 게 기쁘면서도 부담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이면서도 좀 더 넓게 소통할 수 있을 만한 방식들을 깨우쳐서 작업하게 되길 바란다. 현실적으로는 먹고 사는 직업감독이 꿈이다. 여든 가까워 지팡이 짚고 현장 나오는 마틴 스콜세지를 롤모델로 생각한다. 너무 대단한 감독이라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한 계단에 올라갔다 하지만 앞으로 올라가야 할 계단이 엄청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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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나' 손태겸 감독 / 사진제공=KAFA,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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