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원신연 감독이 밝힌 #살기법 #원작 #설경구 #설현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9.07 11:53 / 조회 : 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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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 /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려졌다시피 원작이 소설이다. '연쇄살인마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면?'이란 콘셉트를 끝까지 밀어붙인 김영하 작가의 원작소설은 과감한 1인칭 시점과 툭툭 던지는 듯한 단문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베스트셀러. 과감하게 그 영화화를 이끌게 된 이는 스릴러 '세븐 데이즈', 액션대작 '용의자' 등을 연출한 원신연 감독이다.

남들은 난감하다고 손사래를 칠 만한 묵직한 원작을 오히려 신나게 변주했다는 그는 원작의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의 스릴러 영화를 완성해냈다. 기둥은 물론이고 서까래, 벽돌 하나까지 그대로 이용해 완전히 다른 집을 재건축해놓은 느낌이다. 원작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은 원 감독은 이를 존중하면서도 소설을 보지 않은 관객들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그가 밝힌 '살인자의 기억법' 탄생기, 그리고 반드시 설경구라야 했던 주인공 설경구를 비롯한 배우들의 이야기는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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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 /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을 보고 원작소설을 한번 다시 읽었다. 원작을 굉장히 의식 혹은 존중했다는 느낌이었다. 김영하 작가가 만족스러워했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되더라.

▶존중하면서 작업했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존중할 수밖에 없을 만큼 탄탄하고 완성도가 있었다. 어떤 식으로 훼손하더라도 훼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만큼. 용기있고 자유롭게 했다.

-베스트셀러 원작이 부담스럽지 않았는지.

▶소설에 등장하는 메인 캐릭터가 영화에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소설 속 캐릭터가 무너지지 않는다. 그만큼 원작이 완성도 있고 치밀하며, 캐릭터는 무너지지 않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매력적이었다.

원작이 베스트셀러일수록 부담스럽지 않을까, 재창작 내지 전복에 대한 원작 팬들의 배신감이 있지 않을까 다들 생각했나 보다. 저는 같은 맥락에서 신이 났다. 배신감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이 원작은 아무리 재창작을 하든 배신감을 주든 그 즐거움과 쾌감이 원작에서 오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그것이 신이 났던 이유다. 원작을 먼저 보신 분들이 찾을 수 있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소설에 '살인은 시라기보다 산문에 가깝다'라는 구절이 있다. 영화에는 '살인이 시라면 육아는 산문이다' 식으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런 전복과 배신의 시각을 배치한 데서 쾌감이 온다. 어차피 소설 속 김병수도 알츠하이머를 앓으며 망상과 소실을 겪는 사람이다. 달리 바라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원작자 입장에서는 자기 작품이지만 또한 다른 작품이지 않나. 자신을 통해 잉태돼 재창조된 것이 예쁘고, 머리도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기분좋게 봐주셔서 저도 기분이 좋다.

-재미있는 문장, 설정들을 하나하나 챙겨 썼다는 느낌이다. 특히 극중 병수가 살인을 멈춘 시점을 25년? 30년 식으로 특정하지 않는 소설과 달리 17년 전으로 정한 것이 독특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염두에 둔 것이라 했는데.

▶연대에 있어 숫자가 중요한 것 같지 않다. 2013년 소설이 발간됐으니 당시 25년 전이면 범인이 활개를 치던 시기다. 작가도 의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소설에서 25년 전이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범인이 항상 살인을 저지르던 시기라면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범행을 멈춘 시기는 범인이 잠적하고 몇 년이 지난 시기가 된다. 영화의 시점 자체가 지금보다 이전이라 1996~1997년 정도로 봤다. 그것 말고도 재미있는 표현이 너무 많아서 원작에 줄 그어가면서 각주 달아 정리하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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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 / 사진제공=쇼박스


-그러나 감독으로선 원작을 안 본 관객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맞다. 소설을 보는 재미, 영화를 보는 재미는 질과 종류가 다르다. 저는 그것을 판타지성과 현실성으로 봤다. 소설은 김병수라는 캐릭터의 독특한 의식세계, 또 하나의 창조된 세계여서 판타지성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판타지성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요소가 있다.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직 연쇄살인범이라는 설정이 약간의 판타지성을 갖고 있다 해도 그 자체를 변형시킬 수는 없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 사람의 기억을 좇아가면서 퍼즐을 맞춰보는 지점이 영화를 즐기는 포인트다. 퍼즐을 맞춰가며 완성된 그림을 목격하는 것. 그 과정에서 현실감과 리얼리티를 녹여내려고 했다. 새롭게 조합되고 살을 붙인, 다이어트 했다가 살을 찌우길 반복한 인물들을 넣음으로서 리얼리티를 확보했다. 전반적인 재구성이 소설과는 새로운 리얼리티를 느끼는 지점인 것 같다.

-스릴러 장르물의 색채가 짙은 동시에 드라마에도 신경을 썼다는 느낌이다.

▶고민의 축 하나가 더 있었는데 장르적인 부분에 더 무게를 실을 것이냐, 영화적인 부분에 더 힘을 실을 것이냐였다. 초반엔 고민이 많았다. 금강경에 반야심경에 신화와 현대사까지 언급하는 원작 소설은 굉장히 철학적이고 심오한 세계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장르적 재미가 워낙 커 숨겨 있다고 느껴진다. 영화가 장르적 재미를 메인으로 할 때 본능적으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지' 질문하게 된다. 영화의 방향을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저는 '장르영화의 미덕을 놓치지 않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저라는 사람의 세계와도 맞고, 장르적이지만 그에 국한되지 않고 묵직한 울림이 있었으면 했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가 될수록 김병수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나 고통, 아픔이 중요했다. 김병수의 죄의식, 반성이 자연스럽게 묻어나길 바랐다. '그래도 연쇄살인범인데 용서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맴돌 때 더 의미가 있으리라 봤다. 그렇게 드라마에 중심을 두고 과감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도 원작의 힘이 컸기 때문이다. 워낙 설정과 캐릭터가 단단했다. 보통의 소설은 드라마를 조금만 바꿔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고, 그걸 제대로 못하면 원작과 같거나 혹은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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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살인자의 기억법' 포스터


-병수 역의 설경구가 뭐니뭐니해도 인상적이다. 처음부터 설경구였나.

▶소설을 보면서부터 설경구가 떠올랐다. 그가 아니고선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아니면 본질의 깊이보다 또 다른 목적들이 눈에 띌 것 같았다. 설경구는 이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본질적으로 전달할 유일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저에게는 최고다. 한창 영화 공부할 때 교과서와도 같았던 배우이기도 했다. '송어'를 보면서 저 평범한 배우는 왜 빛이 나지, 저게 누구지 그랬고, '박하사탕'는 최고였다. 한 배우가 살아가며 표현할 스펙트럼을 다 해줬다. 그게 다일 줄 알았다. 그런데 또 '오아시스'가 나왔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하고 저었다. 제게는 살아있는 교과서와 같았고 이미지가 강렬했고 존중하는 마음도 컸다. 소설 3분의 1 지점에서 머리에서 책을 내리찍듯 했다. '이 사람이다'. 설경구 배우는 시나리오를 보지도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 주변을 맴돌다가 분위기를 조성한 후 은밀하게 접근해 슬픈 얼굴로 제목도 없는 이야기를 했다.(웃음) '같이 하자, 내가 하지 뭐' 하며 헤어졌고 헤어지며 시나리오를 드렸다. 새벽 2시에 헤어졌는데 6시 반에 전화가 왔더라. 배우는 소비되는 직업이라 변화를 끌어내는 감독 작품을 만나는 게 행복한 일이라면서 '소설 사러 간다'고. 나중에 들었는데 어렴풋이 제가 준비하는 걸 알았고, 그게 얼마나 힘든 작업이 될지도 알았다고 하시더라.

-운명적인 캐스팅이란 생각도 든다.

▶운명적이었던 것도 같다. 저는 같은 걸 반복하는 걸 지향하지 않는 감독이다. 항상 달랐으면 한다. 주제도 형식도 다르고 다른 걸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여기에 가장 적절하고 적합한 분을 만났다. 정말 같은 한 작의 고무신의 만남이지 않나. 행복했다. 잊히지 않을 만남일 것 같다.

-설현도 화제다. 배우지만 아이콘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처음 설현이라는 친구와 함께 은희라는 캐릭터를 단단하게 만들어봐야되겠다, 잘 표현을 해봐야되겠다 생각하면서 '버텨만 줘도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설경구와 김남길 사이에서 버텨만 줘도 넌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준비하면서부터 '이 친구가 버티기만 할 것 같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의 시각에서 아이돌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본 배우 김설현은 그냥 은희라는 캐릭터를 소화했다기보다, 모든 걸 내려놓고 그 자체가 은희가 돼 6개월을 보냈다. 그래서 이렇게 느껴지는 데까지 접근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아이돌이 아니라 배우였다. 어떤 위치와 국적을 가진 사람이 이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서 설현에 대한 느낌이 다를 것 같다. 가수나 아이돌이라는 걸 모르고 본다면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친구가 캐릭터 사이에서 잘 녹아드네 하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선입견을 돌파하는 것도 본인이 감당하지 못하면 해내지 못한다. 설현은 그저 버티기만 한 게 아니다. 날을 세우고 대들고 덤비며 버텨냈다.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확보한 것 같다.

-김남길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살을 찌운 모습이 묘한 긴장감을 주더라.

▶본인이 아이디어를 냈다. 원래 김남길이란 친구가 소년같은 이미지다. 사람도 장난꾸러기다. 그런데 가만히 눈을 들여다보면 차가움이 있다. 눈 속에 또 다른 눈이 있다. 김남길이 맡은 태주는 훅훅 지나가거나 이미지로 표현될 캐릭터가 아니다. 김병수는 그가 살인범인지 맞는지 계속 들여다본다. 관객들도 계속 그 눈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얼굴이 날카로우면 쉽게 들킬 것 같았다.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이려면 포실포실 몽실몽실한 느낌을 주는 게 어떻냐고 제안하기에 좋다고 했다. 너무너무 좋은 제안이었다. 대비도 된다. 병수가 강마른 몸에서 오는 불친절한 인간미로 가득하다면 태주에게선 몽실몽실 평범한 데서 오는 날카로움이 있다. 김남길은 계속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정말 극소수의 배우인 것 같다. 현상유지를 하는 것도 힘든데 말이다. 스타와 배우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배우가 아닐까. 신뢰와 믿음이 더 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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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 / 사진제공=쇼박스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는 전작 '구타유발자' 생각이 났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관객에게 다가가려는 의지가 훨씬 크게 느껴지는 작품이지만 불편하기까지 한 블랙 유머는 물론이고 설경구의 의상, 비주얼이 묘하게 겹치더라. 감독의 인장인가 싶더라.

▶'구타유발자'들은 감정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세계로 정진한다. 자기들끼리만 즐겁고 재밌으니 쫄딱 망했다.(웃음) TV에서 꽤 많이 방영돼서 광팬들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는 관객과 만날 때 배로소 완성된다. 관객과 못 만나면 정말 속이 상한다. 이제 시대가 변해서 그 색깔만큼은 잃어버리지 말자는 생각이 생긴 거다. 아직 인장이라고까지는 있지 않은 듯하다. 임권택 감독님 정도는 돼야 그럴 수 있지 않을까.(웃음) 다만 본질적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날것의 언어 이런 것들은 비린내 안 나게 어떤 향신료를 쓴다 해도 기본적으로 그 향기가 남아있는 것 같다. 다만 조금 더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친밀하게 많이 만났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이번엔 특히 더 호흡 조절을 충분히 했다. 상업적인 거대 예산이 들어가는 영화가 상업적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목표 설정이 된 이후에는 영화를 잘, 웰메이드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자기만의 색깔을 더하는 게 덕목이라 생각한다. 상업적 책임이 바탕에 있더라도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 둘을 다 하고 싶은 욕심과 바람이 있었다. 결과는 모르겠지만 관객도 봐야 그 색깔을 읽을 수 있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이제 개봉이다. 극장가 비수기에 한반도 위기라는 상황이 겹쳤다.

▶현실이 스릴러보다 더 스릴있는 것을 어떻게 하나. 9월이 극장가 보릿고개라고도 하고.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는데 웬만한 스릴러보다 더 쫀쫀한 스릴러가 현실에 생겼다. 블록버스터도 이만한 블록버스터가 없다. 걱정이 되기는 한다. 최선을 다했다.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졌다.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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