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서 "'박열' 냄새 맡고 싶은데 코 막힌 느낌"(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7.0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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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서/사진=김휘선 기자


스타 탄생인가? 준비된 배우인가? 최희서(30)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준익 감독의 '박열' 히로인이다. '박열'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 학살사건을 덮으려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아나키스트 박열을 그린 영화. 최희서는 박열의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 역할을 맡았다. '박열'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박열'을 통해 최희서를 처음 본 관객은 일본 배우라고 착각할 정도로 역할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이준익 감독은 전작 '동주'에서 최희서를 발탁한 뒤 '박열' 여주인공을 맡길 만큼 신뢰를 숨기지 않았다. 최희서는 그 신뢰에 보답했다. 최희서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도 통역사로 등장한다. 숱한 준비가 있었기에, 오디션이든, 발탁이든, 좋은 감독들의 눈에 띌 수 있었을 터. 최희서의 이야기를 들었다.


-본명인가.

▶아니다. 본명은 최문경이다. 2012년까지 본명으로 활동했다. 딱딱하고 학구적이란 소리를 들어서 효자동 작명소에서 지었다.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과를 다니다가 UC버클리에 교환학생으로 다녔다. 왜 연기자의 길을 선택했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본에서 '심청전'을 학예회 때 했다. 그때부터 연기에 관심이 컸다. UC버클리에도 공연예술을 전공했다. 그러면서 영국 드라마스쿨 오디션을 봤다. 1년 동안 오디션을 보는데 3차에서 떨어졌다. 그럴 즈음 영화 '킹콩을 들다'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도 계속 하고 있었고. 그럴 즈음 신연식 감독님을 만났다. 지하철을 타고 대학로로 가던 중 계속 대사를 외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인상 깊다며 명함을 주셨다. 그 뒤 신연식 감독님이 '동주'에 일본인 역할이 있는데 한 번 이준익 감독님을 만나 보라고 했다. 그 인연이 박열까지 이어졌다.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를 어떻게 준비했나.

▶자서전도 보고 여러 자료를 찾아봤다. 상처가 많은 여인이라는 게 생각했다. 14살 때 자살을 시도했다. 부모에게 버림 받고 조선에서 식모살이를 했다. 자서전에 보면 그 때 우울한 검은 빛이 생겼다고 써 있다. 그러면서 아픔이 강한 여성이라기 보다는 아픔 속에서 강해진 여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아픔을 강인함으로 덮으려 했다.

-이준익 감독은 어떤 걸 주문하던가.

▶첫 리딩이 끝나고 이준익 감독님이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길'의 젤소미나,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제니퍼 제이슨 리의 연기를 참고하라고 했다. 그 영화들을 보면서 디테일을 많이 생각했다. 가네코 후미코만의 몸짓, 인상 등을 생각했다.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감정 표현은 필터가 없는 듯한 사람. 그 교집합을 궁리했다. 관객들이 후미코가 정말 그랬을 것 같다가 생각하길 바랐다. 간수에게 윙크를 해도 후미코라면 그랬을 것이라며 영화 속에서 쌓아가길 바랐다.

-최희서에게 '박열'은 러브스토리인가.

▶저는 멜로라고 생각한다. 이준익 감독님이 처음 기획했을 때는 블랙코미디라고 했다가 시나리오를 완성해 가면서 "이건 러브스토리네"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제훈 선배와 둘 만 아는 스킨십도 생각했다. 코를 찡긋 하는 걸 제안해서 우리끼리만 아는 신호로 하자고 했다.

-'박열'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많은 부분을 이끌어간다. 무명배우에겐 부담이 컸을 것 같은데.

▶내가 이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가 중요했다. 무명이란 건 내 몫이 아니니깐. 너무 하고 싶지만 너무 잘하려는 마음을 버리려 했다. 욕심을 부릴수록 잘 안 되더라. 대학로에서 2인극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잘하려고 하면 더 안 되더라. 마음을 비우고 준비했다. 냄새를 맡고 싶은데 코가 막혀 있는 느낌이었다.

-일본에서 살았지만 일본인은 아니다. 그 정서랄지, 일본인 같은 몸 사용이랄지도 쉽지 않았을텐데.

▶일본영화를 보면서 그 정서를 계속 생각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들을 많이 봤다. 그래도 너무 많이 보면 영향을 받을까 봐 거리를 두려 했다. 움직이고 쉬고 걷는 것들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동주' 때보다 덜 했던 것 같다. 한국어를 하는 게 더 힘들었다. 한국어를 못 하는 사투리처럼 했어야 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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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서/사진=김휘선 기자


-'박열'은 박열(이제훈)과 후미코 검사 조사를 연이어 배치했다. 그만큼 리액션이 중요했고, 후미코의 감성으로 영화의 정서를 이어야 했는데.

▶심문 장면을 찍을 때부터 리액션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오히려 연기에 욕심을 내지 말자고 생각했다. 듣는 것에 주력을 했다. 계획이란 건 거의 없었다. 탁자를 치는 장면도, 갑자기 일어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다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다. 원래 계획을 많이 하는 편인데 '박열'에선 습관을 버리려 노력했다. 재즈처럼 좀 더 즉흥적으로 상대의 호흡을 들으면서 하려 했다.

-멜로라고 했는데 둘이 영화 속에서 많이 떨어져있다. 언제부터 그 감정을 어떻게 관객에게 전하려 했나.

▶후미코가 박열의 연인이긴 하지만 불안의 시작이 분명 있다. 박열이 "넌 일본인이니깐"이라고 한 게 배려지만 한편으론 섭섭했을 것이다. 그래서 상처를 받았을테고. 그러다가 검사가 박열이 후미코의 증언은 그녀에게 맡긴다고 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확신을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랑의 확신이자 동지로 증명 같은.

-감옥에서 '인터내셔널'을 부르는 게 인상적이던데.

▶나와 또 다른 재일교포 외에는 일본어를 잘 모르는 분들이어서 같이 연습을 많이 했다. 밖에다 한글로 크게 가사를 써 놓기도 했다. 사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가 가사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를 더 크게 받아들이게 됐다.

-실제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은 여러 설이 있다. 자살이란 소리도 있고, 타살이란 소리도 있고. 영화 속에서도 명확하게 입장을 정하지는 않았는데. 연기한 사람으로서 어떤 죽음이라고 생각하나.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일본 천황이 무기징역이라는 은사를 베푼다. 그 은사라는 것 자체가 그녀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그녀의 자서전에 "내 의지대로 움직인다면 죽음도 삶의 연장이다"라는 문장을 보고 확신했다.

-마지막 내레이션은 자서전에 있는 문장에다 새로운 문장이 추가됐는데.

▶이준익 감독님이 뭐라도 써보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박열과 살던 3년이 진정한 삶이었다라는 문장이 내가 생각해서 추가한 부분이다.

-영화 속에서 내내 온 얼굴과 몸으로 연기를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내레이션에선 오히려 모습을 드러내진 않는다. 사실 그 장면이 가장 여러 감정을 표현해야 했을텐데.

▶제일 어려운 연기였다. 내가 무언가를 나타내려 하는 순간 그 감정들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잘 안 보여야 (가네코 후미코가) 잘 보이는 장면이고. 죽을 각오를 했을 때 사람의 얼굴이 어떨까를 생각했다. 기쁨도 슬픔도 아닌 초월적인 표정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준비할 시간이 현장에서 10분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늘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테이크에 오케이가 났다. 그래도 솔직히 만족스럽지도 않고 마음이 여러 갈래다. 연기란 게 정말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영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데. 한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 활동할 생각은 없나.

▶기회가 된다면 해외 활동을 마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국이 먼저다. 미국 드라마 '센스8' 오디션에 합격을 했는데 당시 연극 일정이랑 맞지 않아 포기했다. '옥자'는 다행히 오디션에 합격해 출연했다. 미드로 만들어지는 '설국열차' 오디션도 봤는데 아직 연락이 없는 걸 보니 떨어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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