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아, 내 좀 도와도" 은막의 김영애, 잊을 수 없는 모습들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4.10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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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고 김영애 /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변호인', '깊은 밤 갑자기', '카트', '애자',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 '판도라' 스틸컷


배우 김영애가 지난 9일 별세했다. 항년 66세. 마지막까지 배우이고 싶어 했던 열정의 연기자를 떠나보내며, 고인이 남긴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돌아본다.

고 김영애는 1971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해 47년째 꾸준히 연기 활동을 펼친 배우다. 브라운관은 물론 스크린에서도 족적이 뚜렷하다. 수많은 어머니를 연기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늘 다른 모습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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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깊은 밤 갑자기' 스틸컷


브라운관으로 주 무대를 옮기기 전 고 김영애는 단아하고도 한국적인 얼굴로 '설국'(1977), '빙점 81'(1981) 등 문예영화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 가운데 1981년작인 고영남 감독의 '깊은 밤 갑자기'는 지금도 에로틱한 분위기의 한국 호러의 걸작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김영애는 미모의 젊은 여성과 남편의 관계를 의심하다 망상에 빠진 여주인공으로 분해 열연을 펼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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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애자' 스틸컷



1990년대와 2000년대 안방극장에서 활약하던 김영애의 스크린 복귀작은 2009년 '애자'다. 그는 서른이 다 된 천방지축 딸, 그런 딸과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은 자신보다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는 어머니로 분해 200만 가까운 관객을 펑펑 울렸다. 사업가로서 잠시 연기 활동을 접었다가 본격 스크린에 복귀한 김영애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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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변호인' 스틸컷


"변호사님아, 내 좀 도와도." 그 절절한 목소리가 사무치는 듯 남은 1000만 영화 '변호인'(2013)에서 김영애의 모성애 연기는 더 빛을 발했다. 국밥집 주인이자 하나뿐인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평범한 어머니로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매달렸던 그의 절절한 모성은 한 사람을, 그 시대를 움직였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실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에 너나 할 것 없이 조심스러웠던 시기, "정치색을 망설였지만 내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고 고백한 그의 열연에 관객 또한 뜨겁게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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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현기증' 스틸컷


크게 흥행하지 못한 작품이지만 뒤이어 출연한 영화 '현기증'(2014)에서 김영애는 또한 놀랄만한 변신을 선보였다. 그가 맡은 캐릭터는 실수로 돌보던 손자가 사망하게 된 할머니. 김영애는 죄책감과 분노에 빠진 또 다른 어머니가 됐다. 평범했던 여린 여인이 극도의 불안감 속에 쇠약해져가는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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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카트' 스틸컷


해고 위기에 맞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카트'(2014)에서는 수십년 청소를 하며 살아온 노동자를 연기했다. 비록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김영애는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는 다른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 이들과 함께하는 정규직 노동자 모두를 따뜻하게 보듬으며 영화 안팎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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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 스틸컷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2016)는 색다른 변신이었다. 김영애는 권력과 돈으로 살인까지 덮어버린 재벌가의 안주인으로 분해 이가 부득부득 갈리는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김영애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교양있지만, 속내는 누구보다 잔혹하고 이기적인 사회지도층의 이면을 꼬집으며 영화의 한 축을 든든히 잡았다. 그의 활약에 김영애의 비중을 키운 포스터가 뒤늦게 나왔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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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현기증' 스틸컷


여름대작 '인천상륙작전'(2016)에서는 잠깐이나마 다시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몸바친 이름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김영애는 시장에서 국밥을 팔며 아들을 기다리는 강인한 어머니를 그려냈다. 비록 한 순간이었지만 김영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후에 나온 감독판에선 그의 비중이 더욱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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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판도라' 스틸컷


지난해 연말 개봉한 '판도라'(2016)는 결국 고 김영애의 마지막 영화가 됐다. 남편과 큰아들을 방사능 피폭으로 잃고서도 안전불감증 속에 원전을 맹신하는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마지막 순간 어찌할 도리 없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관객의 눈물샘을 터뜨리고야 마는 열연을 펼쳤다.

비중이 크든 작든 늘 다른 모습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선사했던 여배우. 김영애를 더이상 스크린에서 만날 수 없다니 그저 안타깝고 아쉽다.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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