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김시스터즈, 韓최초 빌보드 입성 '재조명'

한아름 기자 / 입력 : 2017.02.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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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서프라이즈' 방송화면 캡처


'목포는 항구다'를 부른 이난영이 만든 김시스터즈가 한국 최초로 빌보드에 이름을 올린 일이 재조명됐다.

26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원조 한류스타 김시스터즈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1960년대 앨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등 최정상급의 스타들이 출연한 미국의 유명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 어느 날, 이 프로그램에 뜻밖의 출연자가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한국 걸그룹 김 시스터즈였다.

김시스터즈를 만든 사람은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를 부른 국민가수 이난영이었다.

이난영은 대한민국 최초의 걸그룹이라 할 수 있는 저고리 시스터즈의 멤버였다. 이난영은 기타리스트 김해송과 결혼 후 슬하에 7남매를 둔다.


그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벌어지고, 남편 김해송이 납북되면서, 7남매를 책임지게 됐다. 이난영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오빠이자 작곡가 이봉룡의 제안으로 걸그룹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이난영의 딸 김숙자와 김애자 그리고 이봉룡의 딸 김민자(개명전 이민자)가 김시스터즈가 됐다.

1953년 미군 부대에 선 김시스터즈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수도극장에서 정식 데뷔해 영화 '청춘쌍곡선'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다. 1958년 미국의 공연기획자 톰 볼이 직접 한국에 김시스터즈를 찾아온다. 그는 김시스터즈의 노래 실력을 본 후 미국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한국 걸그룹 최초로 김시스터즈는 미국에 진출했지만,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주방 세제로 머리를 감다가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고, 한식이 그리워 황달에 걸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김시스터즈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시 신비로웠던 동양인들이 팝송을 부르는 모습에 미국인들은 빠져들었다.

김시스터즈는 1960년에 '찰리브라운'으로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 모든 결과의 숨은 일등공신은 이난영이었다. 김시스터즈의 미국 진출이 결정되자 이난영은 노래뿐 아니라 악기를 연습시켰고, 김시스터즈는 10개가 넘는 악기 연주 실력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또 절대 연애하면 안 된다는 이난영의 지시 때문에 김시스터즈 멤버 숙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만남도 거절했다고 한다.

이난영의 사망 이후 김시스터즈는 남자 형제들과 6인조를 이뤄 활동하기도 했다. 김시스터즈는 한국 걸그룹 최초로 미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이끌어낸 셈이다.

그러던 중 1987년 김애자는 암투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김숙자는 라스베이거스에 거주, 김민자는 헝가리에서 남편과 함께 현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김시스터즈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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