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죄송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왜 죄송하다고 말하나..김성훈 감독이 답합니다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8.2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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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감독/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터널'이 500만 관객을 넘었습니다. 이미 김성훈 감독의 전작 '끝까지 간다'(345만명)를 훌쩍 넘었죠. 누구는 하정우의 힘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터널'이 갖고 있는 영화적 함의를 이야기합니다.

'터널'은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한 남자와 그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멀리는 삼풍백화점, 가까이는 세월호 등 우리 사회의 깊은 상처가 떠오릅니다. 정부의 대처, 사람들의 반응 등 여러가지를 되 새기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터널'이 대한민국의 어떤 부조리를 짚었다고 말합니다. 세월호 사건을 땅으로 옮겼을 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죠. 어떤 사람은 재난을 비현실적으로 상업적으로 이용했다고 비판도 합니다. 여러 의견들은 결국 영화를 둘러싼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법입니다.

김성훈 감독은 과연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했습니다. 민감한 질문부터 가벼운 궁금증까지, 직접 들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담겼습니다)

-데뷔작인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끝까지 간다'까지 8년이 걸렸는데, '끝까지 간다'부터 '터널'까진 2년이 걸렸습니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쓰다가 원작이 있는 '터널'을 하게 된 건, 빠르게 차기작을 선택하려 했던 이유도 있는지요.


▶차기작을 빨리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원래는 써놨던 시나리오가 있었죠. 규모가 좀 있는 대중영화였어요. 그러다가 누구 추천으로 '터널' 원작을 읽었어요. 너무 앞서서 꺼이꺼이 울었죠. 하지만 영화로 만들어볼 생각은 없었어요. 내가 더 할 수 있는 영역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내가 읽더니 매력이 있다며 나와 맞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아이러니라고 할지, 블랙 코미디라고 할지. '끝까지 간다'처럼 주인공이 장애물을 극복한다는 점을 넣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환풍기를 넣고, 앞에 사람을 한 명 더 넣자고 생각했어요. 갇혀있는 사람이라고만 하지 않고, 장애물을 극복하는 모습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엔딩도 나만의 희망으로 바꿨구요.

-아마도 '터널'로 가장 많이 들었을 질문이 세월호 사건과 연관일텐데요. 매몰 된 곳에 사람이 갇혔다는 점에선, 남녀가 같이 갇혔던 점에선 오히려 삼풍백화점이 떠오릅니다만.

▶세월호는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긴 해요. 어떤 분은 '터널'이 세월호와 일대일 대응이라고도 했구요. 만일 세월호를 재난영화로 이용하려 했다면 아예 만들지 않았을 거에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 나이 또래는 삼풍백화점이 더 떠오르죠. 그만큼 한국에서 벌어진 많은 사건들이 상처처럼 깊이 박혀있구요. 삼풍은 기억에서 어느정도 정리된 사건이고, 세월호는 아직 2년 밖에 안됐고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라 더 많이 이야기들을 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한국에서 어떤 재난영화를 만들든 시스템 문제를 그린다면 세월호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을 거에요.

-하정우가 35일만에 구출됩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가능하다고 믿고 싶습니다. 탄광에 매몰된 사람들을 구출하는 이야기인 이만희 감독님의 '생명'을 보면, 구하는 시점이 16일~17일 즈음이에요. '터널'에선 갇힌 사람이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그 믿음을 늘리고 싶었어요. 안보다 밖에 있는 사람이 먼저 포기하잖아요. 야만의 시대가 아닌 한, 사람이 살아있는 데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어요. 국민 대다수가 갇힌 사람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안 아파할 것이라 동의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쯤일지 고민했어요.

전 살리고 싶었어요. 영화가 잘 걸어왔다면 이성적 판단보단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동의해 주지 않을까 싶었어요. 살아있다는 걸 아는 순간 짠 하고 구하는 게 아니라 구하려 했던 시간만큼 더 시간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구요.

-'터널'은 '끝까지 간다'와 다르게 등장인물들이 전부 선합니다. 포기하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그렇죠. 얄미운 사람은 있지만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여느 재난영화와 차이점이기도 하구요.

▶악당을 만들자는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 상황을 만들게 한, 부실공사를 한 인물을 그리려 했던 생각도 있었구요. 시나리오 모니터 과정에서 이 사건의 원흉인 고위공직자를 넣자는 의견도 있었죠. 하지만 악당을 그려넣으면, 그 사람만 제거되면 이 시스템의 문제가 사라질 것처럼 묘사되는 게 싫었어요. 악당을 제거한다고 본질이 바뀌는 게 아니니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엔딩 크레딧에 이런 자막이 올라갑니다. "본 영화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회사 단체 및 그 밖의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비겁한 게 아닐까요.

▶제작사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담긴 건데요. 안전한 테두리였던 셈이죠. 어떤 특정한 사건 때문이라기 보다 최근 여러 영화들이 특정 기업 이름, 회사 이름, 지역 이름이 관련되면 소송이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고 해요. 그래서 그 이후로 많은 영화들이 그런 자막을 넣으려 하고 있구요. 아마도 이 영화가 '터널'이 아니었다면, 그 엔딩도 그렇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라 생각해요.

-여자 장관이 등장합니다. 노란색 옷을 입구요. 노골적인 연상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요.

▶그런 의도는 없었어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썼을 때 나도 모르게 장관도 남자로 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영화에 주요배역 중 여성이 배두나 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 여성을 더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보니 기자 아니면 장관이어야 겠더라구요. 그리고 장관을 생각해보니 김해숙 선배가 떠올랐어요. 마지막에 "누구? 나? 왜?" 이러잖아요. 이 장면을 남성이 연기하면 너무 파렴치하게 그려질 것 같았어요. 이 인물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그걸 귀엽게 우화처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김해숙 선배가 하면 그렇게 보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노란색 옷은 역대 민방위 의상을 조사했는데 노란색 옷이더라구요. 나중에 들어가 보니 위험하단 의견도 있었어요. 위험하다는 것과 귀여운 것 중 택해야 했고, 귀여운 걸 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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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두나가 맡은 역할은 원작에서 훨씬 능동적인 인물이었죠. 하지만 영화에선 전형적이랄지, 현실적이랄지, 그런 인물로 그려지는데요.

▶그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할 게 없겠죠. 그래서 캐스팅 과정이 쉽지 않았구요. 전형적이고, 관습적이고, 수동적일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게 현실이 아닐까요. 배두나가 정말 감사했던 건, 장식적으로 아픔을 던지지 않았던 점이에요. 배두나에게 당신이 사랑을 받으면 끝장이라고 했어요. 섬처럼 존재하죠. 그게 현실이구요. 그러다가 아픔이 어느순간 터져 나와야 하고. 이 여자가 사실상 남편에게 사형선고를 하잖아요. "오빠가 이거 듣고 있으면 미안해서 어떻해"라면서. 가장 잔인한 일을 강요하잖아요. 그게 현실이 아닐까요.

-'터널'에선 죄송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다 죄송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정우도 그렇고, 배두나도 그렇고, 오달수도 그렇죠. 터널에 갇힌 또 다른 여인도 죄송한데요, 물 좀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하죠. 왜 그랬습니까.

▶음. 의도라기 보다 제 습관일 수 있는데요.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죄송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 죄송합니다라고 이야기하게 되죠.

-'터널'을 기획하면서 카메라와 조명을 어떻게 쓰려했을까가 궁금했어요. 특히 갇힌 사람을 그릴 때.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이 종종 카메라 정면을 바라봅니다. 금기시하는 부분이죠.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니깐. 조명은 마치 카라바조 그림 같단 생각도 들구요. 빛의 활용이랄지.

▶카메라는 최대한 상황을 리얼하게 가자고 생각했어요. 고정으로 3대를 설치하고, 작은 카메라를 별도로 장착했어요. 하정우 같은 경우 자동차에 돌들을 쌓고 그 틈 사이에 렌즈를 설치했어요. 자동차 문을 들어내고 찍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다 닫아놓고 찍었죠.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런 모습을 담으려 했어요. 하정우가 카메라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 거죠. 연기 톤을 사전에 이야기하고, 나중에 안 맞으면 다시 갈 때도 있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담으려 했어요.

물론 정면으로 찍힌 모습을 편집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래야 관객을 동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배두나도 마찬가지에요. "미안하지 않으세요"라고 이야기할 때도 정면으로 찍었는데, 약간 비스듬한 장면으로 바꿨어요. 관객에게 던지는 이야기니깐요.

조명은 테스트를 많이 했어요. 분진이 많이 날리는 상황이니 빛이 분산되는 걸 고려했죠. 하정우가 갖고 있는 플래시가 조명 역할이니 그 빛이 어느 방향으로 나가는 지도 염두했구요. 플래시를 놓을 때도 어떤 위치에 놓으라고 지정했어요. 그래야 조명이 계산이 되니깐.

-좁은 장소이니 화면비율을 비스타로 가도 됐을텐데, 시네마 스코프로 갔는데요. 갇힌 장소야 밖을 대비하기 위해서인가요.

▶갇혀 있는 공간을 더 갑갑하고 막막하게 보여주려면 돌들이 많이 더 넓게 화면에 잡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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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가 마음껏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줬는데요. 블랙 코미디랄지, 모순을 적합하게 표현했구요.

▶'아가씨' 촬영장에도 갔었고, 오사카로 제작자와 같이 3박4일 동안 워크샵도 갔었어요. 끝없이 이야기를 나눴죠. 하정우는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내요.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집착하지 않아요. 하정우가 혼잣말을 할 때는, 그건 대사로 못 쓴다고 했죠. 현장에서 나와야 한다고 했고. 그 상황을 그가 다 채워줬죠.

-하정우 연기는 훌륭했지만 영화적 설정으로 그곳에서 구해졌을 때 더 말랐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30일을 넘게 굶었는데.

▶하정우에게 시간이 더 주어졌으면 그랬을 거에요. 촬영 여건상 3일 밖에 시간을 못줬어요. 하정우가 제주도로 가서 3일 동안 굶고 왔어요. 아쉽죠. 배우에게 미안하고.

-가벼운 질문을 하죠. '끝까지 간다'에서도 이선균이 탄 자동차는 기아 차량이었고, 번호는 8734였어요. 이번에도 하정우가 탄 차가 기아였고, 8734인데요.

▶제가 썼던 차 번호가 8734였어요. 돌아가신 차에 대한 예우였죠. 기아차를 일부러 택한 것은 아닌데 그렇게 됐네요. 굉장히 튼튼하긴 해요. 갇힌 차를 표현하기 위해 포크레인으로 막 깨부셨는 데도 잘 안 부서 지더라구요.

-라디오 DJ를 이동진 평론가가 연기했는데요. 로망이었나요.

▶그건 아니구요. 일단 여자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배두나가 방송에 출연해서 말을 하는데, 같은 여성이면 뉘앙스가 겹칠 수 있으니깐요. 정말 많은 DJ를 모니터했는데,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였으면 했어요. 마침 아내가 이동진 평론가의 팝캐스트를 듣고 추천 하더라구요. 그래서 부탁을 드렸죠. 이동진 평론가가 출연은 하겠다고 했고, 대신 평은 안쓰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분량이 적은 데 안 쓰는 것도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영화에서 물이 아주 중요한 장치로 쓰이는데요. 오프닝부터 물의 이미지를 강조하구요.

▶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먹이고 싶었던 게 물이었으니깐요. 만든 사라보다 보는 사람에게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하고 싶었어요. 영화 전반부에 내내 비가 내리죠. 관습적인 차용이라기 보단 논리적으로 그 정도 비가 내리면 안에도 물이 스며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정우가 또 다른 여성에게 물을 두 번 줍니다. 하정우는 언제쯤이면 구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죠.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이라면, 줬을 거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고민하겠죠. 줘야 할까, 말아야 할까, 관객들도 참여시키고 싶었어요. 그리고 난 다음, 영화처럼 결론이 나면 미안하지 않을까란, 아닐까, 묻고 싶었죠. "죄송합니다. 제가 물 다 먹었죠"라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묻고 싶었어요.

-하정우에게 공간을 만들어줬습니다. 그렇게 했지만 여느 재난영화처럼 그 공간을 활용해 스스로 탈출시키지는 않는데요.

▶그게 진짜일 것 같았어요. 영웅주의는 의미가 없죠. 그러면서 그 공간에서 그 사람이 살고 싶다, 나가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도록 하고 싶었어요. 의지가 거세된 사람을 어떻게 의지가 있는 것처럼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했죠. 밖에서는 모르니깐.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끝까지 살려는 의지가 있다는 걸, 공간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그 장소가 관객에게 일종의 맥거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구요.

-구조대장으로 나온 오달수는 이런 장르에서 흔히 등장하는 영웅적인 인물이 아닌데요.

▶보통 이런 영화에는 구조자가 나오죠. 상당히 파워풀하구요. 전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달수 선배가 하면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푸근함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오줌을 같이 먹는 그런 역지사지를 할 수 있는 인물. 착한 인물을 그리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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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기자는 '터널'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기자를 그리는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그게 대중의 시선이기도 하구요.

▶전형적이고 관습적이라고 할 수 있죠. 기록을 세우는 걸, 어떤 의미에선 우리들이 좋아하지 않나, 그런 걸 대변하기도 하구요.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 소방대원이 이런 말을 했어요. 구조 작업을 하다가 기자와 부딪힌 적이 있다고 해요. 소방대원이 "생명이 중요해요? 방송이 중요해요?"라고 했더니, 그 기자가 "사람을 구하는 건 당신 일이고, 방송하는 건 내일이니 각자 일을 합시다"라고 했더래요. 원래 그 대사를 넣었다고 뺐어요.

-영화 중반에 루즈해지는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영화가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충돌 지점이 덜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구요. 그렇게 만든 이유가 있을텐데요.

▶그렇죠. 관객도 지쳐가게 하고 싶었어요. 영화에 보면 65% 국민이 이 남자를 포기하고 이제 다른 공사를 재개하자고 하잖아요. 65%가 악마라서 그런 건 아니죠. 지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미안하지 않으세요"란 질문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아났을 때, 어떤 사람이든, 어떤 이념을 갖고 있던, 어떤 의도를 갖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기뻐하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런 걸 영화 속에서라도 경험해보고 싶도록 했어요. 아마도 다들 정말 살아 돌아온 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기뻐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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