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파트타임' 이대호의 매력, ESPN도 조명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6.05.13 08:18
  • 글자크기조절
image
시즌 5호포를 때려내고 기뻐하는 이대호./AFPBBNews=뉴스1



이대호(시애틀 매리너스)가 메이저리그 진출 약 한 달 만에 시애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 3월말 그가 스프링 캠프에서 ‘생존경쟁’ 끝에 살아남아 메이저리그 엔트리의 한 자리를 차지했을 때만 해도 불과 한 달 뒤에 이런 현상까지 펼쳐지리라곤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시애틀 홈구장인 세이프코필드에서 이대호의 타석이 돌아오면 “Dae~~~Ho!”라는 연호 소리가 음악에 맞춰 자동적으로 터져 나온다. 트위터 등 팬 SNS 사이트에서는 이대호의 이름 발음을 이용한 ‘Dae Ho-Lee Grail’(‘성배’를 의미하는 Holy Grail의 음을 딴 것)을 새긴 응원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고 이대호의 출장시간을 늘려달라는 팬들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기본적으로 ‘파트타임’ 선수다. 구단의 1루수 플래툰 시스템에 따라 왼손투수를 상대로만 선발로 나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그가 빅리그 한 달 만에 시애틀 팬들의 가장 큰 환호를 받는 인기스타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펜들만이 아니라 동료들도 가장 좋아하는 선수 중 하나가 됐다. 시애틀이 초반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선두로 올라서면서 현지 팬들의 관심도가 치솟기 시작했고 이대호의 인기도 덩달아 더 올라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애틀 현지 언론도 그런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있다. ESPN 시애틀은 12일(현지시간) ‘시애틀 팬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대호의 기나긴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이대호의 선수 인생 스토리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또 다른 스포츠 매체는 얼마 전 이대호가 주전 1루수로 기용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파하기도 했다. ESPN 시애틀에 실린 이대호 스토리 기사를 소개한다.

이대호는 지금 그의 야구인생의 꿈을 살아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무대에서 자신을 입증한 그는 지난 스프링캠프에서 메이저리그 기회를 잡은 뒤 필드 안팎에서 모두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팀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료 중 하나가 됐고 또한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지난 11일, 현지시간) 경기에서 그가 연장 10회말 대타로 덕아웃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Dae-Ho”를 외치는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을 정도로 매리너스 팬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이대호는 사연이 있는 선수다. 그는 인터뷰에서 “난 부산 출신으로 부산은 야구인기가 엄청난 도시”라면서 “난 3학년때 야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의 야구 커리어의 출발점엔 또 다른 빅리거가 있었다. 바로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와의 만남이었다. “3학년 때 추신수가 내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가 나보고 계속 야구를 하자고 졸라 결국은 시작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부산에 대한 정든 기억도 잊지 않았다. “부산은 시애틀과 비슷하다. 항구도시고 매우 아름답다. 여름엔 불꽃놀이도 펼쳐진다. 매우 특별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부산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도 부모님 없이 성장했던 그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그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3살 때 세상을 떠났고 그는 할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기억은 야구를 빼면 항상 경제적으로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그가 프로 계약을 한 뒤 가장 먼저 한 것은 집과 차를 산 것이었다. 불행히도 그의 할머니는 그날이 오기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평소에 쩡쩡 울리던 그의 목소리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그리움과 사랑으로 인해 가늘어진다.

그는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독거노인들에게 겨울에 연탄을 배달하는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는 “사회에 봉사하는 것, 특히 가족들 없이 혼자 살아가시는 노인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난 할머니가 키워주셨기에 노인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항상 내 마음속에 있다. 지난 10년간 그렇게 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호는 어렸을 때 모든 포지션을 다 뛰었는데 유격수로 뛸 때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해 유격수 포지션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또 자신에게 야구를 가르쳐 준 스승들도 잊지 않고 있다. “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봤지만 내 영웅은 학창시절 내게 야구를 가르쳐준 코치와 감독님들”이라고 덧붙였다.

이대호는 고교를 졸업한 뒤 투수로 프로 계약을 했다. 지난 2000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때 시속 90마일 중반의 강속구를 뿌렸다. 하지만 몇 달 뒤 처음으로 어깨 부상을 당한 뒤 1루로 포지션을 옮겼다. 그는 11년간 KBO(한국프로야구)에서 타격왕과 골드글러브, 트리플 크라운과 MVP까지 수많은 기록을 남겼고 지난 2010년 8월에는 9경기 연속홈런의 세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2011년 일본으로 무대를 옮겨 새로운 도전을 맞았다. 그는 “일본에는 정말 뛰어난 브레이킹볼과 체인지업, 커브를 던지는 투수들이 많다”면서 “그들을 통해 난 내 기술도 익혔다. 그런 투구를 보는 것이 내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난 어렸을 때부터 배트 한복판에 타구를 잘 맞추는 것을 배웠다”면서 “잘 맞추면 홈런이 나오게 마련이지만 사실 홈런타자가 되는 것을 배운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일본리그에서 계속 성장하면서 이대호는 다음 도전의 목표인 메이저리그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꾼 것은 훨씬 오래 전부터였다. 그는 “20살 때 여기에 오고 싶었지만 그것이 꿈일 뿐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그래서 한국에서 내 야구를 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4~5년 전부터 ‘이젠 됐다. 다음 목표는 MLB’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대호는 투수와 포수들이 스프링 캠프에 도착하기 2주전에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오래전부터 꿈이었던 메이저리그 캠프였으나 첫 며칠간은 쉽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아무도 모르는데다 말도 통하지 않아 외로웠다”면서 “카일 시거가 가장 먼저 찾아와 이야기를 해 줬다. 에프렌 나바로는 아주 좋은 친구가 돼줬다”고 밝혔다.

하지만 언어장벽에도 불구, 이대호가 시애틀에서 자리를 잡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성품이 알려지면서 동료들이 그에 대해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넬슨 크루즈는 “그는 정말 좋은 성격을 갖고 있다”면서 “영어는 잘 못해도 좋은 농담을 할 줄 안다. 그 자신이 여기 있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스프링 캠프 기간 중 두 번이나 팀을 떠나야 했다. 한 번은 취업비자를 받기 위해서였고, 또 한 번은 둘째아이의 출산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그가 돌아왔을 때 스캇 서비스 감독은 이대호가 더욱 여유가 생기고 주변상황에 편하게 느끼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팬들의 보는 이대호가 바로 그의 본 모습이다. 그에겐 꾸밈이나 가식이 없다”면서 “그는 항상 밝고 정말 따뜻한 마음을 지닌 남자다. 그리고 정말 가족을 사랑한다. 그가 자라날 때 없었던 가족이 그에겐 너무도 소중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라고 이대호에 대한 인상을 전했다.

이대호는 벌써 15년째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백전노장 베테랑이지만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선 신인임을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감을 잃지는 않았다. 그는 “난 여기선 루키다. 신인 신분이다. 하지만 야구선수론 베테랑이다”라면서 “2천번 이상 이런 상황들을 경험해봤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안다. 이건 내 직업이고 내가 야구선수로 배운 것들이 때문”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는 “메이저리그에 와서 전에 TV로 봤던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하고 야구를 즐기고 있다”면서 “지금은 한마디로 꿈이 이뤄진 것”이라고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소감을 밝혔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