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홍길동' 한국판 '씬시티' 탄생..극명하게 갈릴 호불호

[리뷰] 탐정 홍길동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4.26 11:54 / 조회 : 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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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다.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비주얼이다. 그 만큼 취향을 탈 가능성이 크다. '늑대소년'으로 판타지 멜로 세계를 그렸던 조성희 감독은 신작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로 한국판 슈퍼히어로 영화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조성희 감독은 그 만의 세계를 열었다.

'탐정 홍길동'은 1980년대 일지도 모를 세계를 배경으로, 악의 세력과 맞서는 탐정단 활빈당과 그 수령 홍길동의 활약을 그린다. 기억도 없고, 친구도 없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홍길동. 그는 악당에겐 악당보다 더 잔인하다.

그는 단 하나 어머니를 죽인 범인 김병덕에 대한 기억만을 간직한다. 20년 동안 찾던 범인의 족적을 마침내 발견한다. 영월에 다 쓰러져가는 집을 덮친 홍길동. 하지만 김병덕은 간발의 차이로 다른 악당들에게 납치된 뒤였다.

김병덕의 두 손녀는 홍길동에게 할아버지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정체를 숨긴 홍길동은 두 소녀와 김병덕을 찾아 나섰다가 거대한 악의 조직 광은회와 마주치게 된다.

'탐정 홍길동'은 프랭크 밀러의 '씬시티'와 닮았다. 조성희 감독은 프랭크 밀러의 영향을 짙게 받은 듯 하다. '탐정 홍길동'은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300' '씬시티'처럼 음영이 짙다. 어두운 도시, 악당보다 더 악당 같은 탐정, 미모의 여성, 고전 느와르 같은 얼개에 그래픽 노블 같은 비주얼 인장이 꾹 찍혀있다. 주인공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것도 '씬시티'와 닮았다.

이 자장 아래서 조성희 감독은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한국이되 한국 같지 않은, 1980년대이되 시공간이 모호한, 범죄와 거대한 음모가 판치는 세상, 그곳에서 활약하는 정의의 사도이되 정의롭지 만은 않은 영웅.

이 판타지는 조성희 감독의 전작 '늑대소년'과도 연결돼 있다. 한국전쟁 이후 어느 산골에서 전쟁병기로 만들어진 늑대소년. 한국이되 한국 같지 않은 시공간. '늑대소년'은 판타지멜로로 만들어졌지만, '탐정 홍길동'은 느와르로 만들어졌다는 게 차이다. 조성희 감독은 조성희월드를, '늑대소년'으로 시작해 '탐정 홍길동'으로 더 쌓아가려 한 것 같다.

조성희 감독이 만든 느와르 세계가 프랭크 밀러와 다른 점은, 지극히 한국적이라는 점이다. 도시 대신 시골을, 미국 대신 한국의 역사를, 세련됨 대신에 토속적인 키치를 녹여냈다. 이제 두 번째 영화를 내놓은 감독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 이명세 감독 이후 비주얼리스트로 꼽히는 첫 주자가 될 것 같다.

이야기는 느슨하다. 종종 엇박자를 낸다. 주인공 홍길동을 맡은 이제훈과 활빈당 대표를 맡은 고아라가 느와르에 전형적이지 않아 이질감을 준다. 이 이질감이야말로 '탐정 홍길동'만의 인장이니, 어쩌면 적합한 캐스팅이었다.

고아라에 억지 역할을 맡기지 않았던 것도 '탐정 홍길동'의 미덕이다. 여주인공 역할을 키우기 위해 억지춘향 격으로 활약을 시키는 대신, 철저하게 필요한 곳에만 위치시켰다. 물론 그 때문에 이질감을 주기도 한다. 낯설기 때문이다.

느슨한 이야기에 범인의 손녀 동이를 맡은 노정의와 말순 역의 김하나, 특히 김하나가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김하나는 올해 각종 영화상에 가장 유력한 조연상 후보로 꼽힐 것 같다. 악당 역을 맡은 김성균은 오랜만에 제 옷을 입은 듯하다.

'탐정 홍길동'은 취향에 따라 호오가 수박 쪼개지듯 갈릴 영화다. 뜨겁지도 않다. 시종 차갑다. 액션이 강렬하냐면 그렇지도 않다. 홍길동에 감정 이입이 깊게 들어가냐면 그렇지도 않다. 그렇게 적절한 거리감이 '탐정 홍길동'의 미덕이다.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에겐, 다 싫어할 요소들이기도 하다. 취향이 맞는다면 박수갈채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탐정 홍길동'은 한국판 다크나이트가 될 요소가 가득하다. 어두운 탄생신화와 자경단 같은 정의 구현 활동, 악당보다 더 악당 같은 그러면서도 키치스런, 안티히어로에 가까운 슈퍼히어로의 탄생이다.

막바지 한국영화 특유의 신파를 넣어 삼천포로 빠진 게 아쉽긴 하지만, 다음 편에 대한 기대를 불어넣으니, 조성희 월드에 빠진 관객이라면 큰 흠은 아닐 것 같다. 독특한 세계, 독특한 캐릭터, 독특한 설정. 매너리즘에 빠진 한국영화에 모처럼 독특한 영화가 등장했다.

5월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15세 이상 관람가 치고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럼에도 잔인하지 않다. 조성희 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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