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주, 그냥 정의로운 사람이어도 괜찮다구(인터뷰)

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의 박효주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3.0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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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 배우 박효주 / 사진=이기범 기자


"21세기에 노예라니, 이게 말이 돼?"

'섬, 사라진 사람들'(감독 이지승)은 2014년 충격을 안겼던 '염전노예' 사건을 반추한다. 주인공은 카메라 기자와 단 둘이 서해안의 섬마을에 잠입 취재에 들어간 기자 이혜리. '여형사 전문배우'로 불리던 박효주(34)가 주인공을 맡았다. 여성스런 외모로 강단 있는 캐릭터를 즐겨 연기해 온 그녀가 그린 기자상은 퍽 인상적이다. 갖가지 난관에도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그는 천생 기자다. 자극적인 뉴스거리에 천착하는 속물이 아니라 잘못된 현실을 낱낱이 밝혀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프로다. 기자들을 부패권력의 연결고리로, 혹은 시류에 야합하는 속물로 즐겨 묘사하는 한국영화에서 이런 캐릭터, 참 오랜만이다. 박효주는 감독의 말을 빌려 "그냥 정의로운 사람이면 안 되나요. 정의로운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라고 반문했다. 그 말이 꽤 오래 가슴에 남았다.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페이크다큐 기법이 인상적이다.

▶새로운 경험이 되겠다 해서 참여했지만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쉽지 않았고, 이게 1시간 넘게 나가면 어찌 비춰질까 걱정도 되더라. 호불호가 있겠지만 눈에 익으니 장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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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 배우 박효주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인권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제게는 인권문제 관련 실화를 영화로 이야기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이 필요했다. 그저 알리기 위해서라면 시사프로그램이 더 디테일하게 다룰 문제고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뒷걸음질쳤을지 모른다. 감독님은 또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더라. 사건이 발생하면 불쌍하다며 다가가지만 결국엔 범인잡기, 마녀사냥에 들어가 누구하나를 죽어야 끝을 보는. 우리의 모습이 그렇지 않냐는 걸 보이고 싶으시다기에 동의했다. 저 역시 그런 사람들 하나라 생각했고.

-겨울에 섬에 갇혀 색다른 기법으로 촬영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되게 춥긴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핫팩이 좋더라. 매일매일이 오랜만에 공부하는 것 같은 작업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촬영장이었다. 힘들었지만 그걸 하고 싶어 간 거라 더 즐거웠다. 긴장은 됐다. 콘티가 미리 나오는 게 아니라 리허설을 하며 맞추고 늘 카메라, 조명과 함께 움직여야 하니까. 색다른 작업이었다. 배우끼리 연기를 맞춰보는 게 아니라 카메라 워킹을 맞추고 아이디어를 내고 하는 게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장르가 장르다 보니 미모는 포기한 듯 하더라.

▶신경을 쓰려고 했을 땐 이미 너무 지난 뒤였다. 농담이다.(웃음) 조명이야 있었지만 반사판도 없고, 예쁘게 보이기 위한 노력은 전혀 없는 현장이었다. 감독님이 '미안한 장면들이 많아'라고 하셨지만 서운한 건 전혀 없었다. 당연히 예쁘게 멋지게 찍히는 데 익숙하다. 반사판의 소중함도 안다. 하지만 어디에 마음을 두느냐, 흥미를 느끼며 찍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이었다. 패션도 단벌이나 다름없는데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건 단 하나였다. '이혜리는 옷차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것. 영화를 보며 '어이쿠' 할 수는 있겠지만 당시엔 즐겼다.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생각했다.

-이혜리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감독님은 정의를 갈망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저는 열혈기자다, 정의롭다 이렇게 정의를 못 내리겠더라. 감독님한테 '이혜리 기자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죠'라고 물었다. 입체적으로 그려질 수 있게 어떤 이유를 만들어 달라고도 이야기했고. 그런데 감독님은'그냥 정의로운 인물이 우리에게 낯설어졌나요'라고 하시는 거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그냥 정의로운 인물이면 안되나. 그런 인물이 왜 내 스스로도 낯설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스스로도 저를 돌아보게 됐다. 연기생활을 하면서 누가 보면 무모하고 또 억지스럽게 한 적도 있고, 해야 한대서 달려갔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저 순수한 열망이 있었다. 뭔가를 배우고 밤새 일하면서 느낀 열망이 이혜리 기자의 열망과 다르지 않구나, 내가 가진 직업의식과 같은 세계로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의심하지 말자고 생각하니 잘 풀렸다.

실제로 보고 느낀 적도 있었다. 과거 여행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제작진이 과거엔 '그것이 알고 싶다'를 만든 분들이었다. 진실이 묵살 되는 데 분노하고 협박 전화 등을 받으며 견뎠던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 분들의 생각을 공유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조력자가 아닌, 홀로 선 강인한 여성 캐릭터도 인상적이었다.

▶이혜리를 통해서 그런 캐릭터에 대한 욕구가 더 생겼다. 저는 이혜리가 슈퍼우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끝나고 나서 더 생겼다. 강한 여성이기는 했지만 열혈 기자라기보다는 짙은 분노로 느껴지더라. 엔딩이 가장 갑갑했다. 무덤가를 거니는 기자의 모습이 짠했다. 마치 인권을 짓밟히고서 죽은 이들을 무덤을 보며 진실을 밝혀야 하는 여자의 막막한 현실을 보여준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엔딩이다. 열린 결말이긴 하지만 어떤 희망이 담겼다고 생각했다.

-최근 결혼했는데, 어떤가.

▶좋다. 사실 아직은 크게 달라질 게 없다. 남편은 친구같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는 오래 같이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고, 프러포즈 먼저 했다. 단순했다. (웃음) 앞으로도 오래 연기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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