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 죄라서 달콤하고 절실한 전도연과 공유의 사랑

[리뷰] 남과 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2.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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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라서 더 달콤한 게 있다. 죄라서 더 절실한 게 있다. 이름을 저장하지 않는 전화번호처럼, 확인하고 지워버리는 문자 메시지처럼, 죄라서 더 달콤하고 절실한 게 있다.

이윤기 감독의 신작 '남과 여'는 달콤하고 절실한 사랑 이야기다.


핀란드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아픈 아이들을 위해 서울을 떠나 핀란드로 향했던 두 사람. 무심한 남편을 둔 여자는 아픈 아들이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질식할 것 같은 아내와 아내를 닮은 딸에 지쳤다.

우연히 만난 둘은 아이들 캠프를 쫓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쏟아지는 눈으로 고립된다. 조용하고 눈도 많고 공기까지 다른 그 곳. 어쩌면 환상일 지 모르는 그 곳에서 둘은,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사랑을 나눈다.

한국에 돌아온 두 사람. 각자의 일상에 지쳐갈 무렵, 남자가 여자를 찾는다. 여자는 남자가 반갑다. 애매하게 늘 결단을 미루는 남자는 유독 이 여자에겐 적극적이다. 여자는 그런 남자가 싫지 않다. 둘이 같이 있으면, 지친 일상이 사라지고 핀란드의 꿈 같았던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그렇게 지치고 아픈 일상을 잊으려 서로에게 다가가는 남자와 여자. 달콤함에 취할수록 여자는 불안하다. 아픈 아이를 떠올리고, 그 남자의 아픈 일상을 알게 되자, 남자를 밀어내려 한다. 하지만 만나면 늘 여행을 가는 것 같은 이 남자가, 여자는 그만 절실해졌다.

아내와 딸에 숨이 막힐 것 같아 먼저 달콤함을 찾았던 남자는, 여자가 절실해지자, 애매했던 마음을 결심한다. 둘의 사랑은 어디로 가게 될까.

'남과 여'는 통속적이다. 이윤기 감독의 전작들이 그랬듯. 또 이윤기 감독이 전작들에서 그랬듯 이 통속은 깊다. 여운이 길게 남는다.

남자와 여자는 아픈 아이들을 제외하곤 남 부러울 게 없어 보인다. 예쁘고 어린데다 부잣집 딸인 아내와 TV에도 나오는 잘 나가는 의사 남편. 한강 야경이 보이는 아파트와 야외 테라스에서 친구들을 초청해 와인파티를 열 만한 집에서 산다. 남자는 잘 나가는 건축가고, 여자는 능력 있는 의상 디자이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일상이 힘들다. 비슷한 상처를 같이 비빌 온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둘은 서로를 탐닉한다. 바다에 떠내려가는 운동화를 다시 줍지 못할 걸 알면서도 바다로 떠나고 싶어하는 아이들 마냥. 이윤기 감독은 남자와 여자의 짙은 외로움을 관망하듯 던져놓았다. 화려하지만 화려하기에 더 고독하도록, 그래서 서로에게 더 절실하도록, 일상을 예쁘게 꾸몄다. 이 통속극이 더 절절한 까닭이다.

눈 덮인 핀란드. 넓은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눈과 나무, 그리고 고독한 남자와 여자. 그리하여 숲 속 덩그러니 놓여있는 사우나는, 두 사람이 처음으로 온기를 나누기에 적합했다. 아름답다. 환상이다. 이 적막하지만 따듯한 환상과, 서울의 화려하지만 차가운 현실은, 절절하게 대비된다. 통속이기에 더 절절하고, 통속이기에 더 아프다.

카메라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눌 때도, 두 사람의 몸보단, 두 사람의 감정을 따라간다. 가슴과 복근보단, 눈과 손, 습기가 가득한 유리, 차가운 창밖을 따라간다. 죄라서 달콤하다는 걸, 죄라서 절실하다는 걸, 말로 풀지 않고 감정을 따라가며 보여준다.

'남과 여'의 모든 소리는 대사다. 적막까지 대사다. 아니 대사마저 소리다. 적막과 곧 튀어나와 늬앙스보다 먼저 달리고 고조시키는 음악,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 이 모든 소리는 남자와 여자의 감정에 푹 잠기도록 만든다.

여자를 맡은 전도연은 '멋진 하루'에 이어 이윤기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남과 여'에는 전도연의 시간이 보인다.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갔던 '해피 엔드'의 전도연, 하얀 눈이 쌓인 호수를 걷던 '스캔들'의 전도연, 옛 남자와 돈을 같이 받으러 다니던 '멋진 하루'의 전도연... 켜켜이 쌓인 시간을 하얀 눈으로 덮고 다른 길을 가는 전도연이 보인다. 전도연을 아는 만큼 전도연이 보인다.

남자를 맡은 공유는 좋다. 전도연과 호흡을 맞추는 남자배우들은 흔히 기 싸움을 하듯 보인다. 누가 더 연기를 잘하느냐를 놓고 겨루듯 보인다. 공유는 달랐다. 그는 '남과 여'에서 온전히 전도연을 사랑한 것 같다.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그의 거리감은 전도연을 사랑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남자의 마지막 선택을 비겁하다 할 수 있어도 절절해지는 건 오로지 공유의 공인 것 같다.

'남과 여'는 공간과 소리가 아름다운 영화다. 이 공간과 소리에 빠져든다면 온전히 '남과 여'와 사랑에 빠질 것 같다.

2월25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추신. '과거가 없는 남자'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핀란드 배우 카티 오우티넨이 마지막 장면에 전도연을 태워주는 택시기사로 짧게 등장한다. 전도연과 카티 오우티넨이 같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눈 덮인 핀란드로 달려가 꼭 담배를 피워보고 싶다는 충동을 준다.

추신2. 왜 또 고전 영화 제목을 그대로 쓰냐 싶지만 영화를 보면 왜 '남과 여'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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