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 '인턴'은 왜 韓에서 通했을까..공감 없어도 위로는 된다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5.10.26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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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인턴' 스틸컷


뒤늦게 '인턴'을 봤다. 개봉 한 달이 된 영화를 극장에서 그것도 꽤 큰 관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이례적 흥행 덕분이다. 지난달 24일 개봉한 '인턴'은 입소문을 타고 개봉 2주차에 관객이 더 몰리는 '개싸라기'를 성사시키며 현재까지도 롱런 중이다. 300만 관객을 훌쩍 넘겨 지난 25일까지의 누적 관객 수는 316만 명에 이르렀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342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한 음악영화 '비긴 어게인'의 기록을 넘볼 만하다.

한국 팬들의 '인턴' 사랑이 얼마나 유난한지 감동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직접 감사 영상을 영상으로 전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북미 수입이 약 6400만 달러로 신통찮은 성적을 거둔 '인턴'은 해외시장 중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렸다. 25일 오전 박스오피스모조닷컴 기준으로 1900만 달러 가량. 미국 수입에 3분의1에 육박할 뿐만 아니라 여타 국가와 비교해도 월등한 성적이다. 왜 유독 한국 관객이 '인턴'에 민감하게, 그리고 기쁘게 반응했을까.


'인턴'은 30대 여성이 이끄는 온라인 패션 쇼핑몰 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간 70살 인턴사원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드라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독재자 편집장 아래에서 동동거리던 앤 해서웨이가 성공한 인터넷 사업가 줄스로 분했고, 팔색조 배우 로버트 드니로는 중후한 멋을 풍기는 은퇴자 출신 시니어 인턴 벤 역을 맡아 호흡을 맞췄다. 사장님 줄스와 인턴 벤, 처음엔 다소 삐걱거리던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며 멋진 '동료'가 된다. 재미있고 유쾌하다.

회사 일에 힘을 쏟던 줄스의 집안이 삐걱거리긴 하지만, 영화는 흐뭇한 이상과 낙관으로 가득하다. 열정으로 가득한 청년 창업가, 꿈을 이룬 알파걸, 웃음이 넘치는 직장, 능력으로 대우하는 조직, 쓰임새를 찾은 노인, 황혼의 로맨스, 그리고 진짜 존경할만한 어른…. (특히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만한 로버트 드니로의 벤은 모두가 꿈꾸는 노인이나 다름없다. 연륜과 품격을 지닌 건강한 노신사이자, 커피 심부름에 까다로운 여사장의 운전까지 마다않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이해하며 현명한 방식으로 개입하는 진짜 어른이다. 심지어 지질한 요즘 남자들과 비교에서 앤 해서웨이로부터 '진짜 남자'란 찬사까지 받는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80만원 세대부터 점점 포기할 게 늘어가는 삼포세대, 오포세대, 7포세대, N포세대 그리고 '헬조선' 따위의 험악한 신조어를 굳이 끄집어낼 필요도 없다. 만약 한국에서 '인턴'이란 제목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면 시대착오적이란 평을 듣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허무한 스펙쌓기, 착취와 '열정페이' 등을 짚고라도 넘어가야 욕이라도 덜 들었을 것이다. '인턴'의 마무리는 취직 아니면 퇴사였을 것이며, 설사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된 업무와 경쟁, 경직된 조직문화 속에 또 다른 벽을 마주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회사 이야기에 등장하는 노인은 회장님 아니면 경비원이었을 테고, 중년의 8할은 '꼰대'나 구악으로 묘사되었을 게다.


최근 만들어진 우리 드라마, 영화들은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드라마 '미생'의 비정규직 장그래는 노력과 성과에 상관없이 번번이 벽에 부딪혀 깨졌고, 영화 '오피스'에선 아예 회사가 전쟁터를 넘어선 공포와 죽음의 공간이 됐다. 류현경이 한 명대사가 있다. "내가 지금 살려고 일하는 건지 죽으려고 일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인턴'을 '힐링영화'라 한다. '인턴'의 세상에선 수평적인 조직문화 속에 여성과 남성, 젊은이와 노인, 패기와 연륜, 신상과 클래식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아마 젊은이도 노인도, 남성도 여성도, 인턴도 직장인도 퇴직자도 저마다 꿈꾸던 뭔가를 발견했을 것이라 마음대로 짐작해본다. 허전했던 마음 한 구석에 조금은 따뜻한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고도 생각해 본다. 태평양 건너 이야기를 마음편히,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공감이 없어도 위로는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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