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 권력을 色으로 色하고 色하게 그린 영화 ①

[리뷰]간신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05.1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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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의 장점은 이야기를 아름답게 세공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민규동 감독의 단점은 그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한다는 점이다. 그는 누구와 같이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장점과 단점이 춤을 춘다.

민규동 감독이 '간신'으로 돌아왔다. 2012년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내놓은 뒤 장편을 선보이는 건 3년만이다. '간신'은 조선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희대의 간신으로 지금까지 손가락질 당하는 임사홍 임숭재 부자의 이야기를 상상을 더해 만든 작품.


어머니가 아버지에 의해 비통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임사홍 부자에게 전해들은 왕은 미쳐 날뛴다. 여인을 탐하고 죽이고 그 원한이 두려워 더욱 여인을 탐하고 사람들을 죽인다. 소인으로 규정된 임사홍 임숭재 부자, 아니 왕의 동무였던 임숭재는 총애를 믿고 더욱 권력의 칼을 휘두른다.

자신들을 소인이라 부르며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을 죽여 나가고, 일만명의 미인을 바쳐 왕을 더욱 혼미하게 이끈다. 왕이 천년의 쾌락을 탐할 수록 그 등을 타고 왕 위의 왕 노릇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왕에게 최고의 미인을 선사해 조종하려 했던 임숭재는 그만 사랑이란 덫에 걸리고 만다. 백정의 딸 단희가 세도가의 딸로 위장해 왕에게 접근하건만 오히려 그녀를 키우려 한다. 가뜩이나 임사홍 부자와 왕의 총애를 나누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던 장녹수가 비장의 무기 설중매를 키우고 있는데 말이다.


단희와 설중매는 최고의 여인이 되기 위해 남자를 기쁘게 만들어준다는 방중술을 연마하며 경합한다. 그 둘의 대결을 학수고대하는 왕과, 그럴수록 사랑이 더욱 커져 아파하는 임숭재, 불안불안하게 지켜보는 아비 임사홍, 그 틈을 노리는 장녹수와 설중매. 돌고 도는 권력과 육체의 암투 속에 왕을 노리는 반정의 기운은 날로 커져 간다.

민규동 감독은 '간신'을 간사할 간(奸)을 쓴 '奸臣'이라 짓지 않고 간음할 간(姦)을 써 '姦臣'이라 지었다. 이 이름짓기가 영화 '간신'을 규정한다. 왕을 농락하고 권세를 탐한 간신이었지만 결국 남의 여인을 사랑해 파국을 맞는 신하의 이야기. 여자(女) 셋을 모은 게 간음할 간(姦)인 것도 닮았다. 단희와 설중매, 장녹수 여자 셋이 간신과 영화를 이끄는 또 다른 축이니깐.

'간신'은 색(色)으로 권력의 추악함을 드러내려 했다. 시 짓기를 좋아하고 풍류를 즐겼다는 연산군과 그가 모았던 일만명의 가희들의 모임 운평을, 색으로 규정했다. 미색과 여색. 영화를 세 명의 벌거벗은 여인을 쌓아 '간음할 간'자를 형상화하고 그것을 그리는 왕으로 시작한 건 민규동 감독의 또 다른 이름짓기다.

그런 의도답게 '간신'은 벌거벗은 여인들의 향연이다. 사촌누이와 간음하고, 남의 여인을 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왕의 이야기답게 시종일관 벗고 탐하고 괴롭힌다. 쾌락으로 권력의 추악함과 덧없음을 그렸던 영화 '칼리굴라'를 연상시킨다.

이 시도는 절반은 성공했다. 한국영화에선 유례없을 정도로 벌거벗은 여인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눈물짓고 때로는 비통하게 벗는다. 민규동 감독은 춤과 노래를 아름답게 연마하도록 끌어 모았다는 운평을 음란마굴로 만들어냈다. 아니, 그는 왕이 있는 곳 자체를 음란마굴로 만들어 권력을 조롱하려 한 것 같다.

민규동 감독이 연산군과 장녹수라는 희대의 역사 아이콘 대신 나름 유명인인 임사홍도 아닌 그의 아들 임숭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비슷한 이유인 것 같다.

이 시도는 낯설다. 낯설기에 신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낯섬을 만고의 진리인 사랑 이야기, 그것도 첫사랑으로 달래야 하면서 이야기가 종종 늘어진다. 이유를 덧붙이고, 길게 풀어내는 통에 신선함이 종종 빛을 바란다. 민규동 감독은 색으로 낯설게 함과 뻔한 이야기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수시로 등장하는 정사 장면은 아름답고 슬프고 격렬하지만 종종 길다. 발이 여러 개 달린 뱀 같지만 아름답다. 장점과 단점이 춤을 춘다.

배우들의 연기는 볼만하다. 영화의 상당부분을 배우에게 빚졌다. 임숭재로 출연한 주지훈은 수려하다. '인간중독'과 '봄'에서 노출연기를 했기에 더욱 '간신'이 어려웠을 임지연과 이유영은 단희와 설중매로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두 여배우의 미래가 기대된다. 때론 캐릭터가 배우를 잡아먹는 경우가 있다. 연산군 역의 김강우가 그랬다.

흔히 사극으로 현재를 그린다. 민규동 감독은 권력과 그 덧없음을, 희대의 간신으로 색하게 그리려 했다. 이 색함은 통할 것 같다. 임지연과 이유영의 정사 장면은 전설로 남아있는 '옥보단'을 연상시킨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아는 만큼 볼 것 같다. 야한 것보다 잔인한 것을 못 견디거나 여자들을 다루는 방식에 불쾌할 수는 있겠다.

21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실제 역사에선 영화와 달리 임숭재는 중종반정 1년 전에 "죽어도 여한은 없지만 미인을 바치지 못해 한"이라며 병으로 죽었다. 그러니깐 '간신'은 영화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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