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의 솔직한 시간 "미안, 난 그렇게 멋진 사람이 아니야"(인터뷰)

김소연 기자 / 입력 : 2015.04.02 10:18 / 조회 : 4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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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사진=김창현 기자


이보다 더 솔직하고 당당할 수 없었다.

배우 윤여정(68)은 "인터뷰를 싫어한다"고 했다. 꾸미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데, "인터뷰를 하면 뭔가 꾸며야 하는 것 같다"면서 웬만한 인터뷰 요청은 거절했다. 하지만 '장수상회'(감독 강제규·제작 빅픽쳐,CJ엔터테인먼트)의 여주인공이기에 인터뷰를 하지 않을 순 없었다.

평소엔 꺼리는 인터뷰였지만 막상 대화가 시작되자 윤여정은 어떤 배우보다 열정적이었다. "이왕 한다고 했으니까"라고 말했지만, 1시간여의 인터뷰 내내 가식 없이 작품을 소개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시작은 '장수상회'를 본 솔직한 평이었다. '장수상회'는 재개발을 앞둔 동네의 장수마트를 중심으로 고집 세고 까칠한 노인 성칠(박근형 분)이 금님(윤여정 분)을 만나 펼치는 따뜻한 러브스토리를 담은 작품. 윤여정이 연기한 금님은 꽃보다 고운 꽃집 여인이다.

지난해 8월 KBS 2TV '참 좋은 시절'이 끝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촬영에 들어갔고, 난생 처음 분홍치마도 입었다. 하지만 윤여정은 이 모든 것들을 애써 꾸미거나, 긍정적으로 포장하려 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어요. 박근형 씨가 워낙 잘했으니까. 근데 제가 원래 잘 울어요. 영화를 보면서도 불만이 보였어요. 그래서 시사회가 있던 날 밤 강제규 감독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박근형 선생님을 빛내준 건 선생님입니다', 이런 문자가 오는데 무슨 외무부장관 같았어요."

그러면서도 강제규 감독에 대한 칭찬은 잊지 않았다. 직설화법으로 독설도 서슴없이 하지만 윤여정이 호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촬영 할 때 즐겁냐, 즐겁지 않냐는 감독에 따라 결정이 되요. 그런 면에서 강제규 감독은 노련한 감독이었고, 스케줄대로 딱딱 끝내주는 사람이었어요. 리허설을 완벽하게 마치고, 테이크도 여러 번 가지 않았죠. 오후 5시에 끝나기로 했는데, 4시에 끝내줘서 내가 방황하기도 했으니까. 촬영을 마치고 강 감독에게 '난 다음 작품은 어떻게 하냐'고 그랬어요. '강 감독이 하는 작품에 저 좀 데려가 달라'고도 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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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사진=김창현 기자


극중 윤여정이 연기하는 임금님은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해 올해로 50년차 배우지만 윤여정은 "이런 역할은 처음"이라고 소개하면서 "예쁘지 않은데, 예쁜 척 연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어디 예쁜가. 예쁘지 않은 여자가 예쁜 척을 해야 하니 흉내 낸 거지. 꽃무늬, 분홍색 옷도 평생 안 입어 본 거예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 나이에 수술하고 나갈 수도 없잖아요. 그렇게 보이려 애썼죠. 강제규 감독이 고생했어요. 그렇게 보이게 찍으려고."

그녀는 임금님과 인간 윤여정의 차이를 소개하며 거리를 뒀지만, '장수상회' 제작진은 윤여정의 출연을 위해 몇 번이나 캐스팅을 제안했다. "한 번에 두 개는 못한다"는 윤여정을 위해 '참 좋은 시절'이 종영할 때까지 촬영 스케줄을 조정하며 기다리기도 했다.

"박근형 씨도 당시에 주말드라마를 찍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하겠다고 했데요. 그런데 전 '체력이 안 좋아서 두 개는 못 한다'고 고사했죠. 아마 그 쪽에선 이해가 안됐을 거예요.(웃음) 그렇게 거절을 했는데 또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날 기다려 준다면 기꺼이 하겠다'고 했더니 해주더라고요. 드라마를 끝내고 쉬지 못하고 바로 들어가서 체력적으로 힘들긴 한데, 배려하는 게 느껴졌어요. 말을 하지 않아도 보이더라고요."

인터뷰 내내 윤여정이 상대역이었던 박근형에게 부러움을 드러냈던 건 체력이었다. 촬영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물을 때에도 "미안하지만, 난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 체력적으로 힘든 게 제일 힘들다"며 "박근형 씨에게 뭘 먹냐고 물어봐도 안 알려 준다"고 토로했다.

"놀이기구를 타는 장면이 있는데, 이게 한 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계속 가야한데요. 중간에 멈추면 고장이 난다고요. 한 번 돌리면 10분 정도인데 이걸 4~5번 연속해서 계속 했어요. 속이 울렁거리는데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야하니 고통스럽더라고요. 그런데 옆에 앉아 있는 박근형 씨는 멀쩡한 거예요. 물어보니 멀미약을 미리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좀 알려주지, 혼자만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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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사진=김창현 기자


윤여정과 박근형은 1971년 '장희빈'에서 장희빈과 숙종으로 처음 만났다. 이미 인기스타였던 박근형은 당시 신인이던 윤여정에게 "그렇게 연기 하면 안 된다"고 쓴 소리도 했던 선배였다. 이들이 44년 만에 다시 사랑하는 사이로 만난 것. 극중 애틋한 눈빛으로 보는 사람마저 떨리게 했던 러브신을 완성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윤여정은 "박근형 씨와는 개그 코드도 맞지 않는다"며 "손석희 앵커를 좋아한다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근형 씨랑 저와 얘기하면 개그 코드가 안 맞으니까 서로 얘기를 안 하게 되요. 기본적으로 그분은 일을 참 열정적으로 하는 분인데, 저는 노는 게 좋고요. 논다는 게 별게 아니라 사람들이랑 수다 떨고 씹는 거죠. 이게 기자와 평론가가 하면 평인데, 저희가 하면 씹는 거잖아요. 마음 맞는 사람끼리 어떤 단점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씹는 것만큼 친해지는 것도 없는 거 같아요."

주변 상황을 논리적으로 냉철하게 판단하는 능력은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부분이었다. 윤여정은 "민망해서 내 작품은 다른 사람과 함께 못 본다"면서 "이번 작품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솔직히 평했다. "열심히 찍었으니, 잘 봐달라"는 상투적인 말도 없었다. 데뷔 초 "넌 목소리 때문에 안 된다"고 타박 받으며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섰지만 여전히 배우로서 도전도 멈추지 않고 있다.

"연기가 식상해지기 시작하면 피부나, 외모 등에 대한 단점을 지적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연기에 몰입이 안되니 단점만 보이는 거죠. 어떻게 매번 신선할 수 있겠냐만, 극복하려 애써야죠. 배우라는 게 장애물 경기 같은 거 같아요. 하나를 넘기면, 또 하나가 앞에 있어요. 차기작이 '계춘할망'인데, 시나리오만 봐도 엄청 힘들 것 같아요. 해녀 출신 역이라 물에 들어갔다가 심장마비는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그래도 정말 다른 역할이라 도전해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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