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 "센 역할만 한다? 갈 때까지 가보자"(인터뷰)

[2014 여성영화인 릴레이 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12.09 09:51 / 조회 : 12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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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사진=김창현 기자


2014년 한국영화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영화들 상당수가 조용히 침몰했다. 3년 연속 1억 관객 돌파를 눈앞에 뒀지만 몇몇 대형 흥행작들 선전 덕분이다. 위기 일수록 기회가 빛나는 법. 올해 한국영화계는 여성영화인들이 곳곳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새로운 발견, 의미 깊은 기획 등등은 여성영화인들의 것이었다.

스타뉴스는 2014년 한국영화계를 결산하며 올해를 빛낸 여성영화인들을 릴레이 인터뷰로 조명했다. 두 번째 주자는 천우희다.


올해 한국영화계의 발견 중 하나는 천우희다. 천우희는 2004년 '신부수업'으로 단역으로 데뷔해 10년의 무명생활을 보냈다. 올해 '한공주'로 깊은 수면 아래 잠겨있던 그녀가 비로소 길어 올려졌다.

천우희는 밀양 여중생 성폭행사건이 모티프인 영화 '한공주'(감독 이수진)에서 타이틀롤 한공주 역을 맡았다. 쉽지 않았던 영화다. 천우희는 "오디션 봤을 때부터 '내꺼다' 싶었는데 나이가 많다고 떨어졌었다"며 "영화와 확실히 교감이 돼서 마음이 통했다"고 말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한공주'에서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고 담담히 말하는 천우희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었다. 그렇게 천우희는 자신을 각인시켰다.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르고, 여성영화인 시상식에선 연기상도 탔다. '한공주'로 공주 대접을 받진 않았지만 분명히 10년 무명은 끝이 났다.

천우희는 "(한공주 이후)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래도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면서 "상도 영화도 내 손을 떠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분명 다르다. 여느 여배우와 천우희는 사뭇 다르다. 인터뷰를 위해 사무실을 방문한 천우희가 건 낸 첫 마디는 "화장실이 어디에요?"였다. "안녕하세요?"도, "스튜디오는 어디에요?"도 아니었다. 다르다는 건 천우희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다.

'마더'에서 진구와 베드신을 찍었던 천우희는, '써니'에서 본드걸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우아한 거짓말'에선 동생을 아끼는 고교생 언니로 등장했으며, '한공주'로 인장을 찍었다. '카트'에서 취업이 안 돼 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까칠한 처녀까지 천우희는 모두 달랐다.

시작부터 달랐다. 고교 때 연극반이던 천우희는 "하다 말겠지"라는 부모님의 생각과는 달리 경기대 연극영화과를 들어갔다. 학교에서 적응을 못했다. "쟤, 연예인 한데"라는 수근거림도 있었다. 휴학을 했다. 친한 언니인 배우 이미도 에이전시에서 정보를 알려줘 알음알음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 '마더' 오디션에 합격했다. 천우희는 "현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정말 프로더라"며 "이걸 평생 직업으로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베드신을 한 것조차 주위에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음에 길을 세워준 영화지만 "나 영화 나왔어"라고 친구들에게 툭 말했을 뿐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무척 '쇼킹'했단다.

'허브'에서 이름 없는 깻잎 머리 소녀를 맡은 뒤로 천우희에겐 센 역할들이 이어졌다. 천우희는 "어린 나이에 노출을 했으니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린 나이에 본드를 부는 역할을 했고, 그래서 어려울 게 없다고 했더니 '한공주'를 하게 됐다"며 웃었다.

센 역할만 하는 걸 천우희라고 왜 부담스러워하지 않았겠나. 주위에선 "실제 너 같은 역할을 하지, 왜 맨 날 센 것만 하냐"고 걱정도 많다. 천우희는 "'써니'를 하고 난 뒤 왜 사람들이 센 역할을 기피하는지 알겠더라"고 토로했다.

"영화 속 인물 이미지를 겹쳐서 보는 것 같다. 부담이 솔직히 됐다. 그래도 부담은 되지만 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이래서 피하고 저래서 피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미지가 센 걸로 굳어지는 건 앞으로 숙제고, 지금은 땡기면 해야 한다." 사는 게 평범하니 영화 속에선 평범하지 않은 인물을 하는 게 더 새롭다고도 했다. "어디까지 센 역할을 할지,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차기작인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김광태 감독의 '손님'에서도 녹록치 않은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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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사진=김창현 기자


그런 마음들이 이어져 오늘의 천우희가 됐다. '써니'가 성공한 뒤 영화 속 다른 배우들은 한참 주목을 받았다. 천우희에겐 그전 본드걸이란 이름만 남았다. 그래도 배 아프다고 느껴본 적도 없단다. "다르니깐." 천우희는 각자 다르고, 다른 역할을 했으니, 다른 결과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고 했다.

'한공주' 이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여전히 대중교통 이용하고 다니지만 알아보는 사람들이 한참 늘었다. 앞으로는 점점 더 달라질 것이다. 주위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변화 속에서 천우희는 "어렵겠지만 내 방식을 고수하고 싶다"고 했다. "어려울 수도 있지만 오기를 부리고 싶다"고 했다. 천우희는 스스로 예쁘지 않다고 했다.

"예쁘지 않고 날씬하지 않으니 벽이 있더라. 지금도 그런 벽이 느껴진다. 그래서 오기를 부리고 싶다. 내 방식을 지키고 싶다. 작품으로 남고 싶다."

천우희는 다르고, 달라서, 다른 배우로 남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천우희는 "2014년은 선물 같은 해"라며 "사람들이 농사를 잘 지어서 수확한 해라고도 하지만 오히려 부담된다. 너무 들뜨지 않도록 마음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옥돌 우(玗)에 아름다울 희(嬉). 옥은 예로부터 품은 사람의 성품을 드러낸다는 귀한 보석이다. 금처럼 빛나지도,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도드라지는 귀함이 있다.

빛나는 옥은 만년을 간다. 천우희가 옥돌 같은 귀한 아름다움을 계속 드러낼 수 있을지, 지켜보는 즐거움이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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