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거품이 빠졌다" 구혜선의 깊은 이야기(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11.1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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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선/사진=임성균 기자


구혜선이 또 영화를 내놨다. 6일 개봉한 '다우더'. 어릴 적 엄마의 극심한 집착에 힘겨워 했던 딸의 이야기다. 감독 구혜선이 내놓은 예전 영화들과 사뭇 결이 다르다. 소녀감성이 충만했던 전작들보다 이야기는 무겁고, 색은 짙어졌다.


구혜선은 마음 속 소녀를 떠나보낸 걸까? 아니면 마음 속 소녀가 어른이 된 걸까?

연기에, 영화연출에, 음악에, 그림...누구는 구혜선에게 팔방미인이라고 한다. 누구는 구혜선에게 하고픈 걸 다 하고 산다고 한다. 구혜선의 이야기를 깊게 들었다.

-'다우더'는 왜 만들었나.


▶친구들이 많이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고 있다. 어느 날 만나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들 어릴 적에는 엄마에게서 도망가고 싶고 독립하고 싶어했다더라.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으니 내 아이는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들 하고. 그런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처음 영화를 연출할 때는 직접 출연은 안했었다. 연출에 집중하려 그랬을 테고. 그런데 '다우더'에는 연출에 주연까지 맡았다. 더욱이 첫 영화 출연인데.

▶첫 번째는 예산 때문이다. 총제작비가 1억원 가량 들었다. 내가 뭐든 쓸모가 있어야 할텐데라고 생각했다. 또 내가 직접 연기를 하면 나한테도 좋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영화로 내가 데뷔한다는 것도 수확이라고 생각했다.

-구혜선의 영화는 소녀감성이 충만했다. 그 감성 그대로 가는 것도 어떤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런데 '다우더'는 그동안 소녀감성과는 좀 다르다. 어둡고 직접적인데.

▶나한테는 좋게 말하면 순수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현실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끝에 가면 소녀적인 마음이 드러난다. 어떻게 저런 사람과 결혼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 사랑이 최고지'라는 마음이랄까. 그런 부분이 어쩔 수 없이 영화에 담기는 것 같다.

그런데 '다우더'를 할 때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긍정을 믿어요'라며 이런 사람의 뜻도 알겠고, 저런 사람의 마음도 알겠다며 다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과연 그런 것들이 진실일까라는 물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완성되지 않은 윤리관이 생긴 것 같다. 아무래도 '다우더'에 그런 부분이 담긴 것 같다.

-연예인 구혜선과 감독 구혜선 사이엔 간격이 있다. 연예인 구혜선은 다 보여줘선 안되지만 감독 구혜선은 영화로 자신을 한껏 드러내야 하는데.

▶난 직업도 연예인이고 분명히 가면이 있다. 어쩌면 남들보다 더 두꺼운 가면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하려니깐 이 벗지 못한 가면을 벗어야 했다. 그래서 영화작업을 하면 그런 부분들이 충돌하는 것 같다. 가면을 벗는 작업이기도 하고. '다우더' 시나리오를 쓰면서 엄마로 나오는 심혜진 선배 대사로 "이년아, 저년아" "나 아니었으면 창녀가 됐을거야"라며 심한 욕들을 쏟아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누구에게 이렇게 욕을 하고 싶었을까란 생각이 들더라. 이번 영화를 하면서 내 가면이 한풀 벗겨진 것 같다.

-딸에게 집착하는 심혜진이 영화 속에서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나오는데.

▶나는 종교가 없다. 우리 어머니도 종교가 없다. 그런데 어릴 적 어머니를 떠올리면 절이 보이면 절에 가서 자식 잘되라고 기도하고, 교회가 보이면 교회에서 자식 잘 되라고 기도하고, 성당이 보이면 성당에서 자식 잘 되라고 기도하셨다. 어머니는 그런 존재인 가보다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다우더'를 준비하면서 주변 인터뷰를 많이 했었다. 한참 준비할 때 계모의 아이 살해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이 계모라서 논란이 일었지만 실제론 친부모 아동학대가 훨씬 많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더라. 잘되라고 혼을 내고 그러면서 손을 대고 그러다가 학대로 이어지고. 그렇다면 과연 모성이 뭘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문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예전 영화들에선 주인공이 항상 셋이었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전형적인 소녀만화 구도이기도 하고, 그게 이야기를 풀기도 쉽고. 캐릭터도 모호했었다. 그런데 '다우더'에선 딸과 엄마, 둘이 이야기를 이끈다. 캐릭터도 분명하고.

▶첫 번째는 예산이다. 작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려면 이런 구도가 필요했다. 또 예전에는 한 주제에 여러 이야기를 하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가지 주제에 한 가지 이야기를 하려 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내 생각이 굳어지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도 한다. 안다는 걸 맞다고 생각할까봐. 계속 그런 과정이고 그게 영화에 담긴 것 같다.

-구혜선의 영화는 늘 오렌지에 가까운 노란색이 떠오른다. 그만큼 영화 톤이 노란색이었다. 그런데 '다우더'는 차가운 회색빛이 강하다. 영화에 맞기도 하지만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원래 노란색을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회색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추구했던 톤이 엘로우였다. 밝은 세상에 대한 어떤 갈망, 희망들이 그런 톤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좀 달라진 것 같다. 더 건조해진 것 같고. 내 안의 거품이 빠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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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선/사진=임성균 기자


-감독 구혜선이 영화를 내놓으면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배우나 하라는 비아냥도 꼭 있다. 그런데도 영화를 계속 내놓는 이유는 뭔가.

▶청개구리, 청개구리, 청개구리 심보다. 오기로 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든다. 계속 할까요? 계속 할 수 있을까요? 란 질문을 나한테 많이 던진다.

예전에는 완전 플랜맨이었다. 3~4년치 계획을 다 짜놓고 살았다. 이때쯤 영화를 찍고, 이때쯤 드라마를 하고. 요즘은 안 그렇다.

남들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산다고도 한다. 스스로 묻게 된다. 진짜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냐고. 지금 내가 하고 있고, 내가 된 건, 어릴 적 내가 바랐던 것들이다. 그러니깐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게 된다. 나도 영화를 잘 찍었다고 칭찬 받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있다. 그렇다고 그걸 바라고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영화를 언제까지 찍을지, 계속 할 수 있을지, 왜 계속 해야 하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구혜선의 영화가 만듦새가 모자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음악은 늘 좋았다. 뉘앙스를 앞서지도 않고, 늘 화면에 적합했다. 음악감독을 해보고 싶지는 않았나.

▶검색해보면 내가 만든 음원이 한 50개 정도 된다. 내가 만들었지만 내 이름으로 안 돼 있는 것들도 많다. 일본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끼의 '별별이별'은 내가 만들었지만 그의 음악으로 소개되더라.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에도 내 음원이 테마로 쓰인 적도 있고. 그래서 내 이름을 빼면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나보다란 생각은 든다. 그렇지만 내 영화라 내가 더 편하게 음악을 만들었지, 타인의 영화에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상업영화 연출 제안도 받았을테고, 자기 영화 규모를 더 키워서 만들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텐데.

▶상업영화 연출 제안도 받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고사했다. 사실 '복숭아나무'는 10억원 규모로 크게 규모를 키운 영화였다. 190개 정도 스크린에서 상영도 됐으니. 그 때 느꼈다. 이 판은 내가 끼어들 수가 없구나라는 걸 알았다. 내 이야기로 만들면 말이다. 그렇다고 독립영화냐고 하면 너무 고립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양성영화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거다 싶더라. 내 영화는 다영성영화다.

-'다우더'에는 과거영화보다 클로즈업이 많다. 자기주장이 강해졌단 뜻일텐데.

▶자기주장이 좀 강해졌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실험하지 않았다. 풀샷, 바스트샷, 클로즈업, 끝. 이렇게 갔다. 참신함 같은 것보단 있는 그대로 찍자고 했다. 그러면서 알았다. 있는 그대로 찍는 게 제일 어렵다는 걸. 이렇게 해도 안되면 안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동안 왜 다른 감독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았었나.

▶의도한 건 아니다. 드라마를 계속 했었고. 나도 존경하는 감독님들 영화를 하고 싶고, 그 현장을 경험해보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우로서 내 절박함을 아무에게나 알리고 싶진 않다. 절실함을 드러내야 성공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건 내 신념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십만원을 벌면 십만원으로 살자, 이런 마음이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연출하는 배우론 유지태가 있다. 두 사람은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겹치는 부분에선 이야기를 나눠 봤을 것 같은데.

▶주로 영화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유지태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반면 난 보헤미안 성향이 있다. 진짜로 원하는 건 자유다. 자유롭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기도 하고. 그 탓에 더 갇히는 것 같지 만서도. 누구는 나르시즘이라고도 한다. 그게 뭐가 나빠라고 생각한다. 자뻑으로 살면 얼마나 자유롭나. 비록 난 그렇지는 못하지만.

-다음 계획은 뭔가.

▶예전처럼 플랜을 짜놓진 않았다. 다만 20대 때 만든 음악들을 그냥 썩히는 게 너무 아까워서 그걸 정리하는 작업은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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