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독' 밀도가 아쉬운 고품격 19禁멜로①

[★리포트]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05.08 09:40 / 조회 : 7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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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감독의 '인간중독'은 인생에 한 번뿐인 꽃 같은 시절을 그렸지만 채 봉우리가 활짝 피지 못하고 떨어지는 이야기다.


7일 서울 왕십리CGV에서 '인간중독'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음란서생' '방자전'의 김대우 감독이 톱스타 송승헌과 함께 19금 멜로를 찍었으니 영화계 안팎의 사람들이 대거 몰렸다. 혀가 오고가는 포스터, 19금 예고편 등 노골적인 19금 마케팅을 펴왔던 '인간중독' 측은 이날 보도자료와 함께 복분자즙을 선사하며 야릇한 기대를 부풀렸다.

'인간중독'은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69년 전쟁영웅으로 안팎의 신임이 두터운 김진평 대령이 충성을 맹세하는 부하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송승헌이 전쟁의 트라우마에 고통 받는 김진평 대령으로, 조여정이 남편을 장군으로 만들려 애쓰는 부인으로, 온주완이 출세를 위해 뭐든 하는 부하 경우진 대위로, 신예 임지연이 경우진 대위의 아내 종가흔으로 출연했다.

김대우 감독은 부하 장군의 아내를 사랑해 부하를 사지로 보낸 다윗 왕의 이야기를 '인간중독'에 담으려 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영웅으로 떠받들지만 고독한 남자, 어느 날 마음에 들어온 부하의 아내를 탐해 못할 짓을 했다가 절절히 후회하는 남자. 다비드 조각상 같은 송승헌을 '인간중독' 주인공으로 택한 건 아마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남들에게 말 못할 전쟁의 상처로 약과 담배로 숨 막히는 일상을 버티는 전쟁영웅은 어느 날 불쑥 새소리와 함께 다가온 부하의 아내를 마음에 품는다. 귀걸이를 직접 귀에 달아 달라, 케이크를 먹여주니 좋더라며 줄듯 말듯 굳센 남자의 마음을 흔드는 종가흔의 행동에 김진평 대령은 어느 순간 빠져버린다. 아무것도 없어도 달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처럼 남자와 여자는 끝이 어떨지 몰라도 달려가고자 한다. 그리고 예정된 파국은 늘 그렇듯 느닷없이 닥쳐온다.


김대우 감독은 '인간중독' 배경을 한국이지만 베트남의 어딘가처럼 그렸다. 영화 '인도차이나' 등으로 익숙한 베트남의 눈부신 햇살, 60~70년대 전선의 어딘가에 있을법한 살롱, 군인들의 아낙네마저 하노이의 카페 테라스 같은 곳에서 모여 수다를 떤다. '인간중독' 시간은 그래서 멈춰져있다. 카메라는 전쟁의 상흔과 전쟁으로 얻은 혜택을 동시에 받고 있는 멈춰진 시간을 시종일관 엿본다. 개입 대신 엿본다. 밀회와 밀애, 정사마저 창틈으로, 문틈으로, 어딘가 너머로 엿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이해는 가지만 공감을 얻기가 힘들다.

'인간중독'은 치정극이다. 아내와 남편이 있는 남녀의 사랑이다. 불륜을 로맨스로 보이려면 이해보단 공감이 중요하다. 김진평 대령의 사랑은 느닷없다. 결론도 느닷없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사랑이 떠나는 순간을 다 담았지만 이해는 가되 공감은 적다. 밀도 탓이다. '인간중독'의 밀도는 영화 속 쏟아지는 햇살과 그림 같은 안개, 촉촉한 비보다 짙지 않다. 김진평의 고독과 김진평이 탐닉하는 이유, 기쁨과 후회 사이에서 고통 받는 건 설명이 되지만 절절하지 않다. 밀도 탓이다. 글로 배운 사랑 같다. 김대우 감독은 '인간중독'을 근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아름답게 그려냈지만 정작 밀도는 어색한 꽃꽂이 같이 담아냈다. 지나칠 정도로 남자의 이야기로 만든 탓이다.

다윗 왕의 이야기에서 부하의 아내는 밧세바라는 이름 외에 남은 게 없다. '인간중독'에 종가흔은 이야기 속 여인처럼 만들어졌다. 남자의 환상과 남자의 동경, 남자의 사랑 속에만 존재하는 여인마냥. 인간관계는 화학반응 같아 한번 작용이 일어나면 돌아갈 수 없다. '인간중독'은 남자 홀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려 하니 그래서 결말이 느닷없고 길다. 이 아름다운 영화에 치명적인 아쉬움이다.

'인간중독'의 베드신은 김대우 감독의 지난 영화들과 또 다르다. 여자의 몸을 아름답게 잡아내고 그래서 예술로 올려놨던 음란함과는 다르다. 카메라는 여인의 벌거벗은 몸을 잡아내는 전형적인 장면 외에는 남자의 몸에 집중한다. 여인의 엉덩이에 깔린 송승헌의 찰진 복근, 여인을 올라탄 송승헌의 거북이 등껍질 같은 등짝, 탄력 넘치는 엉덩이를 잡아낸다. 친절하게 송승헌의 엉덩이를 더듬는 장면도 나온다. 송승헌의 팬들에겐 서비스일지 모르지만 여성 관객도 여인의 몸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운 음란함에 더 반색하는 법이다. '인간중독' 베드신은 노골적이지만 음란하고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송승헌은 고뇌하는 조각상 역할을 잘 수행했다. 격렬한 정사를 벌여도 9대1 가르마가 변함없는 게 어색한 것 외에는 송승헌이 멜로에 장기가 뚜렷한 배우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인간중독'으로 데뷔한 신예 임지연은 오묘하다. 각도에 따라 순수하게도 천박하게도 예쁘게도 평범하게도 보인다. 이 오묘한 배우는 장래를 지켜봐야 할 듯하다.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아줌마 군단은 '인간중독'을 엿보는 관객이자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이자, 숨통이다.

'인간중독'은 아름답다. 길다. 느리다. 이 영화의 시간 밀도는 남성 관객과 여성 관객에게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이 밀도에 중독된다면 '인간중독'에 엄지손가락을 들 테고, 이 밀도가 지루해도 아름다움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는 14일 개봉. 132분. 청소년 관람불가.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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