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천만을 바라본 韓애니 감독의 이야기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4.03.06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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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포스터와 '사이비' 연상호 감독/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천만명을 동원했다. 한국 개봉 애니메이션 사상 첫 천만이며, 주제곡 '렛 잇 고' 열풍을 비롯해 각종 신드롬까지 낳고 있다. '겨울왕국'이 얼마를 벌었는지 손익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도 요란하다.

하지만 '겨울왕국'이 팡파레를 터트리고 있을 때, 비슷한 시기 개봉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가 얼마나 많은 관객을 모았는지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2월 20일 개봉한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3월 4일까지 4만 2649명이 관람했다.


'겨울왕국'이 요란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주요상영관과 주요시간대를 휩쓴 반면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개봉 첫날부터 200개가 안 되는 스크린에서 그나마 사람들이 쉽게 찾지 못하는 시간대에서 상영됐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실이다.

'겨울왕국'이 천만명을 동원한 다음다음날, 서울 남산에 있는 서울 애니메이션센터를 찾았다. 연상호 감독을 만났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연출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얼굴이라 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 연상호 감독은 이곳에서 신작 '서울역'을 준비하는 중이다. 서울 애니메이션센터에는 애니메이션 회사들에게 2년 기한으로 사무실을 적은 비용에 임대해준다. 실적이 있으면 그나마 1년 더 쓸 수 있게 해준다. 연상호 감독의 스튜디오 다다쇼는 이곳에서 2년 머물렀다. 내년이면 자리를 비워야 하는 처지다.

로보트 태권브이 동상 앞에서 만난 연상호 감독은 살짝 상기된 표정이었다. 마침 이날은 연상호 감독이 오후에 '서울역' 목소리 연기를 하는 류승룡, 심은경, 이준과 첫 미팅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연 감독은 "'사이비'가 개봉할 때도 영화 검색어 10위 안에 든 적이 없는데 '서울역'은 세 배우가 한다니 단숨에 8위가 되더라"고 말했다.


4만 감독과 천만 배우의 차이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 '사이비'는 상당한 반향을 얻었지만 4만 관객을 가까스로 동원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실이다.

커피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겨 연상호 감독에게 "'겨울왕국'은 봤냐"고 물었다. "안봤다"고 했다. 그럼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봤냐"고 했다. "봤다"고 했다. 겸연쩍었는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건 잘 안 본다"며 "'변호인'도 아직 안 봤다"고 했다. 연상호 감독은 '변호인'을 투자배급한 NEW에서 '사이비'를 투자배급 받았고, '서울역'도 NEW가 맡는다.

'겨울왕국'이 천만 관객을 동원했는데 한국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뭐 달라진 게 있는 것 같냐고 물었다. 연상호 감독은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의외다. 연상호 감독은 "투자배급사들을 만나면 '겨울왕국'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아무리 할리우드 작품이라고 해도 애니메이션이 천만이 가능하다는 걸 많이 이야기하더라"고 했다. 일단 투자배급사들이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연상호 감독은 "사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건 기현상이다. '슈렉' '쿵푸팬더' '드래곤 길들이기' 등을 내놓은 드림웍스나 잘 됐지, 디즈니나 픽사는 우리나라에서 크게 흥행이 잘 안되지 않았냐"고 했다. 그러면서 "픽사에 다니는 후배에게 왜 우리나라에선 흥행이 잘 안 되는 것 같냐고 했더니 아마도 (픽사와 디즈니는)한국에서 직접배급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한국 최대투자배급사인 CJ E&M이 배급한다. 배급력이 다르다는 뜻이다.

투자와 배급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극장에 내건 한국 애니메이션들이 둘 다 어렵기 때문이라는 뜻이리라. 만듦새가 문제가 아니고, 투자 배급이 문제냐고 물었다.

연상호 감독은 "근원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어려운 이야기로 들어갔다. 연 감독은 "투자배급사들이 한국영화는 돼도 한국 애니메이션은 안된다고 한다. 왜 안 되냐고 하면 그냥 안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투자배급사가 관심을 안 갖다보니 한국 애니메이션은 감독이 연출도 하고, 직원도 챙기고, 작화도 신경 쓰고, 프로듀서 역할도 하고, 돈도 끌어 모으고, 배급까지 매달려야 한다. 감독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는 기획부터 프로듀서와 감독, 투자배급사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야기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좋은 작품들이 탄생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무엇보다 프로듀서가 없다. 감독이 뭐든 걸 해야 하니 작품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결국은 돈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이런 상황에 내몰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킹' 나비효과가 크다. 90년대 중후반 '라이언킹'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 애니메이션 한편이 자동차 몇 만 대를 파는 효과를 낸다며 이곳저곳에서 침을 튀겼다. 당시 TV애니메이션은 '달려라 하니' '아기공룡 둘리' '슈퍼보드' 등 히트작이 이어지면서 분위기도 좋았다.

DJ정부는 야심차게 애니메이션 지원정책을 폈고, 그 결과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도 만들어졌고, 정부 지원금도 형성됐다. 대학에 애니메이션 학과도 우후죽순 생겼다.

눈 먼 돈들이 돌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애니메이션 제작발표회가 열리고, 돈을 투자받고, 그런 다음 제작자들이 사라지는 일이 빈발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재앙이라 불리는 '블루시걸'은 그런 상황에서 탄생했다.

그 뒤 한국 애니메이션은 안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좋은 인력은 하나 둘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떠나거나, 미국으로 갔거나, 미국과 일본 하청업체로 전락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지원금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투자배급사들은 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연상호 감독은 "'마당을 나온 암탉'이 성공한 건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프로듀서를 맡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좋은 프로듀서가 진두지휘를 하고, 감독은 연출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라는 소리다.

뽀통령이라는 불리는 '뽀로로'를 비롯해 '라바' '마법천자문' 등 TV 애니메이션은 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냐고 물었다. 연상호 감독은 성공했는지는 따져 봐야한다고 했다. 연 감독은 아동 애니메이션들이 캐릭터 상품 등 프렌차이즈 사업에 목을 매는 건 방영료가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방송사에서 30분에 방영료를 천만원을 주기 때문이란 것. 말도 안 되는 적은 요금을 주기 때문에 캐릭터 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그나마 캐릭터 사업도 방송사들과 나눠야 하기에 큰돈은 벌지 못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암담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 '서울역'은 잘 진행 되냐고 화제를 돌렸다. '서울역'은 서울역 지하에 좀비들이 창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해외배급사인 화인컷이 공동제작하고, 명필름 이은 대표도 투자에 참여했다. 외적인 환경은 좋다.

연상호 감독은 "운이 좋다. 프로듀서로 '화이'를 제작한 이동하PD가 참여한다. 배우 캐스팅이 좋아서 그런지 NEW도 일찌감치 마케팅팀을 꾸렸다. 화인컷에서 해외 판매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그가 문제점으로 꼽은 프로듀서와 투자배급이 어느 정도 발판이 마련됐다는 뜻이다. 연상호 감독은 "'겨울왕국'이 천만이 되서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제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라고 했다.

커피 전문점에서 나왔다. 연상호 감독은 배우들을 만나려 강남으로 간다고 했다. 그는 "뒷풀이를 이 동네 둘둘치킨에서 주로 해서 이번에도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주위에서 그래도 이곳보단 강남이 낫지 않겠냐고 해서"라며 쑥스러워했다.

봄은 찾아왔지만 아직 봄 갖지 않다. '겨울왕국'이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겨울을 깨쳤다면 그 바톤을 한국 애니메이션이 이을 수 있을지, 연상호 감독과 헤어지며 옷깃을 여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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