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프로스트가 엘사에게..부러우면 지는거다

안이슬 기자 / 입력 : 2014.02.04 18:04 / 조회 : 23010
  • 글자크기조절
image


애니메이션 '가디언즈'의 잭 프로스트와 '겨울왕국'의 엘사,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두 주인공의 운명은 극장가에서 만큼은 극명하게 달랐다.

지난 2012년 11월 개봉한 '가디언즈'가 107만 명을 모으는데 그친데 비해 '겨울왕국'은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애니메이션 시장의 양대산맥 드림웍스와 디즈니가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 무엇이 두 영화의 운명을 갈랐을까?

'가디언즈'는 드림웍스가 4년간 공을 들여 내놓은 야심작. 무려 1억 4500만 달러(한화 악 1563억 원)를 투입해 산타클로스와 부활절 토끼 버니, 이빨요정 투스, 잠의 요정 샌드맨, 결빙 능력을 가진 잭 프로스트가 악몽의 신 피치에 맞서는 과정을 담았다.

드림웍스에서 흔히 볼 수 없던 꽃미남 잭 프로스트를 내세운 '가디언즈'는 분명 성인 여성 관객에게도 소구할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실제로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집계에 따르면 '가디언즈'의 평점은 여성이 9.48점, 남성이 8.55점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개봉 후 잭 프로스트를 이용한 창작 일러스트 등 2차 창작물이 퍼진 것도 대부분 20대~30대 여성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캐릭터의 매력만으로 성인 관객을 모으기에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가 아쉬웠다. '가디언즈'는 권선징악의 전형적인 동화 구조를 그대로 차용했다. 슈렉이 멋진 왕자가 되는 대신 공주가 괴물이 되는 등 관객을 허를 찔렀던 드림웍스의 유쾌한 반전이 '가디언즈'에서는 발휘되지 않은 셈이다.

악에 맞서는 가디언들과 아이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악인 피치의 명확한 선악 구도는 어린이 관객의 이해를 높이는 데에는 적중했지만 극장의 주 관객층인 20대와 30대에게는 식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 동화의 정석을 취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됐던 것.

'겨울왕국'은 디즈니가 만든 공주의 법칙을 탈피했다. 공주와 왕자의 사랑을 중심에 놓는 대신 엘사와 안나 두 자매를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냈다. 뚜렷한 선악구조를 취하는 대신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자신의 능력이 두려워 왕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엘사와 그런 언니의 비밀을 모른 채 서운함을 느꼈던 안나가 겪는 사건들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만들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추구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도 '겨울왕국'에서는 새롭게 풀이해 관객에게 반전을 줬다. 왕자의 키스로 마법이 풀리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는 것만이 해피엔딩인 줄 알았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법칙을 완벽하게 비튼 셈. 강인하고 당찬 공주 안나와 카리스마 있는 여왕 엘사는 어떤 왕자보다 여성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같은 '겨울왕국'의 시도는 제대로 적중했다. 마케팅에서도 2030 시스터 시사회를 진행하고, 13세 이상 관객만 입장 가능한 키즈 프리 시사회를 여는 등 성인 관객을 타깃으로 한 '겨울왕국'은 애니메이션 관람 고정 층인 가족관객은 물론 성인 여성 관객까지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실제 '겨울왕국'의 예매 관객 비율은 30대 여성이 2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맥스무비 영화연구소 집계) 애니메이션은 보편적으로 아이가 있는 30대와 40대의 비율이 고르게 나타나지만 '겨울왕국'은 40대 여성 관객이 17%로 30대 여성층과 12%포인트의 큰 차이를 보였다. 20대 여성관객 비율도 디즈니의 전작 '라푼젤'이 7%에 머물렀던 데 비해 9%로 소폭 상승했다.

맥스무비는 이에 대해 "이는 10대 시절 디즈니 공주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이자 클래식 뮤지컬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향수와 호감이 강한 30대 여성 관객들이 이번 '겨울왕국' 흥행 돌풍의 핵"이라고 분석했다.

캐스팅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북미에서도 크리스 파인, 휴 잭맨, 주드 로, 알렉 볼드윈 등 쟁쟁한 스타들을 기용했던 '가디언즈'는 한국에서도 류승룡, 이제훈, 한혜진, 이종혁, 유해진을 더빙에 캐스팅했다. 이들은 영화의 홍보에도 함께하며 작품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했지만 스타 더빙에 거부감을 가지는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반감을 샀다.

'겨울왕국'은 스타 캐스팅 대신 역할의 이미지에 맞는 각국 뮤지컬 배우, 성우들을 직접 평가해 캐스팅을 진행했다. 총 25개국 언어로 부른 'Let It Go'를 한곡으로 편집한 영상만 보아도 디즈니가 더빙 배우 캐스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한국 버전에서는 주인공 엘사의 목소리는 성우 소연이, 엘사의 노래는 뮤지컬 배우 박혜나가 각각 담당했고, 안나를 연기한 성우 박지윤의 경우 노래까지 함께 담당하는 등 각 인물과 더빙 담당자들의 특성에 맞게 캐스팅을 조정했다. 국내 더빙판이 호응을 얻으며 뮤지컬 배우 박혜나와 성우 박지윤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스타가 작품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오히려 스타를 만든 셈이다.

물론 흥행이 작품의 모든 미덕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가족 영화가 많지 않은 극장가에서 아동 관객을 위한 애니메이션은 환영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겨울왕국'의 폭발적 흥행은 성인 관객들도 볼만한 애니메이션을 기다려왔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다.

부럽기만 하면 지는 것이고 이를 통해 배우면 이기는 발판이 된다. 디즈니가 한 번 뒤엎은 애니메이션의 공식을 드림웍스가 어떻게 비틀지, 다시 한 번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이슬 기자 drunken07@mt.co.kr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