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칼럼]오디오와 인생⑬

이광수 / 입력 : 2014.01.0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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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50 /사진제공=메타뮤직사운드


앰프를 만들려다 보니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섀시와 트랜스가 들어가는 통, 판넬, 도장, 인쇄, 노브, 사용되는 기타 모든 부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모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만들 수밖에 없다.

80년대 우리의 작업장들은 시설이나 작업 조건이 매우 열악했었다. 또 일을 하는 기술자들의 마인드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서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로 조악하게 만들어 놓곤 했었다.


스프레이 하며 옆에서는 번개탄을 가지고 연탄에 불을 지피는 도장 공장, 선반 가공을 잘 해놓고 툭툭 던져서 모두 불량을 만들어 놓는 선반 기술자들의 거친 작업, 망발이 굵은 체에 물건을 가득 넣고 흔들어대는 도금 공장, 시간을 무한정 끌어도 해결이 안 되는 금형공장, 알루미늄 착색을 전혀 다른 색으로 해 놓고 그 색이 맞다며 우기고 싸우기가 다반사였으며 찾아갈 수 없는 물건 만들어 놓고 다 되었는데 왜 안 가져 가냐며 돈 안준다고 소문내고... 하여간 시설이 좋은 공장과 각 분야에 일 잘하는 사람 만나기가 참 어려웠던 시기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품은 생산되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시장에 풀어졌다. 처음에는 적은 수량으로 시작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해 나는 여러가지 제품을 계획하고 만들기 시작해 1983년부터 87년까지 lee9을 비롯해서 sl5t, sl5m, 220, 220w, 212, 66c, 66cb, 6600, 2a3, 402, 502, 우륵50까지 13개의 제품이 개발되어 시장에 풀려 나갔다.

이 제품들이 생산될 때 우리나라 가정의 들어오는 전압이 100v를 사용할 때여서 모두 100v의 전압을 사용하는 제품들이다.


이 제품들이 생산될 때 겪은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손님이 물건을 구입해 내가 가져다주기로 하고, 세팅도 해줄 겸 해서 그 집에 앰프를 가지고 갔다. 현관에 들어서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앰프 구입하는 문제로 부부가 다투고 있는 것이었다. 어색한 시간이 잠시 지난 후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앰프를 돈으로 교환해 주겠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음에 사라고 하며 그 집에서 나왔다. 후에 그에게서 고맙다고 하는 전화를 받았다.

1984년에 앰프 자작 실기 모임을 유한대학교에서 가졌었다. 30여명의 인원이 참가해 앰프를 만들었다. 이틀을 예정하고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작을 마쳤지만 두 사람은 5일이 지나도 끝이 안 났었다. 배선을 엮어서 납땜을 하는데, 그야말로 한 시간은 걸리는 것 같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노래할 때 음을 전혀 못잡는 음치와 같다고...

많은 사람들이 직접 해보고 또 자기가 만든 앰프 소리가 나올 때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처음에 광석 라디오 만들 때와 5구 수퍼 라디오 만들 때 생각이 났다. 하긴 평생 싫증 없이 이 일을 해온 나 같은 사람도 있긴 하지만...

머지않아 좋은 시기를 택해서 이런 공동 제작 모임을 다시 한 번 해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현대 하이엔드의 고급 스피커를 구동시킬 수 있는 음질 좋은 강력한 앰프를 가지고 말이다.

우륵 50을 만들 때 일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찾아와서 자기가 출력 트랜스를 감는데 써 달라는 것이다. 나는 먼저 샘플을 가져와서 소리를 내 보자며, 좋으면 쓰겠다고 말했다. 며칠 후 그가 트랜스를 가져왔다 시험을 하니 1, 2차간의 턴 비가 맞지를 않았다. 그래서 내가 요구하는 비율로 수정해서 만들어 오면 받겠다고 했다. 보름이나 지난 후에 트랜스 두 조를 들고 와서 받았다. 그리고 한 달 가까이 되어 두 조를 더 가져와서 받았다. 이것을 들고 오면서 무척 힘들어 하며 가져왔다. 114코아로 만들어진 출력 트랜스 무게가 만만치 않게 무거운데 전철을 타고 들고 온 것이다.

내가 그에게 제안하기를 물건을 받는 조건으로 차를 사 줄테니 타고 다니면서 일하면 어떻겠냐고 하니 면허가 없어 못 탄다고 한다. 그 후 한 조를 더 가지고 와서, 나는 제품이 막 나가야 하는데 공급이 이렇게 안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트랜스 감는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 내가 트랜스 감는 기계를 사 주겠다고 하자, 그는 자기가 만들어 쓸 테니 돈으로 달라고 해서 나는 그에게서 물건 받기를 포기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후, 일이 늘어나고 규모가 커지다 보니 공장이 적어서 큰 장소가 필요해 100여평 장소로 이전하고 직원도 20명으로 늘렸다. 그 때쯤 판매 증가에 따른 수요를 생각해 자동 권선기 두 대를 들이고 함침기와 트랜스를 굽는 전기로와 자동 피치로를 3000만원 가까이 들여 시설을 갖춰놓고 모든 출력 트랜스는 자체생산으로 해결하여 앰프를 만들게 되었다.

/이광수 메타뮤직사운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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