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칼럼]오디오와 인생⑫

이광수 / 입력 : 2014.01.0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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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하니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다. 우선 필요한 자재들과 부품들을 구입하고 처음 모델을 계획하고 바로 착수했다. 처음 모델은 연구소를 차리기 전에 파워앰프를 만들어 준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 이미 설계되었던 것을 하기로 하고 시작했다.

이 앰프는 조금 심플하게 설계 되었으나 변경해서 하기로 마음먹고 볼륨, 셀렉타, 고음, 저음, 밸런스 그리고 고역-저역 필터와 테프 인-아웃이 들어간 비교적 조정 부위가 많은 앰프로 설계가 변경 되었다. 이러한 앰프는 신호 자체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어렵고 또한 제작하기도 쉽지가 않다.


나는 이연구소 첫 제품으로 나오는 앰프이기 때문에 처음 설계와 달리 조금 오버해서 설계를 하고 섀시도 원래 계획보다 좀 더 상향해서 설계해 제작에 들어갔는데, 사업 초기이고 의욕도 많아 금형, 프레스, A/I 가공, 인쇄, 도장 공장 등을 돌아다니며 3개월 만에 제품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몇 분에게 앰프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판매도 확실치 않은 그 제품(Model lee9 프리앰프)에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였는지 모른다. 그것도 첫 개발품에...그 프리 앰프는 전체가 다 금형으로 섀시를 만들었고, 노브가 들어간 앞 패널도 알루미늄 금형 압출물로 가공을 한 프리 앰프였다. 그리고 조정 기능이 많았기 때문에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금형이 다섯 개나 들어갔으나, 만들어 판매된 앰프는 고작 열 서너 대에 불과했으니 손해 본 것을 돈으로 계산하면 O천만원은 될 것이다.

요즈음은 가공 기술과 장비가 좋아 며칠이면 완벽한 샘플을 만들어 볼 수도 있지만, 그 때는 섀시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열악한 때여서 어려움이 많이 따랐다. 나는 이 앰프를 만들기 위해서 미국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하여 커플링 콘덴서와 AB저항, 500k-2련 볼륨 그리고 소켓 등을 들여왔는데, 그 때 구입한 부품 중 일부는 아직도 남아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사업을 할 계획이었으나 첫 모델부터 큰 돈이 들어가고 실패하고 나니 조금 서둘렀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만들 때는 직원 없이 나 혼자 일을 하였는데 제작 시간이 매우 많이 걸렸다. 전에는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화와 찾아오는 손님들로 인해서 시간을 낼 수가 없었고, 후에 들어온 기사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안 되어 결국 이 앰프 만들기를 포기해야했다. 그리고 만들어 놓은 섀시들과 알루미늄 압출물들도 다 폐기해 버렸다.

그러나 이 프리앰프는 공식적으로 이름을 걸고 나온 진공관 앰프 중에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앰프로 기록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PA 앰프나 영화관에서 사용하는 토키 앰프를 제작하는 기술자들이 더러 있었고, PA 앰프는 제작해서 판매하는 회사도 있긴 하였으나 모두 영업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들이었으며 음악을 듣기 위한 오디오 앰프는 그 때까지는 없었다.

일부 기술자들 중에서 드물게 음악과 오디오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서 UX45관이나 3극관의 대형관인 UX50 그리고 2A3 같은 출력관을 가지고 만드는 자작 수퍼 마니아들이 있기도 하였으나 그들도 직업으로 연관시킨 분들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아는 분 중에 박한준이란 분이 계셨다. KBS 방송국에 근무하셨던 분으로 50 출력관을 가지고 Loftin White 회로를 써서 음악을 들으셨는데, 이분은 50 출력관 마니아다. 50관을 가지고 각기 다른 회로로 앰프를 만들어 여러 대를 가지고 비교해 가며 소리를 듣곤 하셨는데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언제나 부품들과 트랜스 종류들을 옆에 끼고 다니셨고 기술자로는 드물게 오케스트라 연주 음악회를 좋아 하셔서 늘 연주회에 참석해 음악을 즐기셨다. 이 분이야말로 오디오로 실 연주 소리를 따라 잡으려고 평생을 씨름한 분이다.

또 지금도 살아계신 백경린 선배님은 AC 송전 계통의 권위자로 3극 출력관인 2A3 파로서 이론과 기술이 출중하시다. 그리고 한국 가곡에 조예가 깊으셔서 작사와 작곡가 및 성악가들의 출신 학교와 목소리 성향 등 전문가나 음악평론가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도 하다. 이 분은 요즈음도 내 사무실에 자주 오셔서 오디오와 음악(특히 가곡) 그리고 기술적 담론을 서로 주고 받으며 지낸다.

그리고 한국 반도체 산업의 대부이신 강기동 박사님도 진공관부터 시작한 분으로 이론과 실제가 탁월한 분이신데, 강 박사님은 반도체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기초를 쌓고 이끌어 오신 분으로 우리나라 반도체와 칩 분야에 지대한 공을 세우신 분이다. 지금도 진공관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분으로 현제 미국에 살고 계시는데 한국에 다니러 오시면 찾아 뵐 계획이다.

나는 이 사업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 위 선배들의 기술적 지식과 음악적 이해 그리고 한국 사회를 이끌어 오신 선배들을 존경하며 이 땅에 그러한 기반을 닦아주심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내가 이 프리앰프를 제작한 지도 1983년의 일이었으니 벌써 31년의 세월이 지나갔고 만들 때는 고생스럽게 했던 것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소중한 것들이라고 느껴진다.

/이광수 메타뮤직사운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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