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칼럼]오디오와 인생⑧

이광수 / 입력 : 2013.12.06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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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소리가 아닌 음악으로 듣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우리 집에 대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1950년 6.25 전쟁 중에 불에 타 없어졌었는데, 내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그 자리에다 새로 집을 지으셨다.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ㄷ'자 형태의 이 집은 새 목재로 지은 집이 아니었다. 옛날에 지었던 고 가옥을 사 가지고 허물어 기둥, 중방, 석가래 그리고 쪽마루까지 다 가지고 와서 새 터에다 이전 집과 똑같이 지은 집이었다.

여유롭고 정연하게 기와지붕을 받치고 있는 서까래며 큼직한 돌들 위에 세워진 기둥들 그리고 안방과 건너방 사이에 깔려진 쪽마루와 마루 위 천정을 바치고 있는 대들보 등 모든 목재료들이 처음에 지었던 것과 똑같이 자리만 옮겨서 지어졌다. 또 기와가 올려진 대문과, 열고 닫을 때마다 삐걱대며 소리가 나는 대문까지도 옮겨진 집이었다. 사랑채까지 아홉칸인 이 집은 허리까지 돌을 쌓아 벽을 하고 중방 위는 하얀 회를 발라서 마무리한 집이었는데 지금 생각 해보면 아버님께서 많은 공을 들여서 지은 집이라고 생각된다.


어머니께서는 이 집을 지을 때 너무 고생스러워서 아버님에게 불평을 많이 했다고 하셨다. 8남매 자녀들을 키우면서 안팎의 일들을 다 하셔야 했고 더구나 집을 짓고 있을 때는 동생을 임신하고 있는 중이셨다.

그런 집이 내가 음악을 들으면서 불만이 자꾸 쌓여가기 시작하였다. 양쪽의 스피커와 몇 종류의 기계들과 턴테이블 그리고 책상과 이불장 등 정말 공간이 적어서 불편하고 더욱이 음악을 양껏 듣지 못하는 것이 항상 불만이었다. 나는 어머니께 이런 사정을 말씀 드리고 두 칸을 터서 큰 방을 만들겠노라고 말씀 드렸다. 무엇이든지 나를 이겨보지 못하신 어머니는 이번에도 또 나에게 지셨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형님과 누이는 결혼을 해 나가셨고 동생 둘은 군에 복무 중이었으므로 방은 넉넉한 편이었다. 나는 즉시 목수에게 찾아가 상의를 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목수는 그 일 잘못 하면 지붕이 무너져 내린다고 하면서 하지 말라고 나에게 말했다. '왜 저걸 못할까' 나는 천정을 쳐다 보고 구조를 살펴보고...그렇게 하면 된다고 하는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바로 착수했다. 제재소에 가서 튼튼한 나무를 사고 사람을 2명 구하여 작업을 시작했다. 방을 하나로 만들려면 중간 벽을 허물고 가운데 세워진 기둥을 없애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는데 이것 때문에 목수가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머릿속에 그려진 계획대로 작업을 시작했다. 천정을 다 제거하고 작기 두 대를 이용해 기둥에 걸쳐진 대들보를 양쪽에서 들어 올리고 기둥은 버팀목만큼 남기고 잘라냈다. 그리고 서까래가 올려진 양쪽 기둥에다 새로 사온 나무를 겹쳐대고, 그 위에 새로 목을 올려서 버팀목을 가운데 잘 맞추고 조심스럽게 작기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천정을 하고 방바닥 까지 다 마쳤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동네 어른들이 모두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으나 나는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 일이 끝난 후에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장가가려고 방을 꾸몄냐고 물어 보면서 좋은 색시 있으니 장가들라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말했단다.

이렇게 방이 다 만들어졌다. 오디오는 한 쪽 벽면에, 내가 만든 TV는 맞은편 이불장 옆에, 그리고 공구들과 부품들은 책상 밑에 정리하고 커튼을 만들어 창문마다 쳐 놓았다. 무척 긴 역사가 지나간 것 같았다. 아직도 마르지 않은 풀 냄새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했고 더 넓어진 방은 잘 정돈되어 마음도 안정된 기분이다. 무엇보다 오디오가 나에게 들려줄 선물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고 조금은 흥분이 되었다.

그런데 그 설렘이 단번에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에게 군에 입대하라는 입영 통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친구들이 다 군에 갈 때 나는 통지서가 안와서 알아 봤더니 보충역으로 편입돼 있다고 하면서 입영이 안된다고 하는 답을 들었었다. 그 후 5년이나 지나서 입영 통지가 날아온 것이다. 그 해 겨울 12월26일 남들은 시즌에 젖어 있을 때 나는 영등포역에서 출발하는 논산행 열차에 몸을 실고 연무대로 향했다.

/이광수 메타뮤직사운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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