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칼럼]오디오와 인생⑦

이광수 / 입력 : 2013.11.2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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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프를 만든 이후 취미가 음악이 되었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일이 참 번거로웠다.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올리고 곡이 끝나면 또 닦아서 올려야 되고, 레코드 앞에 꼭 지키고 있어야 음악을 들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렇게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물론 릴테이프(reel tape) 같은 녹음기나 카세트 테이프가 있긴 했지만, 그것도 역시 번거롭기는 마찬가지다. 음악을 듣는 즐거움에 그 같은 일도 즐거움으로 했다. 그러다가 1978년에 KBS FM클래식 방송이 시작되어 그 후로는 KBS 방송을 많이 들었다. 음질도 뛰어나고 프로그램도 좋아 항상 켜 놓고 들었다.

FM 방송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하고 싶다. KBS 93.1 FM 방송이 수도권에 잘 안 잡히는 곳이 있다. 심지어는 서울 시내에도 수신이 잘 안 잡히는 지역이 있다. 나오기는 해도 음이 흐려지고 잡음이 많이 섞여 나온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더 심하다. 전파는 햇빛의 일조권과 같아서 전파 수신도 일조권과 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다. 만일 어느 지역의 주민이 방송 전파를 수신하는데 피해를 받는다면 정부 또는 관계기관이 해결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특정 전파나 업무용과 달리 방송 전파 수신은 국민(주민)이 마땅히 가질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관계 기관은 중계소를 세워서라도 주민들의 전파 권리를 해결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즈음부터 나는 사업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배운 기술로 사업을 펼칠 마땅한 아이디어도 없는 것 같았다. 얼마간을 고민 하다가 TV대리점을 하기로 계획하고 장소를 물색한 뒤 곧바로 준비하고 대한전선 대리점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혼자서 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직원을 3명 채용했다. 그리고 차 2대를 구입했다. 차 두 대에 TV, 냉장고, 선풍기 가득 싣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팔았다. 당시 대한전선 디-제로 TV가 한창 인기가 있었다. 1만~3만원을 계약금으로 한 월부판매로 많이 팔았다. 그리고 냉장고며 선풍기, 다리미 등 하여간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매출이 참 많았다.

그렇게 1년여가 지나갔다. 내가 느슨하게 한 탓일까 위기가 닥쳐왔다. 사고 카드가 말할 수 없이 불어났던 것이다. 그 때는 신용사회의 기반이 취약한 때라 구매자가 마음만 가지면 언제든지 자취를 감춰 버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사 와서 주민등록을 하지 않고 살아도 큰 제재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사를 가 버리면 찾기가 참 어려웠다. 영업을 하는 동안 중간중간 사라진 사람이 있었지만, 그래도 물건이 잘 나가고 운영은 되기에 영업은 계속했다. 급기야 나는 도망간 사람들을 수배하는 직원까지 두면서 찾았지만 크게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그간 영업이익은 자꾸만 악화되어가고 의욕이 전과 같지 않아 3년 만에 사업을 접고 말았다.

사업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거래처와 정산문제 세금문제 등등을 정리하고, 3년간 해 오던 사업을 다 정리했다. 조금 아쉬워서 차 두 대는 얼마간 더 가지고 있었다. 서울 8가1493, 서울 7나2178, 지금까지도 이 차들 번호를 기억하고 있다.


이 일 이후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사람들이 경험을 했다고 하는 말들을 자주하는데, 그제서야 그 말이 많은 사람들을 겪어 보았다는 말과도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간 3년을 돌아보고 여러 가지 교훈을 얻었다. 그 해 겨울엔 나의 마음이 매우 평화로웠고, 조용하고 여유로운 시간들이 다시 찾아왔다.

/이광수 메타뮤직사운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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