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칼럼]오디오와 인생④

이광수 / 입력 : 2013.11.0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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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청계천! 어떤 직업 어떤 일을 하던지 청계천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표교에서 청계천 8가 숭인동까지 각양각색의 직종과 상품이 언제나 넘쳐 나는 곳. 정말 대단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외국의 많은 나라들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다녀본 나라들 중에 청계천과 같은 곳은 구경을 못했다.

서울 시민을 두 편으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한다면 청계천을 중심으로 해서 편을 갈라 줄다리기 시합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북쪽에서도 남쪽에서도 중심인 것 같다. 중앙인데다 필요한 물건들이 거기 가면 다 있으니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6.25 전쟁이 끝나고 일본 사람들이 청계천에 와서 물건(각종 장비와 부품과 특별한 물건들)을 많이들 구해 가지고 갔다. 특히 트랜스 종류를 많이 가져갔다. 일본에는 없어도 우리나라 청계천에는 무엇이든 다 있다고 하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일본인들은 청계천에서 많은 것들을 사 갔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전쟁 중일 때도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나라에 와서 물건을 찾아 가져간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 공부를 하면서 청계천을 알았고 안 이후에는 이곳을 자주 갔다. 살 것이 없어도 그냥 갔다. 그리고 구경만 했다. 구옥(한옥)의 집들을 전부 터 가지고 가게를 만들어 장사를 하는데 갖가지 부품과 조립한 전축들이 즐비하고 신기한 것들이 너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얼마 후부터 나는 물건들을 사기 시작했다. 키트(kit)를 사서 5구 super 라디오를 만들었고 스피커도 사고 진공관도 사고 하여간 내가 필요한 건 다 구입해서 만들어 보고 또 해 보았다. 본인이 앞에서 5구 라디오 그리고 TV와 앰프 만드는 것에 대하여 글을 썼었는데 이렇게 청계천을 오가며 만들었다.


아세아 상가가 지어지기 전 그 안에 삼덕전파사라고 하는 곳이 있었다. 이 가게는 외제 오디오만 전문으로 파는 곳이었는데 나는 청계천에 가면 이곳을 자주 구경 갔다. goodman axiom300 스피커를 쌓아놓고 파는 것들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한번은 부속을 사 가지고 오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 둘이서 무슨 물건인지 보자고 한다. 보여 주었더니 군수품이라고 빼앗는다. 사실 부속품은 군용이 아니면 쓸 것이 없었다. 진공관, 콘덴서, 저항, 트랜스, 그 시절 군용이 아니고 사용할 만한 것들이 어디 있었나. 여러 번 빼앗겼다. 참 화가 나는 것은 가게에 있는 것은 압수를 안하고 손님이 사 가지고 나오면 군수품이라고 빼앗는다.

이곳을 자주 오다보니 어느 가게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알고, 자주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가게들 마다 종이에 지저분한 중고 진공관을 담아놓고 있으면, 손님들은 골라서 사가곤 했다. 통신 장비에서 나온 저항, 콘덴서, 트랜스 그리고 감추어놓고 파는 것들... 주로 새 부품과 진공관들이다.

한 번은 가게 뒤에 부속이 있으니 보라고 한다. 진공관이 여러 포대에 가득가득 담겨져 있다. 당시에는 이 가게 저 가게 진공관들이 많아 욕심도 안 생겼다.

진공관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줄 더 써야겠다.

아주 가까운 선배님께서 일 때문에 문산 선유리에 갔었더란다.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어떤 사람이 2A3 진공관을 잔뜩 쌓아놓고 망치로 깨고 있었단다. 그래서 왜 다 깨고 있냐고 물으니까 4pin 소켓에 꽂을 핀이 필요해서 깨고 있단다. 선배님이 강전 계통의 일을 하시고 2A3 진공관도 잘 알고 아깝지만 워낙 흔하던 때라 그냥 보고 왔더란다. 지금 2A3의 값이 20만원 이상하니 수억은 날렸겠다.

어느새 국산 전자 부품들과 자재들이 생산되기 시작했고 60년대 지어진 아세아 상가는 이러한 물건들을 공급하는 메카가 되어 있었다. 각종 부품과 자재 그리고 공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상가는 이러한 사람들로 인해서 언제나 넘쳐 있다. 우리나라의 전자 산업이 이곳 아세아 상가를 중심으로 해서 발전해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옆에는 세운상가가 있다. 각종 완제품을 취급하는 장소로 60년대부터 오디오 애호가들이 끊이지 않고 드나드는 곳이다. 종로에서부터 을지로까지 가운데 통로를 두고 양쪽으로 모두 오디오 가게였다. 그것도 모자라 2층과 3층에서, 상가 옆 골목에서 수백 군데의 가게들이 오디오와 오디오 관련된 장사들을 하고 있다. 특히 세운상가 안에 있는 오디오 가게는 세계의 유수한 메이커의 제품들이 다 모인 오디오의 천국이다. 오디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음악을 즐기는 분들이 특히 좋아하는 곳이었다.

나는 청계천의 영향을 참 많이 받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청계천에 감사한다.

/메타뮤직사운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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