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욱과 낚시의 공통점..기다리면 뜬다?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3.10.24 13:58 / 조회 : 1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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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닥터'의 주상욱 /사진=KBS


지난해 여름 사석에서 배우 주상욱과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화제의 중심은 단연 '낚시'였다. 그것도 바다낚시, 베스낚시도 아닌 오로지 민물 붕어낚시 얘기였다. 10여년을 동고동락한 매니저가 자신을 위해 낚시용 1인 텐트를 사줬다는 얘기, 낚시고수 이덕화와 동반 출조 때 있었던 충격적 비화, 역시 낚시는 손맛이 아니라 눈맛이라는 얘기 등등. 한때 낚시광이었던 기자 역시 "눈송이 펑펑 맞으며 올라오는 찌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가뭄 때는 붕어가 저수지 물을 먹으니까, 홍수 때는 붕어 때문에 저수지 물이 넘치니까 낚시를 해야 한다"며 거들었다. 그리고 꼭 한 번 낚시 같이 가자고 서로 의기투합했더랬다.

사실 당시 그는 요즘처럼 핫한 배우가 아니었다. 드라마에서 조연급 '실장' 역할을 하도 오래 해서 '실장님 전문배우'라는 칭호가 붙었고, 이후 '본부장' 역할이 들어오면 그게 기사가 될 정도였다. 몇번 만나지도 않은 기자에게 스스럼없이 그것도 재미있게(그는 사석에서 진짜 구수하게 말을 잘한다) 자신의 낚시 편력기를 들려주는 그가 인간적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들었다. '분칠해야 하는 배우가 너무 인간적인 것 아닌가' 아니면 '이렇게 한가하게 낚시 즐기다가 어느새 정상에 설까' 등등. 낚시 좋아하는 사람 치고 악한 사람 없다고? 이건 낚시폐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즐겨 쓰는 자기변명일 뿐이다. 더욱이 그가 발 딛고 있는 연예계는 낚시 감성과는 전혀 다른 곳 아닌가.

하지만 2013년 주상욱은 자타공인 최고의 배우가 됐다. 이게 다 최근 종영한 의학드라마 '굿닥터' 덕분이다. '나쁜남자' 스타일의 깐깐한 외과교수이자 동시에 속정 많고 과거사는 더욱 기막힌 그런 캐릭터. 해서, 지금의 그는, 전국의 수많은 초등학생들까지 '김도한 교수'라 부르며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는 인기 절정의 CF스타가 됐다.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몇 개 상은 이미 예약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더욱이 오는 30일 주연을 맡은 스릴러 영화 '응징자'의 개봉까지 앞뒀으니 주상욱은 그야말로 요즘 대세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그는 과연 운이 좋았던 것일까. 낚시꾼의 헛되고 집요한 자기 주술처럼, '기다리니 (찌가) 뜬' 것뿐일까.

물론 낚시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초저녁 해질무렵부터 차가운 물과 따뜻한 물이 뒤집어지는 오후 9시 무렵, 별들이 수면에 반짝거리기 시작하는 오후 11시 무렵, "에이 오늘은 다 틀렸다"며 인내심 없는 다른 낚시꾼들이 잠이 들 새벽 1시 무렵, 그리고 최고의 피크라는 동틀 무렵까지 낚시꾼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러나 이 기다림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쉼없는 투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 특히 깨끗하고 씨알 좋은 붕어를 만나기 위해서는 하루 밤에도 수백번의 밑밥질과 수천번의 눈길을 줘야 한다. 다 때려치우고 잠을 자고 싶은 본능을 이겨야 하고, 다른 포인트로 낚시대를 옮기고 싶은 얄팍한 충동을 견뎌야 한다. 대충 떡밥 던져놓고 담배 피고 술 마시고 휴대폰 통화로 고성방가해봐야 돌아오는 것은 결국 '꽝'이다.

기자가 아는 주상욱은 오랜 무명-조연 시절 스스로를 언제나 다독이고 스스로를 아끼며 스스로에 아낌없이 투자해온 기다림의 배우다. 그는 1999년 EBS 청소년드라마 '내일'과 '네 꿈을 펼쳐라'의 주인공으로 데뷔했지만 같은 시기 방송된 KBS '학교'에 가렸다. 이후 인기사극 '다모'에 캐스팅돼 전기를 마련하는가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군입대 영장으로 출연이 무산됐다.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올인'에 이병헌 아역으로 캐스팅됐다가 결국 다른 이에게 배역을 넘겨준 것도 이 무렵이다. 그리고는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보냈다. 보통의 배우였으면 이 정도에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연기인생을 스스로 끝냈을 터.

하지만 주상욱은 주상욱이었다. 제대후에도 수많은 영화의 단역과 조연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조연으로서 그나마 대중이 기억하는 것은 손예진 김주혁 주연의 2008년작 '아내가 결혼했다' 정도다) 데뷔 11년만에 마침내 지상파 드라마 주연 자리에 올랐다. 그게 바로 지난 2010년 이범수 박진희와 호흡을 맞춰 '조민우' 캐릭터를 만방에 알린 SBS 드라마 '자이언트'였다. 기세를 잡은 주상욱은 이후 케이블 드라마 '특수사건 전담반 TEN'으로 완전히 입지를 굳혔고 '굿닥터'로 마침내 최고 배우 반열에 올랐다. 영화쪽에서는 '응징자'를 비롯해 하지원 강예원과 공동 주연한 영화 '조선미녀삼총사' 개봉도 줄줄이 앞뒀다.

경망과 호들갑은 낚시의 최대 적이다. 초반에 찌가 움찔한다고 낚아채봐야 백이면 백 피라미이고, 초반에 월척 잡았다고 웃고 떠들면 그날 남는 것은 새까만 정적 뿐이다. 반대로 초반에 찌가 말뚝이라고 해서 다른쪽 포인트로 냉큼 옮기다가는 발에 진흙만 묻힌다. 그렇다고 정성과 혼신, 자기투자 없이 허송세월 찌만 바라보다가는 결국 상하는 건 자기 몸, 축나는 건 시간 뿐. 요즘 쭉쭉 올라가는 찌 보는 눈맛에 신나할 배우 주상욱에게서 새삼 느끼는 낚시와 연예계, 그 기막힌 공통점 몇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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