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에 뒤늦은 사과..김조광수 결혼에 부쳐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3.05.1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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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김조광수/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꼭 10년 전 일이다. 2003년 9월, 추석을 앞두고 제주도에서 SBS 드라마 '완전한 사랑' 촬영현장 공개가 있었다. 김수현 작가 드라마였지만 단연 화제는 홍석천이었다. 홍석천은 커밍아웃을 당한 뒤 3년여 동안 방송활동을 못하다가 '완전한 사랑'으로 복귀했다.

그랬다. 홍석천은 커밍아웃을 한 게 아니라 당했다. 그가 외국에 출장을 갔을 때 한 매체에서 홍석천이 게이라고 보도했다. 그 뒤 홍석천은 커밍아웃을 했지만 방송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당시는 동성애자란 사실이 드러나면 방송활동을 못할 정도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강한 때였다.


제주도에서 만난 홍석천은 잔뜩 흥분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번 다시 연기활동을 못할 줄 알았는데 대작가 김수현의 드라마로 복귀하게 됐으니깐. 홍석천은 저녁자리에서 술이 몇 순배 돌아도 자리를 떠날 생각을 안했다. 설레고 기쁜 모습이 역력했다.

취재진과 술을 마시며 "굳이 따지자면 이 자리에 누가 내 이상형"이라는 소리까지 할 정도로 화기애애했다. 취재진도 그의 복귀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술잔을 주고받았다.

사단은 그 뒤에 벌어졌다. 홍석천이 "얼마 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했는데 '한국 연예계에 당신 말고도 동성애자가 있는 데 왜 당신만 커밍아웃을 했는가'란 질문을 받고 '나 외에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했다. 또 "미혼남성 연예인뿐만 아니라 유부남 중에도 동성애자가 있지만 그들이 커밍아웃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순간 술자리가 얼어붙었다. 홍석천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5명 취재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서로를 쳐다봤다. 머릿속에 '센 기삿거리다"라는 생각과 "어쩌려고 이런 말을 이 자리에서 하나"란 생각이 바삐 오갔다. 술자리가 끝나고 취재진 사이에서 여러 말들이 오갔다. "혼자만 들었으면 모르겠는데 다 함께 들었으니 (기사를)안 쓸 수 없다"란 말과 "그래도 힘들게 복귀했는데 또 힘들게 해야 하냐"는 말이 오갔다.

결국 이틀 뒤 회사로 돌아가서 쓰기로 뜻을 모았다. 죄수의 딜레마였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나 혼자 안 쓰면 물 먹는 건 나일뿐이란 생각이었다. 한 매체에서 당장 다음날 기사를 쓰라는 데스크의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가 다른 매체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시간을 맞출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비겁했다. 홍석천은 당시 연예계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동성애자가 있다고 했다. 그건 게이가 다를 뿐이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속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기사가 나가기 전 홍석천에게 전화를 해 양해를 구했다. 죄책감을 덜기 위한 자기기만이었다. 홍석천은 당황했고, 기사가 나간 뒤 크게 곤혹스러워했다. 자칫 복귀가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내몰렸다. 홍석천은 이후 언론에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사례가 돼 언론인재단에서 수습기자들 상대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 뒤로 홍석천과 만나 화해도 하고, 이제는 편하게 지내는 관계가 됐지만 아직 공개적으로 사과는 못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해본다. 다시 그런 상황을 맞게 되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영화사 청년필름 대표이자 감독인 김조광수가 동성연인과 결혼을 발표했다. 15일 연인과 기자회견을 열고 9월쯤 결혼할 생각이라는 계획 등을 밝힐 계획이다. 2007년 커밍아웃한 김조광수 대표는 '후회하지 않아'를 제작하고 '소년,소년을 만나다' '친구사이?' 등 퀴어영화를 직접 연출하는 등 영화를 통해 성소수자의 지평을 넓히는 데 힘써왔다. 퀴어영화 전문 배급사인 레인보우 팩토리도 연인과 함께 세웠다.

김조광수 감독이 19살 연하 연인과 결혼계획을 밝혔을 때 기자로선 힘든 하루였다. 연인이 있고, 결혼하겠다는 말은 해왔지만 기사화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깐. 기사화가 또 다른 피해를 줄 수 있단 생각도 들었다.

동성결혼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깊이 할 수 있게 된 계기도 됐다. 당시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보수적인 교단인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란 답이었다. 생각은 달랐지만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데는 공감했다.

시간이 흘러 김조광수 감독에게 지나가듯 "연인 부모님께 인사했냐"고 물었다. 김조광수 감독은 "아직은"이라며 "이런 일은 시간이 걸리는 법"이라고 스치듯 답했다.

김조광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친구사이?'가 떠올랐다. 군대에 면회 간 어머니가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걸 알고 교회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들이 게이란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왜 나인지, 왜 내 아들인지, 내가 잘못인지, 괴로움에 사무치다가 "불쌍한 우리 아들"이라고 받아들일 것 같았다.

김조광수 감독은 '친구사이?'에 그 장면이 자기 이야기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동성연인을 부모에게 소개시킨다는 건 그래서 더 어렵고 힘든 일이었을 것 같다. 부모에겐 불쌍한 우리아들이라고 받아들이는 걸 넘어서는 일이니깐.

김조광수 감독이 결혼 기자회견을 발표한 13일, 전화를 걸었다. "축하한다"며 "양가 허락을 받았냐"고 했더니 "물론"이라고 답했다. 진심으로 축하했다. 이제 부모는 더 이상 아들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는 뜻이리라. 아들들이나 부모들에게 다행이다.

김조광수 감독은 결혼식을 성소수자 축제의 장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축의금을 모아 성소수자 인권운동센터인 무지개 센터를 건립하겠다고 했다. 결혼사실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을 연다고 했다. 개인의 삶과 사랑,결혼을 사회영역으로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홍석천 기사를 쓴 뒤 10년이 지났다. 홍석천은 이제 방송에서 게이 코미디를 나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냐며 너스레를 떤다. 김조광수 감독은 결혼을 발표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두텁지만 그래도 두 사람 덕에 조금씩 냉소적인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다시 홍석천과 그 때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우선 축하할 것 같다. 당신이 외롭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리고 깊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 같다.

미안하다,그리고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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