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드림' 이룬 최군 "이젠 박명수 드림!"(인터뷰)

개그맨 최군 ⓒ사진=임성균 기자

"예, 사또!"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최군(25, 본명 최우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온 전화에 "이 전화는 꼭 받아야 한다"며 양해를 구하고 이내 '긴장모드'로 돌입했다. 최군은 "예, 사또!"를 연신 말하며 몸까지 굽실거렸다. 사또? 전화기 너머 목소리 거칠다.

"박명수씹니다." 소속사 거성엔터테인먼트 사장인 개그맨 박명수의 전화였다. 그러고 보니 "너 어디야?" 라고 소리 지르는 그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던 터였다. 그런데 웬 사또?

"사장님이 '사장'이라고 부르는 걸 싫어해요. 방송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것에 코믹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 분이거든요. 사또도 그렇고 때로는 '박씨'라고 부르기도 해요. '박CEO'요. 하하. 제가 아는 개그맨 선배들은 보통 카메라가 꺼지면 조용해지거나 과묵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또는 카메라가 꺼지면 오히려 더욱 개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생활 속 개그 감각을 유지하라고 하니까 이젠 편의점을 가도 점원한테 개그를 한다니까요."

그런데 왜 싸또냐고 물으니까. 별다른 뜻이 없단다. 그냥 박명수가 사또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최군은 특이한 예명에 대해서도 "김C, 정양은 있는데 '군'을 붙인 연예인이 없어서 그냥 성에 군을 붙여 최군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역시 별 뜻은 없었다.


최군은 'MBC 개그맨'으로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터넷방송 '아프리카TV'의 '최군TV' 진행자로 잘 알려져 있다. KBS개그맨을 꿈꿨던 그가 MBC 개그맨이 되고, 또 인터넷방송 진행자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배고픈 얘기', '거성' 박명수와의 만남에 대해 들어봤다.

◆19살에 MBC 개그맨 발탁..미니홈피 주소는 여전히 'KBS개그맨'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위로 누나가 3명이었다. 어머니는 가사도우미였고 아버지는 직업이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인근 도시로 전학을 가서는 자취, 친구집, 하숙집을 전전했어요. 월세 7만 원짜리 작은 방이 제 집이었습니다. 현실은 힘들고 비루했지만 혼자 이런 저런 궁리하면서 개그맨의 꿈이 더 커졌어요. 중학교 때는 방학 때마다 서울로 올라와 대학로에서 개그맨들을 봤어요. 친해주면 뽑아주지 않을까하고요. 하도 자주 오니까 너 뭐냐고 묻더라고요. 개그맨 지망생이라고 했죠. 중학생이요. 하하. 회식 자리도 따라가고, 미성년자라서 안된다고 하면 사이다도 좋으니 같이 있게만 해달라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 '전국꼴등'을 하기도 했지만 꿈에 대한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특이한 이력'을 쌓기 위해 힙합대회에 나가 첫 도전에서 음악부문 은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생 신분에 고3 때 '뻥'을 치고 대학축제에서 공연도 했어요. '데이플라이'(하루살이)라는 팀으로요. 돈도 필요 없으니 공연만 해드리겠다고 했죠. 그때 대기실에서 SG워너비랑 같이 있는데 실감이 안 났어요. 그렇게 공연 많이 다녔죠. 대단하기보다는 '돌아이'였죠. 하하."

최군은 지난 2007년 MBC 개그맨 공채 16로 선발, '꿈'이었던 개그맨이 됐다. 그의 나이 만으로 19살 때였다. 당시는 MBC 개그프로의 '황금기'였다. '사모님'이나 '죄민수'가 인기를 끌 때였다.

개그맨 최군 ⓒ사진=임성균 기자

"사실 제 미니홈피 주소가 'kbsgagman'이에요. 개그맨 되고 선배들이 알고는 많이 혼냈어요(웃음). 그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KBS 개그맨에 대한 선망이 있었어요. 집이 시골이었는데 집에 KBS와 EBS 밖에 안 나왔거든요. 제가 아는 유일한 개그프로가 '개그콘서트'였죠. 사실 김국진, 박명수 이런 분들 모르고 자랐어요. 중학교 때 도시로 전학 갔는데 그때서야 KBS 말고 다른 방송도 있다는 걸 알았죠."

최군은 "2007년 MBC 개그맨 시험 볼 때 엄청 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렸었다"라며 "당시 MBC 개그맨 시험은 2월에 합격자 발표를 했고 KBS는 3월에 시험이 있어서 MBC에 합격한 상황에서 KBS 개그맨 시험을 볼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최군이 데뷔하고 2년 정도 있다 '개그야'가 폐지됐다. MBC 공채 개그맨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없어진 것이다.

"제가 들어가자마자 '개그야'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어요. '난 저주 받은 놈인가' 생각했죠. 거기에 일조한 게 저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신인들이 무대가 없어졌다고 불만만 나타낼 건 없다고 봐요. 저 같은 신인들이 신선한 개그 아이디어를 내고 열심히 해야 했는데 그게 안된 거죠."

'무대'를 잃은 최군은 이후 국내 연예기획사를 돌아다니며 자신과 계약해줄 곳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준비되지 않고 유명하지 않은 예능인을 계약하자고 할리가 없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개그야' 폐지 후 배고픔의 연속..'아프리카 드림'을 꿈꾸다

시골집에는 거짓말을 했다. 제2의 '개그야' 같은 프로그램이 준비 중이라고. 위로 누나 3명에 중학교 시절부터 홀로 외로이 자취생활을 했던 최군에게 또 '배고픔'이 찾아왔다.

"일이 없으니 '버티기'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자연스레 빚이 생기기 시작했죠. 돈이 없으니 제일 먼저 휴대전화 발신이 안되더라고요. 그리고 수신이 끊겼죠. 일이 생겨도 연락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됐어요.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봐 휴대전화가 고장 났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최악의 순간은, 집에 전기가 끊긴 거예요. 전기가 끊기면 불만 안 들어 올 거라고 생각하시죠? 냉장고, 전기밥솥이 안되니 밥을 못 먹고, 세탁기를 못 움직이니 옷도 빨 수 없었어요. 비참했습니다."

하릴 없이 굶던 최군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찾아 헤맸다. 그러다 인터넷방송이 눈에 띄었다. 그래도 개그맨인데 '말'로 하는 거면 자신이 있었다. 최군은 2009년 말 인터넷방송 '아프리카TV'에서 새 둥지를 틀었다.

"자신감 있게 시작했죠. 개그맨인데 인터넷방송 정도 못할까하고 말이죠.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많이 힘들었습니다. 3일 동안 제 방송에 10명도 안 들어오는 거예요. 그 3일 동안 제가 말한 게 똑같았습니다. '안녕하세요. MBC 개그맨 최군입니다'. 이러고 있다 1명이 나가고, 또 1명이 들어와서 '누구에요?' 물어보면 '안녕하세요. MBC 개그맨 최군입니다'라고 또 시작하고요."

그대로 '뻔한' 방송만을 하다가는 배고픔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며칠을 고심 끝에 다른 인터넷방송과 다른 방송을 해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던 시기였다.

"'야외로 나가자'고 결심했어요. 그때 인터넷방송이 다들 뻔했거든요. 하나같이 방에 틀어 박혀서 PC카메라로 방송했어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PC가 아닌 스마트폰 어플로 시청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에 착안했죠. 노트북을 들고 무조건 홍대로 나갔습니다."

최군은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홍대 거리에 노트북과 웹캠, 와이브로만 들고 나섰다. 눈에 띄게 분홍색 노트북에 마이크에도 '최군TV'라고 적었다. 막걸리 취한 아저씨부터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 그냥 말을 걸었다. 자신감도 붙었다. 남들과 또 다른 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생방송'이다.

개그맨 최군 ⓒ사진=임성균 기자

"이왕 인터넷방송을 한 거 기네스북에 도전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영화 '트루먼쇼'처럼 일주일 내내 생방송으로 해보자 생각한 거죠. 일주일, 168시간을 제가 먹고 자는 것부터 해서 제가 움직이는 곳 전부를 담았어요. YG엔터테인먼트 앞에 찾아가서 '사생팬'들 하고 함께 기다리다 매니저한테 혼나고 쫓겨나기도 했고요. 처음 계획 일주일에 3일을 더해서 10일을 생방송을 했습니다. 제가 밥을 먹는 장면을 무려 4000명 이상이 방송으로 봤을 정도였어요. 기네스 기록은 한국기록원에 문의했더니 영국에서 기록원들이 와야 하고 제가 숙식을 다 제공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액수가, 제가 감당하기는 힘들었어요."

그의 홍대 '생방송'은 동시접속 9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히트'를 쳤다. 10일간 누적 접속자는 10만 명을 육박했다.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그맨 최군'이 아닌 '최군TV의 최군'을 알아보는 이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번은 생방송을 하다 비가 오는 거예요. 장비가 젖을까봐 인근 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검은색 세단이 제 앞으로 슥 오는 거예요. '빵빵' 클랙슨을 울리더니 '최군님, 어서 타세요' 이러는 거예요. 방송 보시다가 오신 거죠. 비를 피해 내려주시고는 말없이 가시더라고요. 또 한 번은 밥을 먹으며 방송을 하고 있는데 제 뒤로 가게 간판이 보였나 봐요.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이 어떤 분이 전화로 계좌번호 묻고는 제 밥값을 계좌이체로 계산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감동이었죠."

'반향'도 있었지만 '반발'도 있었다. '인터넷방송에 출연해서 MBC 공채 개그맨 욕 보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최군은 이를 악물었다.

"그때는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어요.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인터넷 방송인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라 뭔가 보여주자고 다짐, 또 다짐했습니다."

최군은 당시 홍수를 이루던 '아이돌'에 주목했다. "신인 아이돌들이 많이 나올 때였는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을 알릴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없었어요. 그 친구들을 찾아가보자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역시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최군은 무조건 아이돌 기획사를 찾아갔다.

"기획사를 찾아가서 제 소개부터 하는 거죠. '안녕하세요. '최군TV'라는 스마트 방송인데요. 제가 개그맨 최군이고요' 식으로요. 10개 중에 9개는 시쳇말로 까였습니다. 그러다 브이엔티(VNT, 티나·유미·릴제이)라는 걸그룹과 인연이 닿아 처음 제 방송에 소개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나중에는 댄스팀, 걸그룹 합쳐서 100개 팀이 넘었죠."

'최군TV'는 이후 승승장구, 가수 환희가 이를 통해 컴백했고, M4(김원준, 이세준, 배기성, 최재훈), 비스트 윤두준, 박재범, 손호영, 공유, 이나영, 안성기 등이 출연했다. 인터넷방송에서 이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들을 최군이 해낸 것이다. 최군은 2011년 말 '아프리카TV' 방송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최군은 이후 영화 쇼케이스 현장을 주목. 아이패드를 가슴에 안은 채 무작정 현장으로 달려갔다. 질문 시간, 기자들이 묵묵히 기사 작성에 열심일 때 그는 제일 먼저 손을 들고 질문하는 전략을 썼다.

"현장에서 아이패드를 가슴 쪽으로 해서 들고 다녔어요. 제가 방송하는 화면과 함께 시청자들의 댓글이 쭉쭉 올라오는 걸 보고 되게 신기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제가 시청자 분들께 '자, 누구를 검색해주세요'라고 부탁하면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그 분이 검색어 상위권에 올라가는 거예요. 나중에는 쇼케이스 주최 측이 먼저 와 달라고 부탁할 정도가 됐습니다."

'잘 나가게 된' 최군은 직원도 3명이나 뽑고 '최군'에서 따와 '쿤(KOON)TV'라는 회사도 설립했다.

"저희는 카메라만 들고 현장으로 가면 그게 스케줄이니까 스케줄이 없는 날이 없었죠. 장난 아니었어요. 하루에 많이 찍을 때는 누적 시청자가 30만 명에 육박할 때도 있었어요."

◆'거성'을 만나다

인터넷방송에서 절정기를 구가하던 최군은 그즈음 '거성'을 만나게 된다. 개그맨 박명수다.

"아직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해요. 2011년 12월 첫째 주 화요일이었습니다. 박명수씨를 만나게 되죠. 당시 '손바닥TV'에서 섭외가 와서 출연하게 됐는데, 박명수씨도 나왔거든요. 물론 제가 누군지도 몰랐죠. 처음에 '너 누구야?'라고 시큰둥하셨는데, 방송에서 제가 좀 잘했는지 상당히 재밌어 하시더라고요. 녹화 끝나고 바로 '너 끝나고 뭐있니, 밥 사줄게'라고 말하셔서 만났습니다. '넌 어떻게 살아왔냐'고 물어서 얘기를 쭉 했더니 '오케이, 알았다'고는 바로 저를 거두셨어요."

최군은 박명수를 만나 공중파로 복귀했다. 동시에 6개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 자연스레 자신의 '쿤TV'에 소홀하게 됐고, 시청자들도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고민이 컸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행이게도 시청자들은 저를 이해해 줬어요. '최군, 기회가 왔을 때 잡아. 우리는 그걸 원해'라고요. 고마운 분들이죠."

최군은 원해 올해 8월 런던올림픽 기간 중 현지로 날아가 올림픽 생중계 인터넷방송을 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박명수를 만나면서 포기했다.

"박명수씨를 만나자마자 '세바퀴'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런던이냐 '세바퀴'냐 고민하다 런던을 포기했습니다."

본격 공중파에 복귀한 최군의 꿈은 무엇일까. 말 잘하는 그에게 '제2의 유재석'이 꿈이냐 물으니 의외로 "박명수 사장님처럼 음악을 하고 싶은 게 꿈"이라고 했다.

"예전에 자전거 타고 인터넷 생방송하면서 막 달리면서 '난 제2의 유재석이 될 거다'라고 소리치며 달린 적이 있을 정도로 저뿐만 아니라 모든 개그맨들에게 유재석 선배님은 선망의 대상이죠. 하지만 여러 경험을 하다 보니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잘하지 못해. 나만이 할 수 있는 게 있겠지'란 생각이 연속적으로 들면서 지금 스마트 방송을 하고 있으니, '소통하는 개그맨'이 되자는 꿈을 세웠죠. 나중에는 박명수 사장님처럼 음악을 하고 싶어요. 노래를 하면서 사는 사람이 정말 즐거워 보여요. 제 인생이 음악을 하면서 바치길 바라는 거죠. 컬투 선배님들처럼 저도 '쿤 콘서트' 같은 것을 해보고 싶어요."

'두 마리 토끼'를 쫓게 된 최군은 꿈에 그리던 공중파 복귀의 염원을 이뤘지만, 그 '토끼'를 위해 또 다른 '토끼' 쫓는 걸 포기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인터넷방송이 이제 그에게는 숙명처럼 됐다.

"공중파로 복귀했지만 전 '쿤TV'를 포기하지는 않을 거예요. 단순한 인터넷방송이 아니라 평생 갈 제 '업'(業)으로 생각합니다. 결혼식도 생방송으로 하고, 물론 중요한 시기에는 잠시 끌 수도 있습니다(웃음). 제 장례식도 인터넷 생방송으로 하고 싶어요. 60년이 넘는 제 인생 자체를 생방송을 하고 싶습니다."

개그맨 최군 ⓒ사진=임성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