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영화배우들의 세계를 아십니까

[외부필진 특별 기고]

지은 / 입력 : 2012.07.0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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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4ong.kr)의 해외통신원 리포트, 첫 번째 주제는 바로, "영화배우 - 새로운 장애인 직업의 세계"입니다. 한국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면서 항상 고민스러운 부분은 장애학생들이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이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우수한 장애학생이 사법시험에 통과했다는 성공 스토리가 언론을 반짝 장식하지만, 사실 2012년 현재 한국의 장애학생들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직군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시각장애 학생들의 상당수는 맹학교에서 이료 교육을 이수하고 안마사로 일하고 있으며, 운 좋게 취직의 기회를 얻은 지적장애나 지체부자유 학생들 일부도 대형 공장의 조립 공정 업무를 하거나 대형 유통 업체에서 포장 및 간단한 배달 업무를 하는 등 일반 대중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취직의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자신의 집이나 복지관 등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애인들은 아직도 매우 많습니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장애인들의 실업문제는 언제나 큰 고민거리입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정부보조금에 의지하며 무료하게 살고 있는 장애인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래서, 장애인 인권에 대한 고민의 세월이 길었던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는 장애인들이 좀 더 다양한 직군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독자 여러분에게 드리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장애인 영화배우'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난 적이 있던가요?"

'배우'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주로 '꿈' '스타' '인기' '명성'입니다. 그래서, 장애인과 배우라는 직업을 연결시키는 것 자체가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요. 최근 미국의 유명 연예주간지인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커버 기사를 냈습니다. 제목은 바로, 다운증후군 배우들(Actors with down syndrome" ). 로렌 포터, 제이미 브루어, 루크 짐머만의 젊은 다운증후군 배우들의 솔직한 인터뷰를 담았던 이 기사는 한동안 큰 화제를 불러왔습니다. 세 명의 배우들은 얼마나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그동안 배우 커리어를 쌓아왔는지 인터뷰를 통해 밝혔습니다. TV 시리즈 글리 (Glee)에 출연한 로렌 포터에 대해 당시 총괄 프로듀서였던 라이언 머피는, "로렌 포터는 '(프로듀서인) 당신은 나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다. 나는 지난 3번의 에피소드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구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라며 일반 배우들보다도 적극적이었던 배우 로렌 포터의 모습을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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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호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지의 "다운증후군 배우들" 기사

물론, 장애인 배우들의 현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전미다운증후군협회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지적장애인의 10퍼센트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캐스팅 담당자들이 접수처 담당원이나 간호사 보조원 등의 배경 인물로 장애인 배우들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협회 대변인은 "연예사업이야말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장애인과 장애인 배우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을 바꿔갈 수 있다"고 낙관적 전망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장애인이 영화배우로 처음 등장한 것은 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첫 번째 다운증후군 영화배우로 손꼽히는 크리스 버크는 20대 중반이던 1987년부터 배우 활동을 시작했으며, 영화 뿐 아니라 장애인 인권을 위한 다양하고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장애인 배우들이 점점 많이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장애인 배우들은 다운증후군 예술가협회 (DSIAM)나 헐리우드에 기반을 둔 장애인 예술가협회 (Performers with Disabilities), 장애인합동영화사(Abilities United Productions) 등을 조직해, 자신들의 존재를 대중과 매체 담당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관련 협회에서 장애인 배우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장애인 배우의 캐스팅을 원하는 미디어 관계자와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장애인 배우들을 연결시켜주는 가교 역할을 협회가 톡톡하게 해내고 있죠.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작은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미 영국에서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전문 배우-모델 에이전시가 있습니다. 비저블기획사(VisAble Agency)라는 이름의 이 회사는 등록된 장애인 배우들의 간단한 프로필 사진을 온라인을 통해 캐스팅 담당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영국의 공공방송사인 BBC는 2000년 이후 장애인 배우와 예술가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사내에 구축하는 한편, 장애인 배우들의 미디어 출연을 꾸준히 독려하고 있습니다. 2004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BBC 관계자는 "영국 성인인구의 16퍼센트가 장애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현실과 다르게,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장애인의 수는 1% 수준이다"라고 장애인 배우 캐스팅 확대의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장애인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캐스팅했던 BBC의 인기 프로그램, 이스트엔더스(Eastenders)

그렇다면,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장애인 배우들의 고충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발표한 최근 연구는 (Raynor & Hayward, 2009) 현재 헐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장애인 배우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와 설문 조사를 시행했는데, 그 결과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장애를 가진 여자배우가 남자배우보다 역할 잡기가 더 어렵고, 40세가 넘어야 주조연의 역할 맡기가 쉬워진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장애인 배우에게 주어지는 출연 캐릭터 선택이 제한적이고 오디션 기회 자체가 적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합니다. 또한 매우 흥미로운 부분은, 미국 사회에서 상당히 당연시 되고 있는 장애인을 위한 직무조정 (예시: 청각장애인을 위한 통역사 채용이나 지체장애인을 위한 보행지원팀)이 영화산업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심층 인터뷰에 응한 장애인 배우들 자신도, 향후 캐스팅에서 배제되거나 무능력하게 보일까봐 직무조정 요청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의견을 밝혔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장애인 배우가 현저히 증가한 요즘도, 장애인 배우들의 활발한 연기 활동에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장애인의 직업문제는 생계유지 차원에서 머물렀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대다수의 직군이 생산직이나 간단한 서비스 업종에 제한된 경우가 많아서, 일반인들은 일하는 장애인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대중의 인식 속에 장애인은 '존재하나 만나기 힘든' 존재로 남게 되죠. 그렇다면, 미디어의 영향력이 강력한 현대 사회에서 장애인 배우들이 스쳐가는 행인으로라도 자주 매체에 등장한다면 어떨까요. 그 어떤 인권운동가의 호소력 깊은 메시지 못지않게, 장애인 배우들의 연기 활동은 조용하면서도 강력하게 '함께 사는 세상'의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배우를 꿈꾸는 장애인들의 꿈과 희망을 우리 모두 함께 기원해봅시다.

<4ong의 새로운 필자로 참여하게 된 지은 씨는 서울대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현재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에서 재활상담/특수교육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참고문헌>

1) Abilities United Productions (영화사). http://abilitiesunited.com/

2) DSIAM (다운증후군 예술가협회). http://www.dsiam.org/

3) Performers with disabilities (장애인 예술가협회).http://www.iampwd.org/home

4) Raynor, O., & Hayward, K. (2009). Breaking into the business: Experiences of actors with disabilities in the entertainment industry. Journal of Research in Special Educational Needs, 9(1), 39-47.

5) VisAble Agency (영국의 장애인 예술가 에이전시). http://www.visablepeo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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