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수지, '여전사' 요한슨..설마 믿진않죠?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2.04.25 16:16
  • 글자크기조절
image
위부터 '건축학개론' 배수지, '어벤져스' 스칼렛 요한슨


아스라한 첫사랑이 찾아왔다. 비수처럼 다가온 첫키스의 추억, 철길을 걷던 살 떨리는 가을 햇살의 흔적, 잘 나가는 선배한테 빼앗긴 듯한 착각의 아픔. 그 모-오-든 것으로서 첫사랑이 찾아왔다. 보는 순간 알았지만 믿어지지가 않아 일부러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25일 현재 339만명이 본 영화 '건축학개론' 이야기다.

남성 관객은 극장을 나서면서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렸다. '맞아, 맞아. 그랬었구나.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잊고 살 수 있는 거구나. 그때 난 얼마나 서툴렀고 가진 건 또 어찌나 없었던지.' 아니면, '그래, 걔는 진짜 예뻤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살까' 라든지.


하지만 여기까지. '건축학개론'은 분명 남자의 시선에서 첫사랑을 그리워한 판타지이자 로망이다. 이혼했다고 해서 첫사랑을 찾아가는 여자는 이 세상에 없다. 오히려 절대 안 간다. 게다가 첫사랑이 미쓰에이의 '배수지'이고, 느닷없이 자신을 찾아온 그 사랑이 '한가인'인 남자란 이 세상에,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다. 맞다, 추억이란 이렇게 극한으로 미화되는 법이다.

25일 개봉한 '어벤져스'에서는 블랙 위도우라는 스파이 겸 특급 여전사가 나온다. 위장술은 기본이고 짧은 치마 입고 발차기, 돌려차기, 손목꺽기, 로우킥에 총질까지 못하는 게 없다. 게다가 예쁘다. "그 유명한 블랙위도우가 예쁜 인형에 불과했어?"라는 한 외국 테러리스트의 비아냥처럼, 블랙위도우는 심히 예뻤다. 왜? 스칼렛 요한슨이니까.

따지고 보면 여전사 혹은 여성 킬러는 다 예뻤다. 노란 트레이닝복 입은 '킬빌'의 킬러는 우마 서먼이었고, 땀 묻은 근육질 과시한 '에이리언'의 외계생명체 킬러는 시고니 위버였다. 하긴 '블러드'에서 세일러 교복 입은 채 뱀파이어를 사냥했던 여주인공도 전지현, '매트릭스' 시작하자마자 검은 유광 가죽재킷 각선미 자랑하며 무술솜씨 과시한 트리니티도 캐리 앤 모스, '쏠트'에서 휘어지는 총알까지 발사했던 여전사도 안젤리나 졸리였다.


여성만이 아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그 흉악한 조폭 우두머리는 다름 아닌 하정우였다. '아저씨'의 살인기계-싸움기계는 원빈, 최근 3D로 재개봉한 '타이타닉'에서 한 여성을 끝까지 챙겨준 남자주인공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초능력자'의 괴상하고 음산한 싸이코는 강동원, '놈놈놈'에서 장총질 진짜 잘했던 현상범 사냥꾼은 정우성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영화가 선사한 판타지나 로망을 한 꺼풀 벗기고 나면, 현실이란 언제나 맨 얼굴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맨 얼굴이란 대개 영화만큼이나 아름답지는 않은 법이다.

조폭은 절대 하정우나 원빈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니라 일단 도망치거나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하루빨리 근절돼야 할 절대악이다. 여전사를 안젤리나 졸리나 전지현으로 생각하다간 언제 당신 목숨 위태로워질지 모른다. 첫사랑 역시 절대 되돌아오는 법이 없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건 추억 때문이고, '건축학개론'을 보고 더 아름다운 건 그 첫사랑이 요즘 잘나가는 걸그룹 에이스 '배수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관객은 조폭에서 어떻게든 인간미를 느끼려 하고 여전사에서 섹시미를 찾으려 한다. 그 무시무시한 칼질과 총질에서 유려한 액션을 보려 하고, 섹시한 뒤태에 감쳐진 흉칙한 살의를 애써 외면하려 한다. 따지고 보면 첫사랑 그 시절 우리는 얼마나 미련하고 악랄하고 소심했나. 그런데도 그 시절 나란 존재는 한없이 순수하고 여리기만 했고, 그 시절 첫사랑은 가장 예뻤고 지고지순했던 것처럼 착각하는 이 미련, 집착, 오류.

"태어나보니 아빠가 장동건이고 엄마가 고소영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다. 맞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