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박해일..늘 새로운 매혹을 찾아가는"

젊음에 매혹된 70대 노(老)시인이 되다..영화 '은교'의 박해일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2.04.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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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해일 ⓒ홍봉진기자 honggga@


그는 나이 70의 노인이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고 검버섯이 피어났다. 그는 존경받는 시인이 됐다. 평생을 시만 쓴 고고한 지성으로 추앙받았다. 그가 10대 여고생의 젊음에 그만, 매혹됐다. 그 균열은 위험한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

박범신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삼은 영화 '은교'에서 박해일(35)이 맡은 노(老)시인 이적요(寂寥)는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생김생김은 물론이요 마음가짐부터 삶의 템포까지 바꿔야 했다. 파격적인 노출도 예정됐다. 박해일은 도전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를 기다리는 많은 관객처럼 박해일도 시나리오보다 소설을 먼저 읽었다.

"재미는 있었는데 독자로서 읽는 느낌과 내가 해야 한다고 하는 느낌과는…, 감정의 깊이가 약간은 다르잖아요. 300∼400쪽 분량이 어떻게 영화로 될까. 시나리오가 궁금해졌죠. 앞으로 제가 얼마나 영화를 더 할지 모르지만 또 이런 신기한 경험을 또 할지 모를 정도로. 고민도 많았지만 크나큰 도전이기도 했어요."

지난해 제 3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떠올랐다. '최종병기 활'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의 세리머니는 모자를 쓱 벗어 반질반질한 민머리를 공개하는 것이었다. "죽이는 작품"을 지금 찍고 있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공개석상에서 그가 그렇게 들뜬 것을 보는 게 처음이어서 퍽 인상적이었다.


박해일은 "미친 거죠. 그 상황에 할 이야기가 없었던 거죠"라고 시선을 피하며 몸을 비비 꼬았다.

당시의 삭발은 '은교'에서 완벽한 노인 분장을 위한 것이었다. 박해일은 8시간의 특수 분장을 견뎠고, 늘 가발을 쓰고 연기를 해야 했다. 대표 동안 배우로 불리는 35살의 배우는 그렇게 노년이 됐다.

자신의 삶보다 이미 2배의 시간을 보낸 인물을 그려내다 보니 달라진 시간의 속도는 박해일에게 곧장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그가 70세 이적요가 되어 살았던 시간을 돌이키는 동안, 질문 하나에도 곧장 답이 나오는 법이 없었다.

-'은교'가 그렇게 기가 막히나요?"

▶이거 어떻게 좀. 지금은 부담만 되죠.(웃음)

-8시간 분장은 정말 고역이었겠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쓴다는 것도 정말 새롭다고 생각했어요. 난감하기도 하고.(웃음)

-그러면 한 번 했을 때 많이 찍고 싶지 않나요.

▶감독님이요! 특수분장을 하면 보드랍고 미세한 껍질이 있는 것 같은데 온도 변화라든지 이런 데 민감해요. 한 번 하면 촬영분을 많이 확보를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참. 특수분장팀도 고민 많았죠. 저는 가만히, 최대한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고. 그게 여러 사람 기쁘게 만드는 거였죠.

-그렇게 절제하는 게 캐릭터에도 도움이 됐겠습니다.

▶그게 참, 그게 맞아떨어지면서 결국엔 도움을 받게 된 거죠.(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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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교'의 박해일 <영화 '은교' 스틸컷>


-분장도 분장이지만 70대 노인, 그것도 대 시인의 내면을 보여준다는 건 정말 만만찮은 일었을 것 같아요.

▶외적인 모습도 중요하죠. 관객들이 믿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내면을 어떻게 끄집어낼 것인지 고민이 컸어요.

-홀로 고민하니 답이 나왔나요?

▶고민해서 뚝뚝뚝 나온다면 너무 행복한 케이스인거죠. 손을 뻗쳐서 잡을 수 없는 감정이 있게 마련이고 매번 거기서 부딪쳤어요. 이 나이에 느낄 수 없는 연륜이며 감정을 다루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혼자 해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인정했어요.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까놓고 갔죠. 1차적으로는 특수분장님의 섬세한 수공예 작품을 받고, 촬영 조명 미술 여러가지 부분에서 최대한 도움을 받으려고 열어놨어요. 감독님과는 내면적인 부분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요.

-원작에는 '당빠' 이런 애들 쓰는 말을 이적요에게 설명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건 박해일과도 비슷하다고 느꼈는데요.

▶저를 이런 식으로 구식으로. 그거 하나는 맞네요.

-노년을 연기하니 삶의 리듬도 달라지던가요.

▶2배로 늘어졌어요. 그게 그 나이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힘인 것 같고 기운인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해보자 했고 그렇게 해 나갔죠. 주변에서도 '어, 쟤 조금씩 달라진다' 했던 것 같고요. 아직까지도 완전히 털린 느낌이에요. 예전 템포와 속도감을 못 찾았어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인물을 어떻게라도 파악해보려고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솔직히 상대하는 다른 배우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죠.

-원래 말이 좀 느리시지 않나요.

▶그러니까 더 느려지면 어떡해,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어땠겠어요. 아, 답답해.(웃음)

-이적요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그 인물은 제가 봐도 그렇지만 독특하고 매력있는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남자가 봐도. 열정도 그렇고, 기골도 장대하고. 그 점은 제가 했기 때문에 변화를 줘야 했지만(웃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기운, 뭔가의 동질성을 가져가려고 했어요. 아무튼 제일 중요한 건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지, 또 어떻게 끄집어낼 것인지였어요.

-이름도 멋지고요.

▶'적요스러운'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극중 시인이 스스로 지은 필명인데, 스스로 이렇게 불리고 싶다 생각한 이름, 수식어는 없었나요.

▶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저는 청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청년. 연극 할 때도 '청년 박해일'이라고 쓰고 한 적이 있어요. 오랫동안 그렇게 들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인상이 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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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해일 ⓒ홍봉진기자 honggga@


'은교'는 매혹에 대한 이야기다. 노 시인은 처녀의 젊음을, 제자는 시인의 글을 갈망한다. 열일곱 은교는 두 사람 사이를 나풀거리며 오가고, 공고한 시인의 성은 점점 위태로워진다.

소설처럼 영화도 파격적인 묘사를 예고하고 있다. 덕분에 '은교'는 일찌감치 화제의 작품이 됐고, 파격적인 노출을 감행했다는 김고은은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은교'는 은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박해일의 노출 수위 또한 상당하다. 그렇다고 '은교'는 자극적이고 야한 이야기만도 아니다. 박해일은 그러나 "충분히 그렇게 알려질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밤톨처럼 짧게 깎은 머리 덕에 그의 동안이 유난히 어려 보였지만, 박해일이 살아나왔던 노시인의 이미지가 그에게 계속 겹쳤다.

-은교 역할로 등장한 신인배우 김고은이 화제인데요.

▶멋진 친구예요. 무서운 신인이라고들 하는데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얘가 왜 처음이라고 하나' 할 정도로 적응했고, 과감하고, 호기심이 강했어요. 기존 여배우들이랑 비해 신선하지 않았나 싶고요.

-'은교'가 자극적인 이야기만은 아닌데 아직까지는 그런 쪽으로 널리 알려진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가 알려지는 시점에서 큼지막한 소재를 가지고 판단하다보면 충분히 그렇게 예상할 수 있다고 사실 생각해요. 사실 '원작을 보시라', '영화를 보시라' 뭐라고 말을 못하잖아요.

-그런 게 서운하지는 않나요.

▶영화를 보시더라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고. 남녀노소, 아 19금이니까 그 이상이 볼 때마다 느낌은 다 다를 것 같아요. 누구나 태어나 겪게 되는 젊음과 늙음이 있으니까 조금씩 다른 부분을 취하시겠죠.

-스스로도 파격적인 노출을 했는데요.

▶영화가 공개되면 많이들 물어 보시겠죠. 그 때를 위해 답을 좀 남겨두고요.

-이제 개봉을 앞뒀는데 긴장되지는 않나요.

▶뭔가 도전이고 긴장되고 하는 호기심이 생긴 건 '최종병기 활' 찍을 때나 지금이나 같아요. 긴장하더라도 막상 촬영을 하면 잘 못 느껴요. 유연한 긴장감이랄까, 그렇게 이어지는 게 제일 좋지요.

-박해일도 긴장 때문에 뻣뻣해질 때가 있나요.

▶그럼요. 있죠. 결과물을 보고 그렇게 얘기해주신다면 그건 다 감독님이 미리 보고 잡아주신 거예요. 매번 느껴요. 옆에서 상황을 제일 잘 보고 아시는 분이 감독님이시죠.

-'최종병기 활'로 흥행도 잡고 상도 탔는데 '은교'같은 작품을 선택하기 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작품을 선택할 때 앞으로도 장기간 계속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라면, 거기서는 좀 더 자유롭고 싶어요. 매번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는, 이게 분명하게 설명하기 애매하지만, 늘 연결된 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3자 입장에서는 완전히 딴 거 하고 있네 할 수도 있지만 다 유기적 관계가 있다고. 언젠가는 지도처럼 작품들을 펼쳐놓고 무슨 끈이 있었을까 생각하는 때가 있을 수도 있고.

-아직은 그렇게 돌이켜보지는 않았나보죠?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아요. 덜 뒤돌아보면서 왕성하게 뛰어야 하는 것 같고요. 사람들도 그러더라고요. 오히려 쉬지 마라, 기름칠을 했을 때 제대로 돌려라 하면서. 더 늦기 전에 행동해야 할 것 같아요.

-박해일도 어딘가에 혹은 누군가에 '매혹' 된 적이 있었나요.

▶사물이든 생명이든 뭔가에 매혹당해서 한없이 어느 동안 그 생각만 떠올리는 건 누구나 한다고 생각해요. 이적요는 은교에게서 어떤 상직적인 느낌을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매혹이라는 단어는 매력적인 게 아닌가 싶고.

저에게는 그게 제가 맡아야 하는 캐릭터나 작품일 수 있어요. 영원한 매혹은 없는 것 같아요. 강렬한 이끌림이 시간이 지나면 또 달라지기도 하고. 한 사람이 한 캐릭터를 하고 영원히 남을 수도 있겠지만, 늘 새로운 매혹을 찾아가는 느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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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해일 ⓒ홍봉진기자 hong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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