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 차도남' 장동건 vs '마이웨이 병사' 장동건

[김관명의 스타오딧세이]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2.01.14 09:06
  • 글자크기조절
image


개인적으로 강제규 감독의 전쟁영화 '마이웨이'를 재미있게 본 편이다. 일제 식민통치하 잘 나가는 일본인 청년(오다기리 조)과 모든 게 억눌린 조선의 청년(장동건)이 '마라톤'을 통해 만난다는 꽤 괜찮은 착점. 여기에 중일전쟁, 러일전쟁,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스테이지를 바꿔가며 전장을 누비는 롤플레잉 게임 같은 깨알재미. 일본배우 오다기리 조의 서늘한 이미지는 생각할수록 감칠맛이 난다.

아쉬운 건 우리배우 장동건이다.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친구'(2001년)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10여 년이 지나도 여전했고, '태극기 휘날리며'(2003년)에서 자주 지적됐던 과잉된 자의식 연기는 놀랍게도 차분해졌다. 문제는 이러한 카리스마와 절제된 연기가 관객 눈에 좀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아니, 관객은 전장에서 뒹굴고 고뇌하고 절규하고 희생하는 장동건의 이런 낯선 모습을 '소비'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소비는 돈을 주고 물건이나 이미지를 사는 행위다. 갖고 싶거나 가져서 행복할 것 같아야 산다. 그동안 대중이 소비해온 장동건의 이미지는 이랬다. 페라리를 타고 환상적인 드라이빙 솜씨를 발휘하는 '차도남'(LG전자 3D 통합 CF)이거나 아내(다른 사람도 아닌 고소영!)와 함께 빨래를 즐기는 '따도남'(LG전자 트롬세탁기 CF)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간지'나게 양복을 차려입고 "걸어만 놔도 새 옷처럼"(LG전자 스타일러 CF)을 외친 '꽃중년'이거나.

이렇게 다져진 CF속 장동건 이미지는 영화가 웬만큼 어지간해서는 소비 주체로서 관객을, CF이미지에 길들여진 시청자로서 관객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다. 장동건이 '마이웨이'에서 아무리 진흙밭과 눈밭에서 엉망진창이 된 군복을 입었어도, 관객은 기어이 스타일러 CF에서 장동건이 낸 손가락 스냅 소리를 찾아내고야 만다. 모진 민족적 설움을 떨치려 매일 밤 병영을 주구장창 달린 감동적 장면에서조차 빨간 색 페라리의 잔영을 떨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장동건이 '친구' 이후 지금까지 선택해온 영화들은 이런 CF 이미지와는 정반대 지점에 놓여있다.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는 말할 것도 없고, 광기 어린 해안초소의 군인으로 나온 '해안선'(2002년), 북한 출신의 한서린 해적으로 등장한 '태풍'(2005년), 빛보다 빠른 초인적 노예로 나온 '무극'(2005년)까지. 이 같은 행보는 물론 데뷔 초반 TV드라마 '우리들의 천국'(1992년)이나 '마지막 승부'(1994년)에서 쌓은 '그저 잘 생긴 탤런트'에서 벗어나려 했던 '배우'로서 결단 때문이다.


기자는 장동건을 지난 1994년 3월 초에 처음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다슬이' 심은하와 함께 출연한 MBC 청소년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초절정 인기를 누리고 있던 때였다. TV에서 볼 때보다 훨씬 잘 생긴 조각미남 장동건은 인터뷰 말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바라던 학교(한국종합예술학교)에 다닌다 생각하니 가슴 뿌듯합니다. 다른 생각 않고 연기공부에만 매달려 충전의 시간을 듬뿍 갖고 싶어요. 아직 연기의 '연'자도 모르는 햇병아리거든요."

승부수는 한두 번만 던져야 진짜 승부수다. '연기'에 대한, '변신'에 대한 장동건의 이런 의지와 바람을 담은 승부수는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충분했다. 관객이 서둘러 돈을 내고 극장에서 소비하고픈 장동건의 '또 다른 선택'을 기대한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