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민 "내 연기는 항상 목표에 못 미친다"(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0.06.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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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명민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임성균 기사 tjdrbs23@


김명민(38)의 연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나 다름없다. 그가 연기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은 신뢰를 얻는다. '열연했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지독한 몰입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김명민의 캐릭터들은 배우 못잖은 유명세를 치르곤 했다.

'하얀거탑'의 장준혁,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내 사랑 내 곁에'의 백종우…. 곧 한 사람이 추가될 것 같다. 다음달 1일 개봉을 앞둔 영화 '파괴된 사나이'(연출 우민호)의 주영수다.


큰 교회의 목사였던 주영수는 8년 전 유괴범에게 딸을 잃는다. 딸을 데려간 원수를 사랑할 수 없고, 딸을 살려주지 않은 신을 믿을 수 없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그에게 유괴범의 전화가 걸려온다. '딸이 살아있다'고.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7살 아들을 둔 아버지이기도 한 김명민은 분노와 슬픔, 회한으로 가득한 그 사나이의 삶에 120% 공감했다. 그리하여 기묘한 웃음소리만으로 텅 빈 가슴이 짐작되는 남자, 주영수가 탄생했다.

시사회 다음날 마련된 인터뷰 자리. 인터뷰할 이가 입을 꾹 닫은 지독한 아버지 주영수면 어쩌나 했는데, 그가 먼저 싱긋 웃음으로 인사한다. 차디찬 장준혁도 아니고, 독설가 강마에도 아니고, 고통스런 백종우도 아닌 배우 김명민. 그를 만나 다행이었다.


-주영수 때문에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다는데, 어떤 면에 끌렸나.

▶딸을 잃고, 신을 잃고, 가족을 잃은 한 남자의 삶이 다른 유괴영화들과는 다르게 많이 애착이 가고 연민이 간다고 할까. 그 전에 주영수라는 사람의 삶에 120% 공감이 됐다. 내가 이런 상황이었어도 그랬겠다 했다. 딸을 두 번 잃지 않겠다는 의지만으로, 이기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 남자의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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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명민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임성균 기자 tjdrbs23@


-대사가 많지 않더라.

▶연기하는 데 가장 힘들었던 게 8년이 생략됐다는 거였다. 전개가 스피디하다. 많은 걸 유추해야 한다. 이 사람이 8년을 어떻게 보냈으며, 그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대사가 아닌 주영수의 감정, 표정, 숨소리, 웃음소리, 제스처를 보고 유추할 수밖에 없다.

-강마에 시절에 비하면, 대사가 드라마 한 회 절반도 안 되겠더라.

▶절반이 뭐예요. 긴 대사 나오는 한 신을 따져도 안 될 거다. 강마에는 아무래도 독설가였으니까. 말이 없어 더 달라 보이기는 한다. 몇 마디 대사보다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심리 상태를 나타내주는 거다.

-그래서 더 까다로운 연기였을 텐데.

▶제 입장에서 대사가 있고 없고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어차피 연기라는 것은 거짓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진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사가 나가지만 그 이전에 마음에서 울리고, 머리로 가고, 그게 눈을 통해서 나온다. 대사를 통해 감동을 줄 수도 있지만 대사는 하나의 도구 정도? 부수적인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인물에 푹 빠지면 여운이 오래 가지 않나. 혹시나 걱정했는데, 지금은 주영수 같지는 않다.

▶그래도 촬영이 끝난 지 두세 달 됐는데. 파국으로 치닫는 인물이지만 마지막이 훈훈해서 좀 덜하다. '내 사랑 내 곁에' 경우는 정신적인 것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늘 누워있고 하다보니 더 심했다. 그래도 촬영 땐 좀 낫다. 날 반겨주지 않나. '내가 필요한 곳이 있다' 싶었는데, 끝나고 나니 어디 쓰레기장에 버려진 것 같더라. 이 몸으로 뭘 해야 하나 싶고. 그땐 힘이 없어서 음료수병 하나 못 땄으니까.

-그런 김명민한테 연기로 '태클' 걸기가 쉽지 않다. 혹시 현장도 그런 건 아닌지.

▶그렇지 않다. 그게 저한테 독이 될 수도 있다. 감독님께서 저를 믿고 신뢰해주시고 제 연기에 공감해주신 건 너무 좋은데, 그게 제게 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다. 감독님께 항상 터놓고 이야기를 한다. 촬영 직전까지도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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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명민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류승희 인턴기자 grsh@


-'명민좌'란 별명, 부담되진 않나.

▶내가 앞으로도 그대에 부응해야 하는데, 하는 부담은 없다. 다만 손발이 오그라들고 하는 때가, 선배들이 '명민좌가 뭐야? 본좌가 뭐야?' 하실 때 저도 그냥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넘어간다. '어, 명민좌 왔어?' 하는 선배도 계신데, 그럴 땐 90도로 인사하려던 고개가 120도까지 수그러든다. 가끔 팬카페에 들어가 보는데, 저를 생각해서 '명민좌'를 이젠 좀 그만 써주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이게 어디로 흘러갈지는 저도 모르겠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민망하다.

-이러다 한 번 삐끗하면 큰일나겠다 싶을 때는 없나.

▶삐끗하면 큰일난다 하는 생각으로 연기하면 정말 큰일날 것 같다. 제가 무슨 작품을 선택하든 팬들은 우려 반 기대 반이다. 제가 팬카페에 직접 글을 쓰지는 않지만 저는 '어떤 걸 하든 믿어줘라, 작품이 나오면 판단해달라' 하는 쪽이다. 걱정하신들 그 우려 때문에 안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팬들도 잘 알 거다. 작품이 나온 걸 보고 실망하신다면 전 그걸 달게 받을 자신이 있다. 저도 인간인데, 매번 높은 기대에 부응할 수는 없지 않나. 저도 삐끗할 때도 있고, 잘 될 수도 있고 망할 때도 있다. 그런 데 대한 부담은 전혀 없다.

제가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제 자신에 대한 후회는 없을 거다. 작품이 잘 안 나오고 기대 이하라고 해도 내가 하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면 나는 당당하게 설 수 있을 것 같다. 흥행에 상관없이.

-연기파 배우로 각광받으며 또한 스타가 됐다. CF가 이어지고 루머까지 나는.

▶얼마 전 한 선배께서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인기, 명예, 돈을 따라가면 안된다고. 흥행을 쫓지 말아라, 인기를 쫓지 말아라…,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더욱 경각심이 생기더라. 다른 인물의 삶을 100%는 못 살더라도 90%, 80% 최대한 가까이 사는 게 배우로서 의무지, 인기나 명예, 돈을 얻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자꾸 한다. 그렇게 가다보니 어느 순간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인기도 오고, CF도 들어오더라. (루머까지 나는 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좋을 것도 없지만. '야, 이런 일이 나한테' 그랬다.

사실 그런 데 미련 가질 겨를도 없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표가 딱 이만큼이라면 매번 못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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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명민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류승희 인턴기자 grsh@


-늘 연기가 목표에 못 미쳤다는 말인가?

▶항상 내가 목표한 데 못 미쳤다. 항상 그런다. 이번 영화도 다음 작품, 다음 작품 또 다음 작품이다. 이번에도 영화평이 좋아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제 연기는 그다지…. 지금껏 영화에서도 몇 번의 고배를 마셨고, 3년을 찍어 개봉을 못한 작품도 있었다. 그런 일 하나하나가 저를 단단하게 다진 계기가 됐던 거다.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배우는 것들을 겪었다는 것, 당시엔 원망도 하고 괴로워도 했지만 그것도 행운이었다.

-흥행에 대한 기대는 없나? 월드컵 후반부랑 개봉 시기가 맞물려 있어서 조금 부담되겠다.

▶기대는 항상 한다. 안한다면 거짓말이지. 내 이익을 위해서 남 잘 되는 걸 못마땅해 하면 저도 마찬가지로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16강 진출해서 잘 되고 다 잘됐으면 좋겠다.

-관객한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어떤 건가?

▶제 연기 기대 많이 하지 마시고 영화를 기대해 달라는 것. 영화를 기대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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