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꿈', 박희순의 힘..아역배우들의 더 센 힘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0.06.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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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밤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20대 대학생 관객도, 40대 아줌마 아저씨 관객도 '그 장면'에서 박수를 쳤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정말?" 그리고 삼삼오오 시사회장을 나서면서 이들은 말했다. "골 넣는 장면에서 울기는 2002 한일월드컵 때 이후 처음"이라고.

오는 24일 개봉하는 김태균 감독의 '맨발의 꿈'은 착한 영화다. 뭐 하나 요술 같은 킬러 액션도 없고, 요즘 유행하는 호사스런 CG도 없다. 예쁜 여배우도, 숨막히는 베드신도, 막판 뒤통수를 때리는 깜짝 반전도 없다. 2004년 히로시마 국제 유소년축구대회에서 전승 우승한 동티모르 아이들의 삶만이(실화다! '국가대표'처럼), 오로지 있을 뿐이다.


'기본꽝'과 '헛발질'이 별명인 축구선수 출신 김원광(박희순)은 인도네시아에서 한 건 잡으려다 동티모르로 흘러든다. 몇백년을 포르투갈 지배에 있다가 겨우 독립했더니 인도네시아에 다시 점령당하고, 이후 다시 독립했지만 지역 갈등은 여전한 동티모르.

그러나 원광에게 이러한 위태한 정세는 안중에 없다. 맨발의 아이들이 축구에 환장한 걸 알고는 '짝퉁 축구숍'을 연다. 어차피 한 건 하고 튈 심산. 그런데, 애들과 며칠 지내보니 이게 쉽지가 않다. "난 왜 제대로 되는 게 없냐?" 대사관 직원(고창석)도 귀국을 종용한다. 꼬이고 망해가는 원광, 그리고 구질구질한 삶이 도대체 나아질 줄 모르는 동티모르 아이들. 그런데 이 지점부터 관객은 영화에 슬슬 빠져든다.

'맨발의 꿈'은 결국 순정에 관한 영화다. 축구를 사랑한 아이들의 순정, 이런 아이들을 향해 끝내 마음을 연 한 어른의 순정. 그리고 이미 탈북 축구선수(차인표)의 절절한 부정(父情)을 이야기했던 '크로싱'의 김태균 감독의 순정. 특히 실제 2004년부터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단 후원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 바로 김 감독이다. 맞다, 언제나 순정이라는 건 결국엔 통하는 거니까.


이처럼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순정 영화에 재미와 활기를 불어넣은 일등공신은 물론 박희순이다. '세븐데이즈'에서 문을 못 따는 열쇠수리공에게 "넌 왜 직업정신이 없냐?"며 환상의 대사를 선보인 박희순, 이번 영화에도 여러 번 울리고 웃긴다. "넌 참 디테일이 부족해!"라든가, "가난하면 꿈도 가난해야 하나요?" 같은. 현지 인도네시아어에 우리말 조사를 갖다 붙이는 그만의 재주엔 숨이 넘어갈 정도다.

여기에 '영화는 영화다'의 봉감독이자 '의형제'의 동남아 갱단 두목인 고창석의 달인급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박희순만큼이나 등장 시간이 길어 고창석 팬으로서는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국가대표'의 해설자이자 '추노'의 곽한섬이었던 조진웅, 그리고 '다찌마와 리'의 임원희를 잠깐씩이나마 볼 수 있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다.

그러나 역시 영화 막판으로 갈수록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건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단원을 연기한 현지 아역배우들의 무공해 연기다. 라모스(프란스시크), 모따비오(페르디난도), 뚜아(주니오르), 조세핀(말레나).. 처음엔 귀에 잘 안다가오는 이름이었으되 나중엔 속으로 "라모스, 골 진짜 넣어야 해" "조세핀, 완전 귀엽네"라고 또박또박 말하게 되는 그 신기한 체험. 이른바 동티모르 제1호 영화배우들인 이 꼬마들의 맑은 눈망울과 검게 탄 얼굴은 예상 외로 잔상이 길고 깊다.

라모스, 뚜아..극장문을 나서면서 이들 이름 되새길 관객, 진짜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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