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 '해체국면' 해체가 슬펐던 아이돌 빅5

길혜성 기자 / 입력 : 2010.04.0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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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가 일본 활동 중단을 최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번 발표는 지난해 7월 말 동방신기의 영웅재중 시아준수 믹키유천 등 3명이 국내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와 전속권 문제로 소송을 제기한 이후 국내에서 5명의 멤버가 동방신란 이름으로 함께 하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그렇기에 동방신기가 사실상 해체 국면을 맞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일고 있다. 이번 선언은 국내외 팬들을 단숨에 안타까움과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동방신기가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그리고 10대를 넘어 30대 이상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팀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을 통해 가요팬들을 슬픔에 젖게 했던 역대 아이돌그룹들의 5대 해체 사건을 되짚어 봤다.


▶서태지와 아이들

한국 가요계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았던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로 구성된 서태지와 아이들은 음악 프로듀서로 록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 서태지, 안무가로 당대 최고의 춤꾼인 양현석과 이주노를 내세웠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 데뷔하자마자 국내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록과 랩이 결합된 '난 알아요', 컴퓨터를 통해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재현한 '환상 속의 그대' 등이 담긴 1집은 나오자마자 밀리언셀러가 됐다. 이들의 힙합 패션 또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은 만 4년의 활동을 채우지 못했다. 1993년 '하여가'가 수록된 2집, 1994년 '발해를 꿈꾸며'가 들어 있는 3집, 1995년 갱스터랩 '컴 백 홈'이 실린 4집이 연이어 팬들과 평론가들의 호평을 이끌어 냈지만, 창작과 인기 유지에 대한 부담감은 이들을 더 이상 존속하게 하지 못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끝도 깨끗했다. 1996년 초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해체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물론 멤버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후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 앞에 솔로 가수 및 기획자란 새로운 수식어를 붙였다.

▶H.O.T

서태지와 아이들이 떠나간 뒤 텅 빈 아이돌시장을 바로 꿰찬 H.O.T. 문희준 토니안 장우혁 강타 이재원 등 1996년 데뷔 당시 고등학생들로 구성됐던 이들은 2001년, 공식 해체했다.

해체 전까지 5장의 정규 앨범을 냈던 H.O.T는 '하이 파이브 오브 틴 에이저'란 뜻을 지닌 팀명답게 패션과 노래를 통해 때론 10대 다운 발랄함을, 때론 도전 정신을 보여줬다.

이들이 2001년 해체를 선언했을 때, 그 화살은 H.O.T 소속사였던 SM으로 고스란히 돌아갔고, SM 건물 앞에서 팬들의 시위가 벌어지는 초유의 현상까지 일어났다. 그만큼 10대들에게 H.O.T의 해체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젝스키스

H;O.T와 90년대 후반 10대 아이돌그룹의 양대 산맥을 구축했던 6개의 수정 '젝스키스'. 지금은 '은초딩'이지만 1997년 데뷔 당시에는 남다른 카리스마를 뽐냈던 리더 은지원을 필두로 모인 젝스키스의 고지용 이재진 김재덕 강성훈 장수원 등은 1997년 '학원별곡'을 앞세워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멤버들의 각양각색의 매력을 앞세워, 90년대 후반 H.O.T와 유일하게 가요 프로그램 및 공연 엔딩 자리를 놓고 다투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젝스키스의 수명도 오래 가지 못했다. 데뷔 3년 만인 2000년 5월 공식 해체했기 때문이다. 짧은 활동 기간이었지만, 그 포스가 워낙 강렬했기에 젝스키스는 90년대 가요계를 기억하는 팬들에겐 여전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S.E.S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 티아라 브라운아이드걸스 애프터스쿨 2NE1 시크릿 등. 요즘 가요계를 주름 잡고 있는 걸그룹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전성기 10년여 전에 이미 국내 가요계를 주름 잡은 한 걸그룹이 존재했다. 바로 1997년 가요계에 첫 발을 내딛고 바다, 슈, 유진의 S.E.S가 그 주인공이다.

역시 SM이 탄생시킨 S.E.S는 '아임 유어 걸'로 산뜻하게 데뷔, 2002년 말 공식 해체를 선언할 때까지 깜찍한 마스크와 역동적인 춤으로 또래 팬들은 물론 삼촌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90년대 말이라 삼촌 팬들이 역동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속으로의 응원만은 지금의 소녀시대에 대한 애정 못지않았다. 이들의 해체를 각계각층에서 서운해 했던 이유다. 이효리 이진 옥주현 성유리의 핑클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것도 인기를 높였던 다른 이유 중 하나다.

▶동방신기

2000년대 초반 남자 아이돌 시장은 비어 있었다. 물론 이 시기 국민그룹 g.o.d가 있었지만, 멤버들의 나이나 콘셉트는 H.O.T 스타일과는 달랐다. 이 때 폭풍처럼 등장한 게 바로 동방신기다.

2004년 1월 정식 데뷔, 신문사 인터뷰를 돌 때 마다 "안녕하세요! 동방신기입니다!"를 우렁차게 외쳤던 영웅재중 유노윤호 믹키유천 시아준수 최강창민의 동방신기. 부르기도 낯선 이름이었지만 모두 10대 미소년, 그리고 SM의 수많은 연습생들들 중 소위 '에이스'들만 뭉쳤던 이들은 데뷔 싱글 '허그'로 바로 가요계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외모, 춤, 가창력까지 갖췄던 다섯 소년들은 댄스곡 뿐 아니라 발라드까지 무리없이 소화하면서 인기를 이어갔다. 2008년 말 발표한 국내 정규 4집 '주문-미로틱'은 음반계의 불황 속에서 5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상큼했고, 똑똑했고, 실력 있었던 동방신기 5명이 함께하는 모습은 지난해 여름부터 국내에서는 볼 수 없게 됐다. 영웅재중 시아준수 믹키유천 등 3명이 지난해 7월 말 SM을 상대로 전속권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한데다, 나머지 멤버인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은 SM과 뜻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이달 초 그간 그룹 동방신기란 이름으로 활약을 보여왔던 일본에서 역시 활동을 중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동방신기는 해체국면에 휩싸였다는 논란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해 국내 팬 뿐 아니라 일본 팬들도 동방신기의 일본 활동 중단 선언 하루 만에 수천여 건의 활동 재개 메일을 보내는 등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

'추신'=90년대 말 데뷔한 인기 아이돌그룹 핑클과 g.o.d는 아직까지 공식해체를 선언하지 않았다. 또한 동시대 데뷔한 신화는 여전히 그룹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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