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모두가 '세경'을 사랑했다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0.03.2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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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두 주인공 세경(신세경 분)과 지훈(최다니엘 분)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MBC '지붕뚫고 하이킥'이 아직도 진한 여운을 남기며 시청자와 네티즌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가슴 먹먹한 엔딩'이라며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고생만 한 불쌍한 세경이를 꼭 죽여야 했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부터 '신세경 귀신설'을 제기하는 음모론자까지, 부정적인 반응도 쏟아진다.


정작 그 주인공인 신세경은 문제적 마지막 126회를 본 뒤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녀는 "세경의 죽음을 예감했다"고도 털어놨다.

혹자들은 그녀의 의견대로 연출자 김병욱 PD가 결말을 만들었다 하는데, 넌센스다. 신세경은 종영을 한참 남기고 했던 인터뷰에서도 '사랑니 에피소드'를 찍으며 자신도 세경처럼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다며, "세경의 짝사랑은 비극을 맞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49회에 등장한 '사랑니 에피소드'는 식모인 세경이 의사인 지훈과 자신과의 간극을 절감하게 한 계기였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원래 처음부터 끝까지 세경의 이야기였다. 강원도 산골에서 빚쟁이에 쫓기던 아빠와 헤어진 두 자매가 성북동 순재(이순재 분) 할아버지네 식모로 들어와 살면서 이야기가 시작했고, 그들이 집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막을 내렸다.


두 사람과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조금씩 성장했다. '빵꾸똥꾸' 해리(진지희 분)는 '꾸질꾸질' 신애(서신애 분)를 친구로 받아들였고, 천덕꾸러기 보석(정보석 분)은 인정받는 가장이 됐다. '된장녀' 정음(황정음 분)은 '어른'이 됐고, 문제아 고교생 준혁(윤시윤 분)은 아픔으로 성숙해졌다. 남의 일이라곤 통 관심없던 지훈 역시 세경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했다.

사실, 모두가 세경을 사랑했다. '키다리 아저씨' 줄리엔도, 준혁과 지훈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경을 사랑했다. 그녀의 매력에 홀린 남자들뿐만이 아니다. 지훈의 연인 정음, 안주인 현경도 그녀를 사랑했다. 장인어른 순재가 세경만 좋아한다 질투하던 구박데기 보석조차 세경에게서 위로를 얻었으며, 지훈의 두 의사 친구마저도 세경을 좋아했다.

딱한 처지지만 세경은 당차고 사려 깊은 여인이었고, 굴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했으며, 다른 이들의 친절과 배려에 감사할 줄 알았다. '지붕킥'의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경과 지훈이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은 이 충격적 결말에, 유독 '세경을 왜 죽였냐'는 항의와 안타까움이 이어지는 것을 보라.

모두가 성장했듯 세경 역시 성장했다. 그러나 세상을 알아버린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함께 알아버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체념밖에 없다는 것도 함께 알았다. 그녀의 사랑은 처음부터 비극이 예정돼 있었다. '식모'에서 벗어난 마지막 신에서 세경은 스스로 말한다. 그녀의 마지막 대사를 그대로 옮겨본다.

"(이민을) 안 가고 싶었던 이유는… 검정고시 꼭 보고 싶어서, 그래서 대학도 가고, 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 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언젠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살기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죠. 결국 못 올라갈 사람의 변명이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가기 싫었던 이유는 아저씨였어요. 아저씨를 좋아했거든요. 너무 많이. 처음이었어요, 그런 감정.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설레고,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 걸레질을 해도….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부끄럽고 비참했어요.

그동안 제가 좀 컸어요. 누군가 좋아하는 일의 끝이 꼭 그 사람과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는 거 깨달았거든요."

'지붕킥'의 연출자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고도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 온 김병욱 PD다. '그래서 모두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식의 동화 속 판타지는 애시당초 이번 시트콤에 어울리지 않았다. 신세경의 슬픈 예감은 그녀가 얼마나 극과 인물을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마지막 순간, 세경은 126회 '지붕킥'을 통틀어 처음으로 행복해한다. 그 순간 그녀는 지훈 앞에 '식모' 세경이 아니다.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연출자는 그녀가 행복으로 옅은 웃음을 짓던 그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곱씹을수록 가슴 저릿한 여운과 함께. 김병욱 PD 역시 그녀를 마음 깊이 사랑한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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