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딴따라' 싸이, 그에게 길을 묻다(인터뷰)

[2009년 가요계 연말결산-핫인터뷰④]

김지연 기자 / 입력 : 2009.12.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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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싸이


한눈팔면 코 베어 가는 정도가 아니라 쉬면 죽는 살벌한 세상이다. 그렇기에 2007년 12월17일 두 번째 훈련소에 입소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이 남자,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2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싸이(본명 박재상)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온 세상이 다 원망스러웠다고.

대한민국에서 군대 두 번 다녀온 유일한 남자, 그리고 그가 재입대하는데 본의 아니게 일조(?)했던 기자가 만났다. 사석에서의 두 번째 만남이다.


◆군대 두 번 간 남자, 재입대에 일조한 기자와 만나다

입대 전 만났던 싸이와 지금의 그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하늘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을 준다는데 대한민국이 공인한 최고의 시련을 겪은 싸이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그를 만났다.

"너무 행복하다. 좋은 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고, 노래할 수 있어 좋고…. 모든 것이 감사하다. 재입대할 때만 해도 남 탓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다 내 탓이란 생각이 든다.(미소)"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얼굴에선 '진짜 여유'가 묻어났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해묵은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진심으로 싸이 얼굴에서 행복이 베어났다. 연신 웃음이다.

사실 기자에게 싸이와의 만남은 다소 부담스러웠다. 2년 전 고의는 아니었지만, 싸이의 병역문제와 관련해 쓰는 기사마다 큰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싸이의 가족들이 기자의 이름을 다 알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닌가. 가장 어려울 때 가슴에 비수를 꽂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기자도 할 말은 있다. 직업이다 보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보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싸이 사태를 겪으면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데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가슴에 새겼다. 사실 많은 기사를 쓰다보면 '아 다르고 어 다른' 작은 글귀 하나에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잊을 때가 많다. 그냥 기계적으로 써내려갈 뿐.

하지만 싸이는 몸으로 말했다. 칼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펜이라고. 그리곤 2년이 지나 더 포용력 있는 사람으로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는 "네 탓이요'가 아니라 '내 탓이요'를 외친다고. 2년 전 만나 그와 지금의 그는 참으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노래, 대체 당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이는 참으로 많은 대가를 치렀다. 노래하나 부르겠다고, 무대에 서겠다고 군대를 두 번이나 갔다. 꿈에서라도 군대 두 번갈까 두렵다는데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싸이가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고난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2007년 서울동부지검 수사상황을 지켜본 기자로서는 더욱 그렇다. 싸이가 무대를 포기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싸이는 대중 앞에서 다시 노래 부르기 위해 2년을 버렸다. 싸이의 아내마저도 노래가 뭐 길래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냐고 물었었다.

"처음부터 음악이, 노래가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진 건 아니다. 그냥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좋아 시작했는데, 음악을 하면서 내가 무언가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 내가 삼류로 취급받을지라도 노래할 때의 내 열정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일류라는 자신이 들었다. 그래서 노래를 지키고 싶었다."

싸이와 인터뷰 전 만났던 김장훈이 말했다. "가수는 두 번 죽는데 무대에 올라갈 수 없을 때와 숨이 끊어질 때, 그래서 싸이에게 재입대하라고 했다"고. 맞는 말이지만 참으로 얄미운 소리다.

"(김)장훈이 형의 그 말을 들으면서 맞는 말이지만 참 야속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장훈이 형 덕분에 그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그 일을 겪으면서 변한 사람이 참 많았는데 장훈이 형만큼은 늘 그 자리를 지켜줬다."

인생은 일회용 휴지 같아서 한 번 쓰고 나면 재활용할 수 없다. 그 점에서 싸이는 많은 시간을 본의 아니게 써버렸다. 특히 재입대와 함께 태어난 쌍둥이 딸들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 아프다.

하지만 잃은 것 배 이상으로 많은 걸 얻었다. 어려울 때 함께 할 친구를 얻었고, 가족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새겼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이기에 싸이는 웃는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무대에 섰으니까. 2009년 겨울 그는 김장훈과 함께 '김장훈 싸이의 완타치' 콘서트로 공연계 새 역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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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왼쪽)와 김장훈 ⓒ유동일 기자 eddie@


◆더욱 '싸이스러워지기'

워낙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왔지만 생각해 보면 싸이는 참 특이하다. 연예인을 낮잡아 부르는 '딴따라'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면 그가 섭섭해 할까.

'연예인' '챔피언' '새' '환희' '위 아 더 원' 등 음반을 낼 때마다 히트한 노래들도 '광기' '엽기'란 단어와 참 잘 어울린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노트 한권에 온통 사인을 연습하고, 유세 현장에 몰린 사람들을 보곤 정치가가 될까하다 퀸의 공연 실황을 보다 가수가 더 많은 사람들 앞에 선다며 연예인을 꿈꿨으니, 어찌 보면 연예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일지 모른다.

싸이는 그런 자신을 "변태 같다"고 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좋고, 그 무대에 서기 전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최고의 희열을 느낀다"며.

하지만 그런 싸이에게도 고민은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싸이스러워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

"나는 매운 음식이다. 아주 매워서 괴롭지만 자꾸만 먹게 되는, 쾌감이 있는 매운 음식이다. 그래서 더 맵게, 더 빨갛게 보이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사람은 한 가지 색깔만 있는 게 아니라 주노초파남보 등 다양한 모습이 있다.

싸이란 사람도 무대에서야 미친 놈 같지만, 무대 밖에서는 누구의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빠다. 혼자 몸이 아니다 보니 내 색깔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나보다 더 매운, 더 빨간 놈이 나오면 어쩌나 싶은 걱정도 든다."

'미친 사람'처럼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싸이지만, 그 역시 늘 '싸이스럽기' 위해 고민한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더 치열한 오늘을 살기 위해.

◆싸이, 그에게 길을 묻다

그에게 길을 물었다. 당신은 어디쯤에 와 있습니까.

2001년 데뷔했으니 어느덧 햇수로 9년차요, 대한민국 남자로 군대를 두 번 다녀온 참으로 화려한(?) 이력을 가진 찾아보기 드문 사람이다.

"웃긴 사람으로 시작해 음악 하는 사람이 돼 가고 있다.(웃음)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겉모습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만큼은 멋있어 보이고 싶다. 무대 위 나를 보며 '정말 미친놈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음악에 미쳐 살고도 싶고."

그가 처음 데뷔했을 때 싸이는 웃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싸이는 웃기 돼 결코 우스워 보이진 않았다. 그의 공연을 찾는 사람들마다 '음악쟁이' 싸이의 열정에 놀라고, 실력에 놀라고 그 '똘기'에 놀랐기 때문이다.

무대 위 벌거벗은 듯 다 내보일 수 있는 것 역시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다.

자신감과 열정 그리고 어떤 시련도 즐길 수 있게 된 2009년의 싸이, 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결말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할 스토리를 써 나갈 싸이의 더 싸이스러운 활약에 가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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