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기 "사랑한단 말, 거의 안해봤다"(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09.07.3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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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민기 ⓒ 유동일 기자 eddie@


배우 이민기(24)는 올 여름 개봉하는 두 편의 한국영화로 관객을 만난다.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 '해운대'(감독 윤제균)와 서바이벌 스릴러 '10억'(감독 조민호)이다. 한 편에서는 순박하고도 의리있는 인명구조요원, 다른 한 편에서는 거액의 상금을 노리고 죽음의 서바이벌에 참여한 주인공이다.

'누나들의 로망', '국민 연하남'이란 타이틀을 기꺼이 후배들에게 물려준 이민기는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남자의 얼굴을 보여준다. 특히 '해운대'의 형식은 다른 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미국식 영웅주의가 아니라, 재난을 마주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민기는 "나 역시 무엇인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서도 "바로 그 순간이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능숙하게 수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중앙소방학교에서 3주 교육을 받았다. 처음 미팅할 땐 바다에서 수영할 수 있다고 했는데 역시 바다는 안이 시커멓고 무섭더라. 나중엔 구조대 분들이랑 광안리에서 광안대교까지 수영해서 다녀오고 그랬는데. 연습한 걸 다 못 보여드려서 아쉽다.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봤다. 진짜같은 사람들 생활에 갑자기 쓰나미가 온다니까 그게 좋았다. 형식이는 처음 무뚝뚝한 전형적인 부산 남자로 봤는데 작업을 하며 바꿨다. 감독님이 순수하고 순진한 모습이 부각됐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파트너 강예원에게 입술을 물리는 장면이 두 번이나 나온다. 강예원은 '이민기씨 입술이 너덜너덜해졌다'는 표현을 쓰더라.

▶아팠다. 그게 몇 번을 찍으니까 물린 데 또 물리다보면 아프더라. 촬영 끝나고 바닷가 바람이 불면 나도 뭔가 나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웃음)

-김해 출신이라 아무래도 사투리 연기는 덕을 좀 봤겠다.

▶선배들 노력에 비하면 훨씬 쉬운 게 사실이다. 제가 선배들을 보면서 '서울말로 감정 표현을 저렇게 하는구나' 하는 거랑 비슷하다. 그런데 고민이 있었던 게, 내가 이곳 출신인 걸 다 아는데 여기서 삐끗하면 큰일난다 이런 마음이 있었다.

선배들 사투리는 토박이가 보기에도 훌륭하다. 설경구 형은 방에서도 안 나오고 매일 녹음한 걸 듣다가 '내가 영어도 아니고 불어도 아니고 같은 조선말로 이렇게 고생을 한다' 한탄하시더라. 그 고생을 하니 결과가 좋게 나오는 거다.

-최근 정말 많은 작품을 찍었는데 '국민 연하남'으로 불렸던 때와 비하면 반응이 조용하다.

▶아는 사람만 알아봐 주신다. 물론 혼자 하고 혼자 박수치는 건 아니지 않나. 많이 봐주시면 감사한 건데, 그게 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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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민기 ⓒ 유동일 기자 eddie@


-이미지 변화를 염두에 둔 건가?

▶의도는 없었다. 일단 마음이 내켜야 하는 일이지 않나. 모든 연기가 역할이 이해돼야 하는건데 이미지를 바꾸겠다거나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진에선 그런 걸 할 수 있다. 모든 게 한 컷에 들어가니까. 하지만 영화는 내 모습과 몸짓, 목소리, 해석까지 모든 게 들어가지 않나.

연하남도 내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다. '바람피기 좋은 날' 하고 '달자의 봄' 했더니 갑자기 '누나들의 로망'이 되더라. 역시 의도하지 않았다.

-다른 여름 영화 '10억'에도 출연했다. 이민기가 잘 했다는 소문이 벌써 돈다.

▶이거 당최 부담스러워서. 그렇지는 않고, '해운대'가 기존의 제가 했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는 게 없었다면 '10억'은 다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둘 다 저지만.

저나, '해운대'의 형식이나, '10억'의 철이나 셋 다 똑같다. 굉장히 닮은 게 많다고 생각했다. 다만 형식이가 수줍게 표현을 한다면 철이는 대놓고 표현을 하는 거다.

-'해운대'에서 형식은 죽음을 앞두고서도 웃는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영화를 보니 내가 웃고 있더라. 찍을 땐 의식도 하지 않았다. 계속 감독님이랑 얘기했던 건 미국식, 할리우드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연기할 때도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형식이가 '너 살리고 나는 죽는다' 식의 영웅이 아니었다는 거다. 이거 어떡해야 하나 겁나게 고민한다. 얘는 영웅이 아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사람 목숨을 구해야된다는 생각이 있다. 마지막까지 형식이는 '빨리 데리러 와라' 그러지 않나. 죽을 걸 알지만 어쩌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을 것 같고.

-만약 이민기에게도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게 뭘까.

▶저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연기를 하는데 역이 너무 좋고 작품이 너무 좋아서 살을 30kg 빼야 하고 깎아지른 절벽에 서야 한다면 목숨을 걸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또 죽을 수도 있다 하겠지만, 뭐 지금은 없으니.(웃음) 분명히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있다. 바로 그 순간이어야 한다. 내가 남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며 그 조차도 내가 좋아 남에게 주는 선물같은 것일 거다.

-그러고보면 연상의 여자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받는 모습이 참 익숙하다. 실제라면?

▶제가 김해에 있고 이런 일을 안 했다고 치면, 서울서 어떤 여자가 와서 관심을 보이면 빠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생활이 이렇다보니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있다. 그 반대로 나 역시 많이 신중하게 된다.

-학창시절엔 포장마차 하는 게 꿈이었다더라.

▶열정과 의지가 있는 꿈은 아니었지만 꿈은 꿈이었다. 고등학교 땐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때 인생 계획을 미리 짜놓는 젊은이가 많이 있겠나. 공부는 안했고, 금기를 어기는 게 좋아 술도 먹고 했다. 친구들이랑 나중에 모여서 포장마차를 하자고 했는데, 다들 부모님한테 혼나고 대학가야 된다고 그렇게 되더라. 딴 친구들이 성적 맞춰서 호텔경영학과 간다고 하면 '니네 아빠 호텔 있냐' 그러곤 했다. 그러다 내가 불현듯 모델이란 데 꽂혔다. 그렇게 사건이 시작돼 여기까지 왔다.

-다른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지금 목표와 꿈으로 이야기할 수가 없는게, 저는 나이 들어서 건강했으면 좋겠다.(웃음) 그게 참, 꿈이란 그걸 위해 노력하고 살아간다는 건데 그거랑 거리가 멀다.

-늘 '지금'을 이야기한다. 나중엔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는 건데, 그런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말도 잘 안한다.

▶맞다. 거의 한 적이 없다. 그나마도 로맨틱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다가 대뜸 '내가 지금 기분이 니를 사랑하는 건가' 그랬었다.(웃음) 이기적일 수도 있는데 거짓은 아니다. 신중한 것일 수도 있고.

-목표 관객수? 예상 관객수가 있나?

▶나는 모르겠다. 찍을 땐 최선을 다하지만 뒷일은 내가 모르지 않나. 당연히 많이 봐 주시면 좋다. 하지만 숫자는 현실감이 없다. 50만도 1000만도 가늠이 안 된다.

-혹시 '지금' 해보고 싶은 역이 있다면?

▶원래 그런 게 없는데 생긴 게 있다. 학원물을 해보고 싶다. 나도 교복 좀 입어봤으면 좋겠다. 진짜 청춘, 학창시절의 순수, 열정이 담긴 작품을 해보고 싶다. 그게 사랑이든 우정이든 다 좋다. 세월 지나면 하기 부끄러우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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