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허장강, 자기만의 색깔로 기억된 최초의 배우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주성철 / 입력 : 2008.08.27 08:28 / 조회 : 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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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남긴 해병'(1965)의 고 허장강(왼쪽).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700만 고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놈놈놈'이 셀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1966)는 물론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고, 그 '쇠사슬을 끊어라'는 바로 영상자료원에서 마련한 '만주 웨스턴 특별전'에서 31일까지 상영된다.


민족의식보다는 돈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세 남자의 대결, 청동불상의 등장, 그리고 광활한 만주를 무대로 한 활극이라는 점에서 '놈놈놈'과 '쇠사슬을 끊어라'는 무척 닮았다. 특히 최고의 코믹 연기를 선보인 '놈놈놈'의 송강호 캐릭터는 누가 봐도 '쇠사슬을 끊어라'의 허장강을 닮았다.

허장강이 누군가. 바로 허준호의 아버지이자 과거 한국영화의 최고 성격파 배우였다. 1923년 서울에서 태어나 태평양이라는 악극단에서 활동했던 그는 이강천 감독의 '아리랑'(1954)으로 데뷔했고, 역시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1955)에서 잔혹한 빨치산 대원 역을 맡아 뚜렷한 개성을 뽐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사루만'을 연상시키는 기다란 얼굴, 야비한 듯 날카로운 독특한 음색 등 그는 한국영화사상 배역을 넘어 자기만의 '색깔'로 기억된 최초의 배우였다.

주로 악역만 도맡아했는데도 그렇게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은 배우는 드물었다. 그의 최대 무기는 역시 유머였다. 지금 우리가 송강호를 보며 제스처 하나, 대사 한마디에 적극 반응하는 것처럼 당시의 허장강도 그랬다. 유현목의 '공처가 3대'(1967)의 코믹 연기는 압권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의 연기영역은 멀쩡한 아저씨부터 '일본놈'을 거쳐 '북한놈'까지 폭넓게 걸쳐 있었지만 '쇠사슬을 끊어라'처럼 보다 남성적인 역할도 꽤 매력적이었다.

신영균이나 장동휘처럼 굵고 묵직한 남성미를 뽐냈다기보다 능청스러운 '말발'의 카리스마로 기억되는 배우였다. 특히 '쇠사슬을 끊어라'에서 만주로 설정된 뚝섬 한가운데를 허장강이 질주하는 장면이 있는데, '놈놈놈'에서 말을 무서워하던 송강호에게 말을 태우지 않고 별 걱정 없이 오토바이를 타게 한 것도 그런 기억 때문이었다.


그 색깔은 주로 '일본놈'일 때 강렬했다. '청일전쟁과 여걸민비'(1965)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역할이었고, 누가 봐도 김두한 이야기라 할 수 있는 '팔도사나이'(1969)에서도 하야시 같은 일본 보스 역할이었으며, 독립군의 활약상을 그린 '북경열차'(1969)에서도 그랬다. 아니면 '방콕의 하리마오'(1967), '동경의 왼손잡이'(1969), '엑스포 70 동경전선'(1970) 등에서는 북한의 첩보원이거나 사람들을 북송시키려는 조총련계 사람이었다.

그냥 악역도 지나칠 수 없었기에, 액션 거장 정창화의 '황혼의 검객'(1967)에서는 악역 오기룡으로 나와 팔과 목이 잘려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1년에 심지어 10편 이상까지 출연한 적도 있다. 신영균, 장동휘, 신성일 등 주연급 배우들의 폭이 넓었던 반면 언제나 인상적인 악역은 오직 그의 몫이었기에 그가 없으면 충무로는 '올 스톱'이었다. 그렇게 그는 한국영화사의 가장 비열하지만 한편으로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가장 웃긴 마초의 얼굴이었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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