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브로커' 자신과 타인의 아픔을 찾는 기적 같은 여정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2.06.0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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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버렸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 너무 어린 엄마는 뒤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세탁소를 운영하며 빚에 허덕이는 상현과 베이비 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동수는 그 아기를 팔려한다. 아기를 키우고 싶지만 입양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아기를 넘기려 한다.

그런데 어린 엄마 소영이 아기 우성을 되찾으려 왔다. 상현과 동수는 시설 사람들과 경찰이 눈치 채기 전에 소영을 달래 아기를 넘기는 과정에 동참시키려 한다. 돈을 나눠주겠다며. 그런 그들의 뒤를 형사 수진과 후배가 쫓는다. 형사들은 브로커 일당이 아기를 넘겨주는 현장을 덮쳐 현행범으로 잡으려 한다.


아기와 아기를 팔려는 사람들, 그리고 아기 엄마, 그 뒤를 쫓는 경찰들의 기묘한 여행이 시작된다.

'브로커'는 단순하다. 어쩌면 사회면에 한 줄 실릴 짧은 뉴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단순한 이야기를, 깊고, 다르고, 다양하게 나열한다. 같은 이야기, 같은 말도, 다른 사람, 깊어진 관계 앞에선 달라진다. 아기를 콘크리트 위에 버리고 간 이유도, 다른 사람, 달라진 관계 앞에선 달라진다. 그래도 버렸다는 사실은 달라지진 않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달라진 틈새를 한국 배우들을 붓 삼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의 끝을 궁금하게 만든다. 별다른 감정의 고조 없이, 그저 이야기의 힘 만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서스펜스를 만들어냈다. 어쩌면 이야기의 힘 만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브로커'는 한국영화도 아니고 일본영화도 아닌 것 같다. 한국영화 같기도 하고 일본영화 같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 제작진과 한국자본, 한국배우들과 찍은 이 작품은, 경계선에 있다. 이 경계선이 한국영화와는 또 다른, 일본영화와는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한국영화는 감정의 '데꼬보꼬'(울퉁불퉁한 높낮이를 뜻하는 방송, 영화계 은어)가 확실하다. 사건에 맞닿으면 뜨겁게 발산하고 차갑게 내뱉는다. '브로커'는 그렇지 않다. 마치 일본영화처럼 감정의 '데꼬보꼬' 없이 은은하다. 자칫 한국관객에게 심심할 수 있는 이 감정 표현을, 송강호를 비롯해 이지은(아이유), 강동원 등 한국배우들이 다른 음계처럼 표현했다. 일본영화의 은은한 정서가 단조 처럼 표현된다면, '브로커'의 한국배우들은 이 단조 같은 정서를 장조처럼 연기했다. 그리하여 일본영화와는 또 다른 감정의 여운이 드러난다.

'브로커'는 감정이 80도부터 끓기 시작하는 한국영화와 120도가 넘어야 비로소 끓는 일본영화와 다르다. 이 감정의 단차가 '브로커'에 서스펜스를 만들어내 마지막까지 이야기의 결말을 궁금하게 만든다.

'브로커' 배우 중 백미는 이지은(아이유)이다. 왜 저렇게 연기하지 싶다가 곧 납득하게 만들고 이내 빠져들도록 한다.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이지은의 대사에 위로받을 관객이 적지 않을 듯 하다. 상현 역으로 한국배우 중 처음으로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는, '브로커'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구분짖게 하는 이정표다. 그의 얼굴과 대사와 몸짓, 그리고 쉼표로 감정의 단차가 만들어진다. 송강호는 평범함을 비범하게 연기하는 배우다.

동수를 연기한 강동원은,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자연스럽다. 가장 힘을 뺐다. 비로소 드러난 맨 얼굴에서 잘생긴 배우 강동원이 아니라 배우 강동원이 느껴진다. 송강호와 강동원, 이지은, 그리고 아기와 도중에 합류하는 아역까지. 이들이 그리는 유사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여느 영화의 유사 가족과 닮았지만 다르다. 감정의 거리가 더 짧고 더 정겹다.

형사를 연기한 배두나는 배두나처럼 했다. 이주영은 갈 길이 멀다.

자신의 아픔에서 타인의 아픔을 찾는 사람과 타인의 아픔에서 자신의 아픔을 찾는 사람은 다르다. '브로커'는 이 다름이 그럼에도 위로받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 순간이 좋다.

'브로커'는 "낳기도 전에 죽이는 것과 낳고서 버리는 것 중 어떤 게 더 큰 죄인지"를 묻지만 답을 내지 않는다. 정죄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과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렇게 위로한다. 그 위로가 좋다.

6월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추신. '브로커'에는 짧지만 '매그놀리아'의 주제곡 '와이즈업'이 삽입됐다. 그 노래로 '매그놀리아'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기적 같은 순간을 떠올리는 관객이라면, '브로커'의 기적 같은 여정이 더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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