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의 아트마켓] 46. 영화 속의 예술 작품 ①

채준 기자 / 입력 : 2022.01.0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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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비롯해서 영화 속 예술이 주제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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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인간의 아들(The Son of Man, 1964)', the exhibition: The Fifth Season, SFMOMA, San Francisco (2018). 사진제공= Lou Stejskal via Flickr/Creative Commons.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과 르네 루소가 각각 모험과 스릴을 즐기기 위해 고가의 예술 작품을 훔치는 억만장자와 그를 쫓는 보험 조사관으로 분한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The Thomas Crown Affair, 1999).' 영화는 많은 장면에서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명작 '인간의 아들(The Son of Man)'을 등장시킨다. 청사과가 얼굴의 대부분을 가린 중절모를 쓴 남자의 그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자의 왼쪽 눈 가장자리가 사과 끝으로 살짝 보이는 것과, 왼쪽 팔이 바깥쪽으로 굽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자화상인 이 작품에 대해 마그리트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다른 것을 숨기고 있고, 우리는 늘 보이는 이면의 숨겨진 것을 보기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억만장자의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모습인 영화의 모티브와 이어진다. 그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훔쳐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황혼의 산 조르조 마조레(Saint-Georges majeur au crepuscule, 1908-1912)'를 보관해 둔 장소 역시 그의 집 벽에 걸린 '인간의 아들' 뒤 비밀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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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Claude Monet), '황혼의 산 조르조 마조레(Saint-Georges majeur au crepuscule)', National Museum Cardiff, Cardiff, Wales, 1908-1912. 사진제공= National Museum Cardiff via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영화의 끝부분 '인간의 아들' 속 남자로 변장한 주인공과 그가 체포되지 않도록 같은 분장을 하고 나타난 수많은 무리의 남자들이 등장해 그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심리학적으로 마음속에 내재된 무의식의 자유에 대한 지향에 근원을 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마그리트의 작품이 영화의 주제에 잘 녹아들어 표현되며 스토리에 한층 흥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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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Mauritshuis, The Hague, Netherlands, 1665. 사진제공= Mauritshuis via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그림이 소재가 되어 상상의 이야기가 펼쳐진 경우도 있다. 네덜란드 황금기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는 주로 중산층의 집 내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따라 모두 다르게 표현되는 그의 인물들이 내보이는 감정과 배경은 작품을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졌다.

베르메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역시 동명의 소설로 허구의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다. 영화의 여자 주인공인 베르메르의 조수이자 작품의 모델은 허구의 인물이고, 이야기도 모두 소설가의 상상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색조에 까다로웠던 베르메르가 작품을 창작할 때 어떻게 빛을 이용하고 색을 만들어 내는지 연구한 끝에 그의 작품들과 가장 가깝게 장면들을 연출해 내려 노력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34 점 밖에 존재하지 않는 그의 작품들과 영화 장면들을 비교해 보면서 감상하는 것도 재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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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 M. W. Turner),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1838)', National Gallery, London, 1839. 사진제공= National Gallery via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007 시리즈의 하나인 '스카이폴(Skyfall, 2012)' 초반부, 주인공 007(다니엘 크레이그 Daniel Craig 분(扮))과 그의 새로운 현장 지시 요원 Q(벤 위쇼 Ben Whishaw 분(扮))가 처음 대면하는 장면. 그들이 만나는 장소는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에 전시되어 있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 M. W. Turner)의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 앞이다.

이 작품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폴레옹 군을 물리치고 영국의 승리를 이끄는데 활약한 전함 테메레르가 수명을 다하고 증기 예인선에 이끌려 해체를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전 파트너들에 비해 한층 낮은 연령대의 새로운 현장 요원이 오랜 경험과 노련함으로 시대를 이끌어온 007에게 이 작품을 설명하면서 이들의 만남이 시작된다.

터너는 주로 빛이 가져오는 변화를 날씨와 바다를 주제로 한 분위기 있는 작품들로 표현한 유명한 영국의 낭만주의 대가이다. 그의 '전함 테메레르'는 노쇠한 거대 전함이 작지만 기운차게 붉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증기 예인선에 끌려 템스강을 항해하는 모습이 멀리서 지고 있는 석양에 비추이면서 그 쓸쓸함을 더해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산업혁명의 산물인 증기선처럼 신기술로 무장한 신진 스파이 세대들의 약진 속에 그의 위치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007의 위태로운 상황을 은근히 비유해 표현하고 있다. 터너의 작품이 주는 적적함과 스산함이 영화 장면 안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 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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